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7)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빚이란 무엇인가 (3) 빚의 경제학

  • 입력 : 2018.02.26 13:54:41    수정 : 2018.02.26 17:16:2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우리가 사는 근대(近代) 경제 질서 구축에 공헌한 경제학자들 사진출처:구글



경제학이라는 것은 원래 개인을 잘 살게 만드는 '부자학(富者學)'이 아니라 나라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려는 '사회과학'이다. 아담 스미스의 명저 ‘국부론’의 제목처럼 말이다. 경제학의 고전학파에게 개인은 이미 스스로 잘 살고 싶어 안달 나 있는 이기적인 존재이다. 오히려 이기적인 존재이기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기준이 생기기 때문이다. 인류가 중세에서 근대로 접어 들면서 가지게 된 가장 큰 고정관념은 '이전보다 더 성취하고 싶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인간의 성취욕이라는 것이 극에 다다를 때가 플러스 금리 시대의 시작이고 이 성취욕이 서서히 사라져갈 때가 마이너스 금리 시대의 시작이다. 19세기까지 경제학이란 배운 어른들이 하는 가상 현실 게임이었다. 세상에 있지도 않은 이상적인 이야기를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럴듯한 가설로 발표하고 주변에서 박수 치거나 조롱하는 게임 말이다. 여러분도 한번은 읽어봤을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를 보면 18,19세기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가지는 공통된 관심사가 있다. 바로 어떻게 하면 사회 구성원들의 경제활동 의욕을 고취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 말이다. 이걸 통화정책으로 할 것인지 재정정책으로 할 것인지를 가지고 근래 100년전부터 말싸움을 해온 것이다. 요즘은 케인즈 학파 즉 재정주의자가 대세다. 사회 불평등이 심해지고 복지에 대해 정부에 기대려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정부의 힘은 강해지기 때문이다. 통화주의자들은 인간의 주체적인 성취욕을 좀더 근본적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반대로 재정주의자들은 인간이 가진 나태함에 더 주목을 한 사람들이다. 모두 에드워드 기번이 말했듯 과거 그토록 잘나가던 로마가 폭삭 망한 이유인 '어린아이다움'과 '나태함'을 각각 제어할 방법을 찾아내려 한 것이다. 결국 경제학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매우 현실적인 분야 같지만 사실 매우 철학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분야이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제 신용은 나를 옥죄는 족쇄가 아니라 내게 힘을 실어주는 경제파워다. 사진출처:구글



지난 500년동안 인류에게 부채는 악(惡)이었다. 사업을 해도 부채를 지지 않고 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해왔었고 부실기업이라는 것의 기준은 부채비율로 정해졌다. 자본잠식의 상황보다 부채비율 100%를 더 심각하게 본 적도 있었다. 심지어 돈을 빌려주고 받지 않는 것도 악으로 생각한 시대. 빚을 지지도 말고 주지도 말자란 말이 가장 보편화되던 시대 말이다. 20세기는 인간이 빚이라는 것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인식을 깨트리는 세기였다. 세계 초강대국들은 앞다투어 빚을 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영국 일본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들은 자국의 GDP에 가까운 부채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특히 소위 기축통화 국가들은 독일을 제외하고는 정부부채에 대해 관대함을 유지하려 애를 썼다. 여러분들이 상식적으로 알아둘 것이 공산주의국가는 빚이라는 개념이 없다. 빚이라는 개념이 중세에 그 개념조차 약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회가 공유경제에 가까울수록 빚의 개념은 약하다. 따라서 생산수단을 함께 공평하게 공유하는 공산주의의 경우는 장부상 부채란 개념 자체가 없어진다. 빚이라는 것은 생산수단이나 자본의 사유화가 가능한 사회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파산할 수 없다는 말은 고전 경제학자들에게는 매우 유감스러운 말이겠지만 사실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자본주의적인 국가인 미국이 초월적인 부채에도 파산하지 않는 것은 그 이유이다. 과거 방송으로 곧잘 나오던 국가부도사태라는 것은 국가가 대외지불수단이 없다는 말이지 국가가 파산하여 청산된다는 말이 아니다. 이유가 무엇일까. 국가라는 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존귀한 법 인격을 가졌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인간보다 더 존귀한 법 인격은 국가다. 국가가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없다는 말은 국가가 개인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위의 개념이라는 말이다. 철의 여인 대처 수상이 자국민들의 절반 이상에게 욕을 먹은 이유는 대처가 가진 국가 빚의 개념에 대한 욕이었다. 역사적으로 대다수의 국민들은 국가가 균형예산을 집행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자를 무릅쓰길 바란다. 이유는 간단하다. 국가는 적자라고 찾아와 돈을 달라고 할 빚쟁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고 설령 있다 하더라고 또 빌려서 지불하면 그만이다. 국가는 필요할 때 공공의 이익을 명분으로 영토내의 모든 필요한 재산을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는 권한(물론 함부로 사용하지는 않는다. 다음 선거에서 질 것이니 말이다)이 있고 심지어는 타국과 채무를 이행하지 않고 전쟁을 할 권한도 가지고 있다.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천문학적인 전쟁 비용도 빚으로 모두 해결된다는 것을 알아버린 20세기의 정치가들 사진출처:구글



