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가 닳도록’ 여행하고 싶은 그대에게

[마르가 닳도록 스페인어] 한국에는 김치, 스페인에는 하몬 이야기로 보는 스페인 음식 ④ 하몬(jamón)

  • 입력 : 2018.05.04 11:30:48    수정 : 2018.05.04 14: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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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페인어를 처음 시작했던 13년 전에는 지금처럼 국내에서 스페인 음식을 실제로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다. 교과서 속 삽화와 설명, TV 여행프로그램 등을 통해 ‘빠에야(paella)는 해물 잔뜩 넣은 볶음밥이랑 비슷한 맛이겠구나!’, ‘가스파초(gazpacho)는 토마토랑 오이를 넣어 만든 우리나라 냉국 같으려나?’와 같이 경험한 맛을 토대로 상상 속에서 음식 기행을 하는 정도가 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스페인에 다녀온 학교 선생님께서 문화시간에 학생들이 맛볼 수 있도록 하몬(jamón)을 공수해 오셨고 조금씩 잘라 다같이 나눠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경험한 ‘스페인의 향기’는 정말 어마어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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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어린 내 눈에 하몬의 첫인상은 ‘생고기’를 얇게 썰어서, 흡사 샤브샤브 요리집에 가면 나오는 고기를 말려놓은 것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그 맛이 ‘어마어마’했다고 기억하게끔 하는 요인중에 하나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 때문이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맛있다며 하몬을 좋아했던 친구들도 있었지만 ‘헉’소리를 내며 입안에 있던 것을 씹어 삼키지 못하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일부는 냄새 때문에 전의를 상실하고 하몬을 아예 입에 넣지도 못했다.

나 역시 호기심에 하몬 약간을 입에 넣었지만 냄새가 썩 좋지 않다는 강한 인상에 사로잡혀 씹어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뱉어냈다. 그리고 속으로 ‘스페인에 혹여나 가게되더라도 내 돈주고 찾아서 사먹고 싶은 맛은 아니군.’하고 생각했다.

‘하몬’은 돼지의 뒷다리를 익히지 않고 통으로 잘라, 염장과 건조의 과정을 여러번 거쳐 만들어지는 스페인의 대표 식품이다. 1000년경 돼지가 스페인으로 수입되었던 때에, 고기를 장기간 보관하며 먹기 위한 일종의 저장법을 고안하다가 하몬이 탄생되었다고 한다.

특별한 냉장보관이 필요하지 않고, 별도의 조리 과정도 추가할 것 없이 생으로 먹을 수 있어서 스페인의 식당이나, 가정에서는 쉽게 하몬 다리 하나가 통으로 부엌 한쪽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스페인 사람들에게 하몬은 일상적인 음식인 셈이다.

하몬의 고장답게 돼지의 품종, 그 돼지가 어디에서 자랐는지 등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하몬 이베리코 데 베요타(Jamón ibérico de bellota)’가 그 중 최상품으로 도토리를 먹은 이베리코 돼지를 최소 36개월 건조시켜 만든다.

돼지 뒷다리를 잘라 생으로 말리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하얀 곰팡이가 생겨나는데, 이는 부패되는게 아니라 우리나라의 김치처럼 발효가 되는 것이라 인체에 오히려 유익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김치가 익으면서 나는 냄새가 있듯이, 하몬 역시 발효과정을 거치며 나는 육류 특유의 냄새가 있다.

벽면에 돼지기름이 튀어 누르스름해진 오래된 삼겹살집에서 날법한 냄새라고하면 비슷할까? 어찌됐든, 우리에게는 생경한 돼지 뒷다리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와 독특한 냄새로 인해 올리브와 함께 한국인들에게는 자주 호불호가 갈리는 스페인 음식인게 사실이다.

어마어마했던 하몬의 첫 향기를 잊고 살다가 바르셀로나로 유학시절 다시 하몬을 마주했다. 그리고 다시 맛본 스페인에서의 하몬의 맛은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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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나의 입맛이 변했다거나 하몬의 종류가 달라진 탓도 있겠으나 그때는 하몬이 ‘나의 스페인 생활’이라는 새로운 세계 앞에 놓인 하나의 생(生)으로 다가 왔던 것 같다. 낯선 냄새는 여전했지만 스페인을 맛본다는 열린 마음으로, 용기를 내어 뱉어내지 않고 씹어보니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보까디요(bacadillo: 스페인식 바게트 샌드위치) 사이에 끼워넣어 먹거나, 상그리아의 안주, 피자의 토핑 등 아주 다양하게 하몬의 향과 맛이 잘 녹아든 음식들을 스스럼 없이 먹다보니 어느새 하몬의 싫었던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지인들과 마트나 백화점에서 파는 하몬을 발견하면 냉큼 공수하여 멜론 꼰 하몬(melón con jamón)을 만들어 먹기도 할정도로 좋아하는 음식이 되었다.

얼마 전 대학원에서 블록세미나가 열려 쿠바에서 저명한 학자 두 분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 때, 강연을 해주셨던 Z교수님께서 한국의 김치, 산낙지를 비롯한 처음보는 음식들을 기꺼운 마음으로 용기내어 맛보고 즐거워하시는 모습이 고맙고 인상적이었다.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그들에게 익숙하지 않을 김치, 된장 등의 음식이 가진 냄새가 좋지 않았을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나의 하몬을 떠올렸다. 강한 냄새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며 경험해보지 않고, ‘다시는 하몬을 맛보지 않으리’ 선입견을 가졌던 나의 태도를 반성하고 싶다.

[곽은미/마르가 스페인어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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