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그립거나 다행이다'

사람의 얼굴에 털이 없는 이유

  • 입력 : 2018.02.23 12:37:03    수정 : 2018.02.23 19: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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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대부분의 동물은 얼굴이 털로 덮여 있다. 그러나 사람의 얼굴에는 털이 없다. 아주 오래 전에는 얼굴에 털이 있는 원시인도 있었지만, 결국 털이 없는 종만 살아남았다. 생각이나 미묘한 감정을 세밀하게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감정을 표현하는 것은 개인적·신체적 안녕에 필수 요소이다. 이 세밀한 감정의 전달은 인간이 문명을 이루고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 한몫 했다.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점들 중 또 한 가지는 눈에 흰자위가 있다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은 동공이 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은 검은자위가 흰 자위의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 동공을 이리저리 굴릴 수가 있다.

이는 사회적인 행동을 하기 위한 장치라 한다. 즉 눈알을 굴리며 이리저리 눈치를 살피는 것이다. 눈치를 살핀다는 것이 자존감이 결여되어 남의 뜻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의 불편함과 원하는 바를 미리 알아차려서 실수하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다는 면에서 꼭 필요한 능력이다.

요즘은 아이들을 하나나 둘만 낳다 보니 눈치를 보는 아이들을 점점 보기 어렵게 된다. 엄마들은 자기 아이가 남의 눈치를 보면 기가 죽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특히 식당에서 마음대로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그대로 두는 부모들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로 인해 일어나는 안전사고 등의 문제로 영유아의 출입을 제한하는 ‘노 키즈 존’이 생겨나고 있다. 얼마 전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아이가 뛰어놀다가 음식물을 엎었는데 부모가 이에 대해 미안해하지 않자, 이를 지켜보던 손님이 식당 편을 들었다.

손님의 대응법이 꽤 과격했는데도 네티즌들은 오히려 그 손님이 잘했다고 편을 드는 경향이 있었다. 이 댓글난은 소위 맘충이라 일컬어지는 엄마들에게 한이 맺힌 사람들의 성토대회장이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교사로서 회의가 드는 때가 있다. 바로 자기 아이만 최고로 여기는 학부모들의 항의를 받을 때이다. 심지어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청결하지 못한 학생이 짝이 되면 바꿔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러면 ‘문제의 학생은 누구의 짝이 되어야 하나?’ 하는 난감한 문제가 생긴다. 자기 아이만 행복하면 되는 것인가? 같이 행복하면 안 되는 것일까?

얼마 전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 앞에 경비원이 경고문을 써 놓았다. ‘앞에다가 음식물 쓰레기를 그냥 버리면 나뿐 사람’

나는 ‘나쁜’을 ‘나뿐’으로 잘못 쓴 경비원 아저씨의 귀여운 실수에 웃음이 났다. ‘차카게 살자’(착하게 살자)의 반대 버전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오히려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나뿐(인) 사람’은 ‘나와 너도 같이’인 사람보다 나쁜 거니까 말이다. 그 ‘나뿐 사람’은 아마 음식물 수거카드를 실수로 안 가져와서, 음식물 쓰레기를 수거함 앞에 두고 갔을 것이다. 자기 집에 두면 냄새나는 쓰레기를 남들이 지나다니는 길에 버젓이 두고 싶었을까? 자기 집만 깨끗하고 냄새가 안 나면 되는 것일까? 글자 그대로 이 세상에서 나뿐인 사람인 것이다.

여러 원시인 중에서 유독, 얼굴에 털이 없는 원시인만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앞으로도 남의 표정을 제대로 읽으며, ‘나뿐’이 아니라 남들과 같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 지구상에서 오래 생존하려면 말이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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