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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라라의 라틴인사이트] 사라진 오징어, ‘아기 예수’의 저주 때문?

  • 입력 : 2018.05.08 09:46:59    수정 : 2018.05.08 16:5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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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리마의 오징어 가공공장 (출처: http://www.illari.com )



짬뽕 한 그릇을 시키면 검붉은 껍질이 아직 붙어있는 국산 오징어가 푸짐하게 들어있던 그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나라 오징어 어획량은 2006년 이후 급감했고 그 가격은 하락세를 모른 채 치솟기만 한다. 울릉군청은 오징어 축제를 걱정하고, 오징어 요리 전문점은 음식 양을 대폭 줄이거나 아예 폐업을 하기도 했다. 한 철 잘 넘기면 다시 돌아올 호기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동해안 오징어는 씨가 말랐다. 가격이 비싸도 찾는 사람은 항상 있지만 어획량 자체가 매년 급감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이런 상황이 10년 가까이 지속되자 어느 술집에서나 가장 만만한 메뉴였던 마른안주에는 울릉도 오징어 대신 아르헨티나 앞바다의 ‘포크 오징어(포클랜드산 오징어)’가 당연해졌고 짬뽕에 오징어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대신 오징어 다리의 쫄깃함에는 못 미치지만 비슷한 식감을 주는 페루산 대왕 오징어 동체(몸통)의 맛에 만족하기 시작했다. 역시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오징어 섭취를 포기하는 대신 대체품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현재 이 ‘대체품’의 공급 조차 활발하지 않다는 것이다. 동해안과 태평양을 넘나드는 중국 어선들의 무차별 포획과 이상 기온 현상인 ‘엘 니뇨 El Niño’가 그 주된 원인이다.

‘엘 니뇨 El Niño’는 해수 온도가 평년보다 2~3℃ 상승하는 현상으로 수온에 민감한 어종들의 해역 이탈을 야기하여 어업 활동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다.

스페인어로 ‘아기 예수’라는 뜻을 가진 ‘엘 니뇨 El Niño’는 1950년대부터 페루와 칠레 연안에서 발생하기 시작했다. 해수면의 이상 기온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찾아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조업을 하던 어부들이 텅 빈 그물을 보고 “오 주여..”하고 한탄하던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엘 니뇨’ 현상은 보통 1개월에서 3개월까지 지속되며 그로 인해 발생한 결과는 이후 수년간 영향을 미친다. 해수 온도가 평년 수준으로 회복되는 것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은 어업 활동이 정상 수준으로 되돌아갈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2017년 페루는 20년 만의 최악의 ‘엘 니뇨’를 맞았다. 과거에는 ‘엘 니뇨’가 시작되면 전에 없던 열대 난류성 어종들이 대거 등장해 페루 수산 업계가 예기치 않은 호황을 맞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엘 니뇨’를 아기 예수가 가져 온 ‘재앙’이 아닌 ‘선물’로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페루 수산물 수출에서 가장 효자 역할을 하는 것은 바로 ‘대왕 오징어’이다. 수온에 민감한 오징어는 갑작스러운 이상 기온 현상이 나타나면 어장을 형성하지 못한다. 혐오 동물로 인식되어 내수 시장에서는 수요가 없는 상품을 아시아, 유럽에 까지 높은 가격을 받고 팔 수 있으니 ‘대왕 오징어’의 어획량 감소는 페루 수산 업계에 큰 재앙이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해산물 사랑 국가이다. UNFAO(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2013~2015년 우리나라의 연간 인당 수산물 섭취량은 54.8kg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제 서민들의 대표 수산물 반찬이었던 오징어는 수입 대체마저 어려워진 금(金)징어가 되었고, 건어물녀는 아무나 누릴 수 없는 캐릭터가 되었다. 우리나라에게도 ‘엘 니뇨’가 아기 예수의 ‘선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국선아(끌라라) 중남미 지역학 박사과정/스페인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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