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그립거나 다행이다'

남의 눈치 볼 필요 없다. 미리 눈치를 채면 되니까!

  • 입력 : 2018.10.02 10:43:23    수정 : 2018.10.02 22:5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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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학교에서 지도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바로 남을 이유 없이 때리는 아이의 경우이다. 이 학생의 부모가 깨어있다면 상관이 없다. 가정에서 남을 때리는 게 나쁘다는 걸 교육하면 되니까. 문제는 가정에서 잘못된 가정교육을 하는 경우다.

기분이 나쁘면 아이들에게 무조건 주먹을 휘두르는 아이가 있었다. 가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였다. 오히려 4대 독자로서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랐다. 과하면 뭐든 안 좋은 것일까? 그 학생은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무조건 드러눕는 스타일이었다.

예를 들어 체육시간에 축구를 하다가 골이 잘 들어가지 않으면 앞에 있는 남자애를 때렸다. 그 아이가 코피가 나고 아파해도 모른 척 했다. 그 사실을 그 학생 엄마에게 전화로 말씀 드렸다. 그러자 대뜸 맞은 애가 병원에 갈 일이면 병원비를 지불하겠단다. 사과는 한 마디도 없이. 그리고 자기 아이는 혼내지 말란다. 기가 막혔다. 그리고 뒤에 이어진 말, 자기 집안에서 그 아이는 특별하니 기죽이지 말란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시면 난리난다고. 귀한 자식이면 남을 해코지해도 된다는 말인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눈치 보는 아이로 키우기 싫다는 말이 무언지 생각해 봤다. 눈치를 본다는 말은 약간 부정적이다. 마치 노예들이 주인이 하라는 대로만 하고 자기 의사가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눈치를 챈다는 건 어떨까? 남의 눈치를 본다고 하지 말고 남의 감정, 기분 등을 알아서 행동하는 능력. 그것은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약간의 공감능력만 있으면 눈치를 미리 채서 행동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를 거친 조부모 시대에는 특히 일본사람들 눈치를 많이 보셨다. 그 분들이 손주를 바라볼 때 눈치 보는 아이로 크는 건 가슴이 아프실 것이다. 하지만 남의 눈치를 살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도움이 되는 사회인으로 성장시키기 위해 교육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이제 눈치를 본다는 말 자체가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 부정적인 어감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감능력을 퇴화시킨다. 눈치를 잘 살피고 눈치를 잘 채는 사람이라는 말로 바꾸면 한결 듣기가 좋다.

남의 의사를 마지못해 수동적으로 따라하는 것과 능동적으로 나서서 남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 것. 그 둘의 차이는 엄청나다. 이제 남이 원하는 바를 재빠르게 알아내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가 되었다. 눈치를 빨리 빨리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눈치를 볼 일이 없어진다.

눈치를 잘 살핀다는 것, 그것은 기본적으로 남의 표정을 잘 살피고 변화를 잘 감지한다는 뜻이다. 얼굴색은 어떻게 변화되는지 눈썹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눈꼬리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입 꼬리는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등등 말이다.

인류의 오래된 조상인 호모사피엔스들이 사냥을 할 때 이런 표정읽기는 생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협동작전으로 멧돼지를 잡으려다가 사자가 근처에 다가왔는데 동료에게 알려주어야 하는 순간,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의사표시를 할 방법은 표정밖에 없다. 서로 언어가 통하지 않을 때에도 요긴했다. 이처럼 우리의 얼굴 표정을 살피는 것은 우리의 생존본능으로서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남의 눈치를 살핀다는 건 인류를 지속시킬, 가장 원초적인 의사소통 도구가 아닐까?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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