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그립거나 다행이다'

모든 사람은 아름답다 - 단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만!

  • 입력 : 2018.10.05 11:21:47    수정 : 2018.10.05 18: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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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프로필 사진을 찍게 되었다. 스튜디오를 고르다가 지인의 소개를 받아서 잘 찍는다는 곳으로 갔다. 내가 사진작가에게 처음 한 말은 나이가 많지만 예쁘게 찍어달라는 거였다. 그 스튜디오에 진열된 사진 속 주인공들이 모두 나보다 젊었기에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사진작가의 말은 내게 절망감을 안겨주었다. “욕심도 많으세요. 그 나이에 예쁘길 바라다니요.”

아니, 아무리 내가 나이가 많아도 그렇지. 꼭 그렇게 말해야만 하나? 하면서 야속했지만 달리 대꾸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언행이 정확히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과연 내 얼굴을 찍는 내내 그의 눈빛이나 손놀림에서 어떠한 기대감도 읽을 수 없었다.

얼마 후 나는 그 작업의 결과물을 손에 들고 던져버리고 싶은 유혹을 참느라 힘들었다. 적어도 사진이 실물보다는 젊거나 예쁘게 나와야 하지 않나? 하면서.

그 뒤로 또 프로필 사진이 필요하게 됐을 때 지인으로부터 다른 스튜디오를 추천받았다. 그 지인이 적극 추천해 주면서 하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 지인의 사진이 실물보다 아름답고 느낌이 좋아서 칭찬을 했더니 “그 작가는 일단 사람을 알아요. 사진을 찍기 전에 많은 이야기를 시켜서 어색함이 사라졌을 때 사진을 찍으니 자연스럽게 나오던데요.”

과연 지인의 말이 맞았다. 촬영 전에 나는 사진작가와 차를 마시면서 이 얘기 저 얘기로 꽃을 피웠다. 알고 보니 뉴욕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던 실력자였다. 그가 작업한 멋진 사진들을 보며 사진을 찍기가 어렵지 않은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가 한 말이 가슴에 남았다. “아뇨. 아주 쉬워요.”

내가 되물었다. “쉽다니요. 나는 막상 찍어보면 구도가 안 맞고 순간포착도 어렵고 하던데, 무엇보다 각도를 어떻게 잡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러자 그가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나는 알고 있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작가가 모델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찍어야 사진도 예쁘게 나온다고 말했다.

과연 그의 말이 맞았다. 내 사진이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저 사진속의 아리따운 여인이 누구란 말인가?’ 하면서. 과한 보정작업을 하지 않았는데도 다른 스튜디오 사진과 달랐다.

그는 작업을 하면서 끊임없이 말을 시켰다. 긴장되는데 왜 자꾸 말을 시키느냐고 하니, 그래서 말을 시키는 거라고 했다. 내가 어색하면 사진도 어색하다고. 그가 말하기를 연예인과 작업할 때마저도 좋은 표정을 잡아내는 건 쉽지가 않다고 한다. 좋은 표정은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자연스러움의 결과라고. 자신은 앵글로 충실히 담을 뿐이란다.

1시간 가까이 작업을 하던 중 한숨을 푹 내쉬면서 그가 조금 쉬자고 했다. 내가 왜 그러느냐고 했더니 실제로는 내가 예쁜데 앵글 속에는 그게 담기지 않는다고 했다. 나에게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최근 스트레스 받는 일이 있다고 했다. 그러자 차를 마시면서 조금 휴식을 취하라고 했다.

그는 마음이 어두우면 사진도 밝게 나오지 않는다면서 슬쩍 내 아이들에 대해서 물었다. 엄마라는 존재는 자식 이야기라면 늘 즐겁다. 나는 핸드폰에 있는 아이들 사진까지 꺼내 보이며, 자랑이랄 것도 없는 내용을 가지고 실없이 흐흐거리면서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사진 촬영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그가 연신 탄성을 질렀다. “좋아요. 바로 그거예요. 역시 아이들 이야기를 하니까 다시 행복해지셨나 봐요.”

그 뒤로도 “와, 진짜 멋지다. 예쁘다.” 하면서 감탄을 했다. 내 나이에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오글거려 죽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가 ‘예쁘다.’라고 하는 말이 무슨 의미인줄 안다. 엄마라는 신분을 떠올리면서 가졌을 나의 자부심,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절절이 드러나는 환한 미소, 그는 그걸 포착한 거다. 그는 내 마음을 찍고 있었다.

그 사진작가가 가르쳐준 것은 이것이다. “모든 사람은 예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 그걸 모르고 산다. 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마음이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서 예뻐 보인다.”

내가 나 자신을 싫어하던 때가 있다. 그 때는 남들이 나를 더 싫어했다. 나는 남들이 나를 싫어한 게 먼저라고 핑계를 대었다. 하지만 그럴 리가 없다. 굳이 남을 이유 없이 싫어하다니. 그렇다면 내가 나를 싫어하는 것을 남들이 어떻게 알아차릴까? 바로 얼굴이다. 사람의 얼굴이 얼마나 복잡한 곳인지, 또 중요한 곳인지 살면서 더욱 느끼게 된다.

대한민국 어느 누구라도 하루 종일 하하 호호 살기는 힘들다. 요즘 시대는 특히 젊은이들에게 가혹하다. 또 노인 빈곤 율은 어떠한가? 하지만 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서, 내가 먼저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걸 느낀다. 우리 모두 우울한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면 안될까?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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