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그립거나 다행이다'

컴퓨터 옆에 시집을 두어야 하는 시대

  • 입력 : 2018.03.06 11:32:26    수정 : 2018.03.06 20:4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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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친구 딸은 피아노를 전공하려고 한다. 그런데 레슨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 “연애도 안 해봤니? 차여 본 적도 없어? 성격이 항상 밝은 건 좋은데 슬픈 감정도 알아야 감성이 살아난다고.” 친구 딸은 엄마에게 자신도 슬픈 감정이 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투덜댔다. 문제는 그 슬픔이 아주 사소한 것이라 제대로 표현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요즘 아이들은 경험의 폭이 이 전 시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좁다.

친구는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서 어린 시절에 소녀 가장으로 살다시피 했다. 그래서 자식만은 행복하게 살길 원했다. 어릴 때 부모가 싸우는 것을 많이 보고 자라서, 자신은 아이들 앞에서 부부 싸움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밥 짓고 빨래하면서 학교를 다닌 것이 한스러워 집안일은 한 번도 시키지 않았다. 자녀들 옷 정리는 물론이고 방 청소도 대신해주었다. 편안한 자식들의 모습에 자신을 오버랩 시키면서 대리만족했던 것이다.

그랬던 친구가 뿌듯해하면서 딸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네가 고생을 전혀 모르는 아이로 자라길 바랐단다. 그랬더니 네가 슬퍼하는 법도 아예 모르나 보다.” 그런데 그 말을 듣자, 친구 딸이 갑자기 펑펑 울었다고 한다. “엄만 내가 행복해 보여? 나에게 감정이 너무 없어서 음악을 포기할 수도 있는데?” 친구는 기가 막혔다. 고생을 하지 않으면 무조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니, 오히려 힘들다니...그럼 처음부터 힘든 것도 알게 하고, 이것저것 다 느끼면서 자라게 했어야 한 걸까?

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에드 디너, 로버트 비스워스 디너가 행복에 대해 과학적으로 연구한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이라는 책이 있다. 그들은 사람이 행복을 느끼기 위해서는 100% 기쁨만으로는 힘들다고 말한다. 반대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명화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83%의 기쁨과 17%의 슬픔이 조화롭게 균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행복은 바로 이처럼 여러 가지 감정이 자신에게 딱 맞도록 조화를 이룬 ‘주관적 안녕 상태’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행복을 말할 때 슬픔이 조금도 없고 불안감도 결코 없는 무풍지대를 생각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런 상태가 되면 무기력해지고 무의미함만을 느끼게 된다. 즉 인생에는 적당한 슬픔과 긴장감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조금 불행한 행복’을 원하라고 말한다. 우리 부모시대에는 많은 사람이 어렵게 살았지만 지금은 전에 비해 더없이 풍요로워졌다. 따라서 행복의 잣대가 출발점부터 다르다.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이 쓴 책 《일의 미래》에서는 고생했던 부모 세대를 ‘부의 신세계로 이민 온 사람들’, 그리고 지금 자라나는 세대들을 ‘부유한 세계의 원주민들’이라고 말한다. 즉 부모 세대는 어렵게 시작해서 생활이 점점 나아지는 것을 지켜보며 큰 행복감을 느꼈다. 물질적인 성장이 곧 행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요즘 세대들은 기대치가 처음부터 높아 웬만해서는 만족하기가 어렵다. 따라서 천편일률적인 성공 공식으로 노력하던 기성 세대와 달리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기가 잘하는 일을 찾을 것을 권한다.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앞으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다. 심지어 로봇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섬세한 감성이 필요한 일은 당분간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 특유의 감성을 발휘하게 하려면 자녀들을 슬픔과 고통도 적당히 즐길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도 말이다.

10년 전 유능한 미래학자 존 나이스비트가《마인드 세트》라는 책에서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앞으로는 컴퓨터 옆에 시집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잘 이해되지 않던 말이었는데 이제는 알 것 같다. 다가오는 미래에는 감성과 창의력을 가진 사람만이 성공할 것이고, 그런 감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이나 고통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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