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당신의 인상을 인상하라!’

때론 절제된 무표정이 감동을 준다

  • 입력 : 2018.09.19 09:56:43    수정 : 2018.09.19 18:0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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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흔히 표정이 풍부해야 좋은 인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때론 무표정에 감동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결혼식에 갈 때마다 신부 측 아버지 얼굴을 관찰하곤 한다. 신부 측 아버지는 대개 무표정하다. 그 무표정이 나는 더욱 슬프다.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딸 바보이다. 집에서 매일 보던,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이 오늘 저녁부터 우리 집으로 안 들어온다는 것. 그것처럼 허전한 일이 또 있을까? 엄마는 평소 딸과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하고, 시집 안 간 딸이 늦게까지 집에 있으면 불편하다. 하지만 아빠는 딸이 아무리 늙어도 그저 귀여운 어린 시절의 딸로 보이나보다.

일흔 살이 넘은 부인이 있었다. 그에게는 마흔이 다 된 딸이 있었는데 결혼할 마음이 전혀 없어보였다. 결국 선을 보게 해서 결혼을 시키게 되었는데, 신부 측 아버지는 아직도 마흔 넘은 딸이 어리게만 보인 것일까? 부인에게 왜 그렇게 결혼을 재촉하느냐면서, 천천히 보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흔 살인데도 천천히 보내라니. 아버지들은 딸을 시집보내는 것에 대해 어머니들보다 상실감을 더욱 크게 느끼는 것 같다.

그 마음이 결혼식장에서는 무표정하지만 집에 와서는 식사도 적게 하고 담배만 계속 피우시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한다. 그러니 결혼식장에서의 무표정이 더욱 가슴 아픈 것이다. 뭐든 속으로 삭히기만 하는 이 땅의 아버지들.

무표정은 절제력의 상징이기도 하고, 역설적으로 많은 표정을 담고 있기도 하다. 나는 음악인들을 사랑한다. 그들이 불투명한 자신의 미래를 담보로 하여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것도 그렇고, 그들이 만든 음악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는지 생각하면. 특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전 국민이 그 가수 선정에 참여하는 방식이나 경쟁을 통해 공개적으로 데뷔한다는 점이 매력적으로 보인다. 금 수저나 흙 수저 할 것 없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는 기회라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디션 출신 가수들을 자주 응원하는 데 특히 정승환이라는 가수를 좋아한다. 계기가 있었다. 그 가수가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올 당시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다. 슬픔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우연히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데, 한 남자고등학생이 교복을 입고 나왔다. 머리는 이마를 수북히 덮었고, 여드름이 빼곡한 얼굴에 분위기가 무척 어두워 보였다.

교복을 입고 등장한 것부터가 남달라 보였는데, 밑에 자막으로 그가 사는 지명이 나오고 있었다. 안산이라고 쓰여 있었다. 속으로 나는 안산 단원고 학생인가보다 하고 지레짐작을 해 버렸다. 그렇게 생각하자 그가 부르는 모든 노래가 세월호와 관련되어 보였다. 심지어 말하는 내용까지. 특히 첫 노래가 ‘지나간다’였는데 세월호로 입은 슬픔이 위로되는 경험을 했다. 아마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학생이거나 같은 학교 학생일거라고 보았다.

그러나 한참 나중에 거주지가 안산이 아니라 인천이었다는 알게 되었다. 그 당시 내 눈은 노안이 진행되던 터라 자막글씨를 잘못 본 것이다. 그리고 그가 성격이 어둡다기보다는 신중하고 진지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가 가수로 데뷔하고 성공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그의 신중함이 가수활동에 도움이 된다는 걸 느꼈다. 감정을 쉽게 드러내지 않고 매사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사람은 실수가 적다. 특히 말이 많은 연예계 생활에서 강점이 되는 셈이다. 즉 자신의 감정을 절제할 줄 안다는 건 대단한 장점이다. 그는 감성이 뛰어나서 평소에는 표정을 극도로 절제하지만, 노래를 부를 때 매우 섬세한 표정을 지어서 감동을 준다.

송강호나 이병헌 같은 대 배우들도 무표정의 대가이다. 그들은 극도의 슬픔을 표현할 때 매우 섬세한 표정연기를 한다. 연기를 배운 사람에게 들었는데, 동작을 크게 하는 건 쉽단다. 하지만 절제된 동작과 표정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게 무척 어렵다고 한다. 그건 고수들이나 할 수 있다고.

혹시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고는 자신은 뒤끝이 없는 사람이라고 자기 합리화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건 뒤끝이 없는 게 아니라 인격이 없는 게 아닐까?

수시로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감정을 조절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적당히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은 그것이 인격이 되어 잘 갈무리된 표정으로 나타난다. 때론 무표정하게 보이지만 그것은 무뚝뚝한 것과 다르다. 절제된 감정이 절제된 표정으로 나타난 것이다.

가끔 은행이나 식당 등에서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소리치고 화내는 장면을 볼 때가 있다. 그들이 절제된 마음과 또 그것이 표현된, 절제된 표정을 짓는다면 대한민국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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