20세기에 일어난 2차에 걸친 세계대전과 한국, 베트남,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은 모두 빚의 전쟁이었다. 개인이라면 절대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차에 걸친 세계대전이 그토록 소모전이었던 이유는 국가가 빚으로 한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 군대가 전 유럽을 제패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인류최초로 근대적 국가 수행 전쟁이었기에 가능했다. 당시는 국가가 국민을 무상으로 총동원한다는 것 자체가 신개념의 발상이었다. 모두 나폴레옹의 덕분이다. 국가라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해 준 사람 (히틀러가 후에 이걸 그대로 따라 한다)이니 말이다. 모두 '국가 빚'이라는 개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전에는 경제학이라고 하지 않고 정치경제학이라고 했었다. 당시에는 가장 많은 돈을 가진 군주의 자금적인 결단이 경제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는 말이다. 하지만 근대에 경제학이 따로 분리될 수 있었던 것은 국가가 빚의 개념을 알게 되면서다. 빚이란 개념을 발견하면서 경제정책 입안자들은 자신들의 학문적 존재감을 여지없이 발휘하기 시작했다. 정치라는 것은 과거의 유산에 대한 이해관계를 규명하는 것이고 경제는 미래의 유산에 대한 이해관계를 예측하는 것이다. 근대는 한마디로 경제학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그 경제학의 시대를 열어준 개념이 '국가 빚(부채)'의 존재이다. 경제가 힘들어졌다는 말은 이제 국가가 빚을 더 이상 내기가 힘들어졌다는 말이다. 경제강국이라는 말은 국가 빚을 질 여력이 아직 많이 남았다는 말이다. 유럽의 경제강국 독일의 비밀은 국가가 빚에 허덕이지 않아 앞으로 유럽 대륙 안에서 선택할 수 있는 정책적 여력이 많이 남아있다는 데 있다. 본부장이 자산관리보다 신용관리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 바로 이런 사실 때문이다. 개인이나 국가의 신용은 스스로를 돈이 마르지 않는 샘으로 만들어 줄 수 있다.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빚잔치를 하면서도 그 어떤 나라도 미국에게 채권을 재촉하지 않는 이유는 미국이 가진 신용 때문이다. 신용이란 빌려간 돈을 잘 갚는다는 것을 넘어 내 돈이 저기 가 있다는 것 자체에서 심리적 만족감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마치 자신의 이상형인 배우자에게는 모든 재산이 아깝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빚의 개념이 없었더라면 미국은 오늘날 같은 강대국의 면모는 물론이고 연방국가로서 미합중국을 이루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연방정부가 당시 형편없는 군 리더쉽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지도력을 가진 남부의 반란군을 상대로 인원이나 물자 등 모든 측면에서 압도적일 수 있었던 이유는 신용이라는 개념을 먼저 알고 빚을 전쟁에 과감하게 사용했기 때문이다. 아담스미스가 화폐나 귀금속에 집착하지 말고 생산수단에 집중하라고 한 이유는 신용이라는 것이 과거보다는 현재 그리고 현재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서 나오는 것임을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사의 3번째 이미지

