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당신의 인상을 인상하라!’

당췌 웃을 일이 없다?

  • 입력 : 2018.01.30 09:38:37    수정 : 2018.01.30 20:3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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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픽사베이



어렸을 때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 중에서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것이 있었다. 마땅한 오락거리가 없던 시절에 유일하다시피 한 코미디 프로그램이라서 많은 사람이 그것을 보는 것을 낙으로 삼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 프로그램을 보고 나서 복이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잠깐이나마 실컷 웃어제낄 수 있었다.

요즘은 텔레비전 채널만 해도 다양하고 개그나 코믹한 요소가 가미된 볼거리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크게 웃어제낄 수 있는 일이 많지는 않은 것 같다. 우리는 왜 웃지 못할까? 일에 지쳐서일까? 언제 밀려날지 모르는 일자리 때문일까? 혹시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인공지능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며 미리 걱정하는 것은 아닐까?

‘4차 산업혁명시대 일자리의 변화’라는 주제로 진행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유명한 과학자가 나와서 첫 강의를 진행했는데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줄어들 거라는 걱정에 대해 말했다. 인공지능 로봇이 우리의 일자리를 모조리 빼앗아 갈 거라 말하지만, 직업에는 기능적인 면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한다. 즉 심리적인 요소, 경제적인 요소, 사회적인 요소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대부분의 직업이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이클이 우리가 당대에 피부로 느낄 만큼 짧지는 않다는 것이다. 없어지는 직업도 많지만 새로 생기는 직업도 많다고 한다. 요즘 동네마다 흔하게 볼 수 있는 네일샵의 필요성을 수십 년 전에 이미 예측한 사람이 과연 있었을까?

같은 대상도 지위가 달라지면 관련 산업이 무한대로 펼쳐진다. 어릴 적 집집마다 기르던 강아지에게는 사료를 따로 사다 먹이지 않았다. 잔반에다 밥을 대충 비벼서 주는 식이었다. 그러다가 좀 크면 직접 잡아먹거나 개장수에게 팔아버리는 일이 흔했다. 그 당시로 되돌아가 강아지 연관 검색어를 나열했다면 기껏해야 ‘개장수’나 ‘보신탕집’ 정도였을 것이다. 요즘은 어떤가? 우리는 그들을 강아지, 고양이라고 부르지 않고 반려견, 반려묘로 부른다. 그렇게 지위가 격상된 그들은 연관된 사업으로 인해 일자리를 무한대로 늘리는 중이다.

우선 먹이인 사료의 종류만 해도 유기농부터 수입품, 간식 등 매우 다양하다. 사료 수입 업체, 사료 제조업체도 필요하다. 그들이 가끔씩 들어가는 집도 평형별로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으며, 재질과 모양도 다양하다. 심지어 요즘은 반려견이 죽으면 장례업체도 불러야 한다. 강아지 호텔은 시작된 지 좀 되었고, 요즘은 강아지 학교나 유치원도 인기를 끌고 있다.

실제로 우리 집 강아지가 시끄럽게 짖으니 옆집 아주머니께서는 유능한 강아지 훈련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성격을 온순하게 바꿀 수 있다나? 일종의 고액과외선생인 셈이다. 이렇게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하나만 해도 연관 직업이 다양하다. 예전에 비해 순간의 감정을 중시하고, 외로움을 해소하는 산업이 활성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 하고 있는 내 직업이 사라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도미노처럼 다른 것까지도 걱정하는 습관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앞질러 걱정하는 습관이 몸에 배게 되면, 늘 수심 가득한 얼굴을 하고 다니게 된다. 매사에 ‘걱정형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 걱정을 얼굴에 주렁주렁 달고 있으면 누구나 한눈에 봐도 알아챌 수 있다.

‘웃으면 복이 와요.’라고 아무리 외쳐봐야 소용이 없다. ‘웃을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내 일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데...’ 또는 ‘지금 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이 나에게 더 잘 맞는데...’라고 하면서 현실에 불만을 갖거나 하는 일들이 얼굴을 자꾸 어둡게 만든다.

이제 얼굴을 펴자. 그리고 웃어보자. 지금 걱정하는 일들은 대부분 일어나지 않을 일들이다. 과거에 걱정했던 일들을 돌이켜 보면 알 수 있다. 제법 예리했던 ‘걱정 추리’들도 대부분 틀리지 않았는가? 뭐든 천천히 준비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적어도 ‘복이 오는 얼굴’을 하려면 말이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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