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의 아트칼럼

예술을 통해 기억을 이루는 방법

  • 입력 : 2017.09.26 11:45:32    수정 : 2017.09.27 10:5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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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butade ou l'Origine de la peinture – Jean-Baptiste Regnault 출처-위키피디아



인간이라면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억이 흐려지고, 추억속에 담긴 우리의 감각도 무뎌지기 마련이다. 이 순간을 잡아두고 기억할 수는 없는 것일까. 인류의 시작과 함께 미술은 기록의 의미에서부터 시작하였다. 원시시대에는 그림이 곧 살기위한 정보이자 소통의 수단이었다. 문자가 등장하기 이전에 인류는 그림으로 기록하며 그 순간을 잡고 또는 어떠한 대상을 붙잡아두었다.

어떠한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그 순간 함께 있더라도 이별의 순간은 불현듯 찾아온다. 서로 사랑에 깊이 빠진 젊은 남녀에게도 어김없이 헤어짐의 시간은 찾아온다. 곧 떠날 연인을 담기 위해 여자는 그의 그림자 윤곽을 그리기로 결심한다. 돌아서면 잊을까봐 두렵고, 간직하고 싶은 대상 또는 추억을 소유하고 싶은 인간의 지극히 당연한 바람이다. 여자는 단순히 그의 형태만을 잃을까 두려운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까맣게 그을린 지팡이 끝으로 무덤 벽면에 비친 남자의 그림자 선을 애절하게 따라 그린다. 해가 저물어가는 은은한 붉은 빛 하늘에 아름다움과 우아함이 공존하는 부드러운 구름, 연인과 헤어질 시간이 다가온다. 가축을 몰고 먼 푸른 언덕을 거닐 양치기 연인의 그림자를 세세히 그리기 시작한다. 그의 부드러운 곱슬머리와 날렵한 콧대, 다부진 어깨 등을 기억하며 그려나간다. 이 모습을 물끄러미 개는 올려다보고, 둘의 그러한 모습을 인정하듯 그렇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소박한 피리를 들고 있는 양치기 남자는 어딘지 모를 슬픔을 지니고 있다.

미술은 경험을 보존하는 방식이며, 세상의 모든 드라마를 담아내는 것, 곧 미술의 기원이라 할 수 있다.

기록의 수단이 다양해진 현대에서 미술은 퇴보하는 것이 아닌 더욱 모습을 달리하고 진화할 수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성을 자유로이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자 감정을 아름다움으로 부풀리고 극대화할 수 있다.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어두운 기억과 떠올리기조차 하고 싶지 않은 순간까지 미화하여 표현하고, 나를 위로하고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기억은 더욱 감동적으로, 고통스러움과 불안한 심리는 표현함을 통해 같은 경험을 가진 사람들과 공감하며 치유하는 힘을 미술은 가지고 있다.

미술의 어찌 보면 단순한 기능과 기원을 통해 우리는 미술 활동으로 내면 세계를 표현하고 나의 감정을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킬 수 있다. 또 그러한 작품들로 인해 오랜 세월 동안 긍정적인 영향력을 예술가들이 행사하였다. 미술은 단어와 문장으로는 차마 다 표현되지 못하는 미묘한 그 감정과 경험을 승화하는 이 세상이 주는 가장 낭만적인 기술이 아닐까?

[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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