21세기에 경제제재란 신용제재이다. 사진 출처:구글



지구상에서 모든 생산수단의 왕이 국가인 이유는 가장 지속가능한 생산주체이기 때문이다. 20세기까지가 국가만이 빚에 대한 독점적 사용권한을 가진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개인에게도 이러한 권한이 생기는 시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신용이 준비된 개인의 경우는 거의 무한대의 신용한도를 가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전에 국가나 거대 기업만이 누렸던 특권이 개인에게도 허용될 것이다. 본부장이 지금껏 상식적 사고를 중요시 여기며 20세기에 점철되었던 인간의 과격한 폭력성을 경계한 이유는 21세기는 바로 상식에서 권력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사회전체가 성장에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고 고도성장이란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근대 이후 20세기까지는 미래의 발전을 담보로 국가나 기업이 무한 신용을 사용했지만 성장의 발동이 커진 지금의 시기에는 소비의 주체인 개인을 지금처럼 방치할 수가 없다. 그랬다가는 정부와 기업 모두가 정말 파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아마 미래에는 기업이 가장 규제를 많이 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개인을 옥죄어왔던 여러가지 규제가 기업에게 돌아갈 것이다. 국가는 여전히 자신의 위치를 유지할 것이다. 다만 이제는 국가가 이전처럼 기업의 편을 들지 못하고 개인의 편을 들기 시작할 것이다. 뉴스에 자주 나오는 용어인 경제규제란 신용규제다. 가지고 있는 자산의 동결보다 더 무서운 것이 향후 빚을 못 지게 하는 것이다. 시장 안에 돈이 남아도는 데 자신만 자기 돈을 써야 하니 그 심정이 어떨까. 앞에서도 말했지만 마이너스 금리 시대에는 손과 발이 달린 모든 사람이 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신용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으로 나뉘어 철저하게 차별을 받을 것이다. 향후 신용의 판단 기준은 매우 광범위해질 것이다. 지금처럼 돈 빌려주고 잘 갚는 걸 넘어 시회법규를 잘 지키고 이웃들에게 좋은 평을 듣는 공공 친화적 롤 모델이 될 수 있는 구성원에게 더 많은 신용한도가 부여될 것이다. 또한 빚을 갚는 방법도 현금이 아닌 다양한 공동체적 활동으로 대체될 것이다. 현금을 빌려 현금으로 갚는 방법이 점점 사라지고 현금은 주로 소비의 도구로 쓰이고 신용을 나타낼 많은 단위들이 생겨날 것이다. 본부장이 지금의 밀레니얼 세대들에게 왜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했는지 이제 깨달아야 한다. 지난 어느 세대보다 정의감과 사회적 연대를 중요시 여기면서도 합리적인 경쟁을 수용하는 세대이기에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빚의 시대'에 가장 잘 적응할 것이며 공유가 아니라 소유나 독점의 타성에 젖은 이전의 세대들은 적응하기 매우 힘든 모습을 보일 것이다. 본부장은 근대가 인류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분별력과 상식적 사고'의 기준을 확립해 준 것이라고 본다. 인간이 이토록 독립적으로 스스로 빛나는 존재일 수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하지만 근대가 준 최악의 유산 또한 인간의 무차별적인 폭력성이었다. 이러한 폭력에서 비로소 해방되면서 지속적 성장을 꿈꿀 수 있는 시대가 바로 새로운 '빚의 경제학'을 마주하게 될 밀레니얼 세대의 유토피아적 미래이다. 그리고 이런 미래를 절대로 디스토피아로 변하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가 물려받은 빛나는 '근대성(近代性)'을 밀레니얼 세대에게 온전히 물려줘야 할 신성한 의무가 아직 기성세대에게 아직 남아 있다는 것 또한 명심해야 한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