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의 아트칼럼

물리적 거리도 가깝게 하는 예술의 힘

  • 입력 : 2017.10.11 15:46:04    수정 : 2017.10.11 20:0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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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소 – 이중섭 출처-위키피디아



인간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하는지도 모른다. 인류는 산업화, 경제적 근대화, 과학기술 등으로 문명을 발전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에서 왜 비인간화, 소외화되는 현상이 커져만 가는걸까?

발전의 긍정적 결과인 ‘물질적, 경제적 부가가치’를 증대시키는 것만이 아닌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도 살아 갈 수 있는 힘이 사랑하는 삶일 것이다. 사랑한다는 감정 앞에는 모든 갈등이 눈처럼 녹아 버린다.

그만큼 그 힘은 위대한 것인데 이성적 판단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도 사랑의 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동질화되며 사랑은 이해관계를 초월할 수 있는 힘인 것이다. 생각은 혼자서 할 수 있지만 사랑은 혼자 할 수 없다. 여기 한국의 가장 대표적 작가이며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작품을 그린 화가가 있다.

바로 역동적인 '황소'의 작가로 유명한 이중섭 작가이다.

사랑은 본래 하나이던 것이 인간의 삶 속에 나뉘어 존재하기에 인간은 삶 속에 사랑에 의한 공유의 폭이 넓어지면서 사랑의 위대한 생명력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인스턴트 사랑이 난무한 현세대에 이중섭과 같은 순애보 사랑이 더 빛이 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예술은 감정과 이성이 결합된 것으로 분리된 것도 결합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재결합은 원래 하나였던 것의 분리를 전제한다.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을 극복하는 곳에서 사랑의 가장 큰 위력이 나타나게 된다.

한 민족을 단위로 볼 때 그 민족이 분단되어 있을 경우, 통일을 이룩하는 원동력은 민족애 또는 민족주의인 것은 바로 ‘나누어진 것을 결합시키는 사랑’의 힘인 것이다. 인간의 비인간화, 인간의 소외가 깊어진 곳, 본래의 인간으로부터 가장 심하게 분리되어 있는 부분들을 재결합시킬 수 있는 힘. 나의 이익을 우선시되는 것이 아니라, ‘너’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되므로 너에 대한 이해를 낳고, 이웃과 이웃이 연결되어 상호 이해는 상호 신뢰를 증진시킨다. 내가 부정되어 너의 입장으로 돌아가 너를 이해하며 상호간에 믿음이 생긴다. 이해관계를 초월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자기 긍정을 넓히는 것을 의미한다.

이중섭은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으며 그 고난과 슬픔을 한민족의 정서에서 작품으로 표현하였다.

일본에 떨어져 지낼 수 밖에 없던 가족에게 편지와 그리움이 담긴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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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린이와 복숭아 – 이중섭 출처-한국데이터진흥원



단순히 화가로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닌 한국이 겪은 시대상 분단과 역경을 한 개인이 겪었을 때의 감정과 내면으로 표현하였다. 이중섭은 '야마모토 마사코'라는 일본인 부인에게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온 덕이 많은 여자'라는 뜻으로 '남덕'이라는 애정어린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의 작품 '두 어린이와 복숭아'를 살펴보자. 그의 첫째 아들이 디프테리아에 걸려 죽자 하늘나라에서 외로울 아이를 위해 무릉도원에서 친구와 함께 뛰어 노는 그림을 그렸다. 그 그림과 함께 아이를 묻어주며 그의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아이를 잃은 슬픔도 조금은 위안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민족 분단의 고통, 산업화의 가속화로 인한 도덕, 가치관의 붕괴와 혼란, 민주화를 이룩하기 위한 전통, 자유와 평등간의 이데올로기적 부조화 등의 위기 의식을 극복할 수 있는, 이중섭의 글과 그림처럼 사랑이 담긴 예술이 이러한 갈등을 끌어 안을 힘을 가지고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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