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8) 시즌 3 <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금융이란 무엇인가(4) 소녀의 얼굴로 찾아온 마녀, 금융 수수료

  • 입력 : 2017.12.27 10:32:59    수정 : 2017.12.27 21: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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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이라는 무기로 무장한 금융기관은 이제 정치권력만큼 강한 권력이다. <뉴욕 월스트리트> 사진: 구글



세상에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존재가 둘이 있다. 정부와 금융기관이다. 모두 일정한 주기로 따박 따박 돈을 거두어들일 명확한 명분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정치권력, 후자는 신용이라는 정당성으로 말이다. 매년 대선이나 총선에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너도 나도 정부기관의 수장이 되고 싶어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남의 돈 가지고 생색내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 또 있을까 말이다. 도심의 길거리 마다 붙여놓은 정당 현수막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무슨 무슨 사업을 위한 예산 배정에 성공했다는 내용인데 마치 자기 돈을 기부했다는 말처럼 생색을 낸다. 사실 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쓰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생색을 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돈이 정기적으로 꼬박 꼬박 들어오기 때문이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수지 맞는 장사를 하는 기관은 정부일 것이다.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투자를 할 필요도 없고 심지어 아무런 이윤 창출 없이 쓰기만 해도 자기 할 일을 다 한 것이니 말이다. 있는 돈을 쓰는 것도 균형 있게 쓰지 못해 파산을 하는 지방정부를 보면 인생 참 쉽게 사는 것 같다. 정상적인 기업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상상할 수도 없는 호사로움이 아닌가. 애써 밖에 나가 돈을 벌지 않고 운영만 잘해도 되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보다 한 수 더 뜨는 곳이 있다. 바로 금융기관이다. 정부기관은 그나마 언론이나 감찰기관에 의해 감시라도 당하는데 금융기관은 그야말로 내 돈이 들어가도 어떻게 쓰여지는지에 대해 알 길이 없다. 게다가 내 돈을 넣어두고 주인 행세는 금융기관이 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앞서 말했듯이 정치는 자존심의 영역이고 경제는 신뢰를 넘어 신용의 영역이다. 정부는 내 돈을 내고 돈이 아니라 주인 행세하는 자존심으로 돌려 받으라는 것이다. 반면 금융기관은 주인 행세는 내가 할 테니 너희는 신용으로 받아가란 말이다. 얼마 전 모 금융 당국의 고위 공직자가 한 말이지만, 우리가 금융회사를 통상 금융기관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누구든 금융기관을 잡으면 누군가에게 신용이라는 평가를 강행할 수가 있다. 법을 어기지만 않으면 경찰서 문턱을 평생 갈 일이 없는 사람도 금융기관과 거래하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구조가 자본주의 시스템이다. 정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부여 받은 것이지만 마치 신용은 금융회사로부터 부여 받는 것같이 느껴진다. 사실 신용은 개인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인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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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저금통의 미소가 의미심장하다. 사진:구글



어린 시절 돼지 저금통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붉은 색 돼지는 언제나 지긋이 웃고 있다. 돈만 생기면 그 저금통에 돈을 넣고 싶은 이유가 어찌 보면 그 돼지의 미소 때문일지도 모른다. 마치 대단히 바람직한 일을 한 것처럼 말이다. 금융업이 돈이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돈을 거두어들이는 일이 매우 합당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돼지 저금통의 돈은 스스로를 위해 써본 적이 별로 없다. 돼지 배를 갈라가면서 써야 할 일은 대부분 큰 일이었고 돌이켜보면 그 일에 크게 도움도 안 되는 돈이었다. 차라리 개인적으로 썼으면 알차게 썼을 돈을 말이다. 붉은 돼지의 미소는 어찌 보면 그런 소시민들에 대한 비웃음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오늘날 금융권에 대한 달관의 헛웃음일수도 있다. 남의 돈 가지고 생색내기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돈을 불리니 말이다. 물론 일반 기업이 이익을 내는 것만큼 칭찬받을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문제는 이익이 고객에게 선하게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융 서비스의 선진화는 궁극적으로 서비스 이용자가 좀더 생산적인 고민을 할 수 있게끔 시간적, 정신적 여유를 줄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후진국형 금융서비스로 갈수록 수수료체계가 매우 약탈적이다. 말하자면 금융회사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들이 망하게 하는 것이다. 미국의 금융사가 망했단 말을 들을 때마다 미국은 선진국이라는 생각이 든다. 후진국 금융사는 절대 망하지 않는다. 개인이 망하는 것이다. 그만큼 리스크를 회사가 떠 안았다는 말이다. 금융회사가 망하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것이 후진국이다. 어떤 회사든 망할 수 있고 망하면 또 다른 회사가 인수하거나 공적 자금이 투입되어 영업을 지속하게 되어있다. 왜냐하면 금융경색이 일어난 것이지 금융인프라는 그대로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서민들에게는 아무 문제(5000만원 이상 예금계좌에 넣어두는 서민이 많지 않기에)도 없다. 물론 공신력을 갖추지 못하고 외형만 은행 역할을 하는 저축은행과 같은 경우에는 문제가 좀 발생한다. 일반적으로 은행의 계좌는 대부분 일반계정으로 구성되어 운용되기 때문이다. 일반계정이라는 것은 회사의 운명과 함께 가는 돈이라는 것이다. 일반 회계기준으로 돌아가는 계좌다. 반면에 투자 수익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계좌인 특별계정은 일종의 외주 계좌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해당 금융사가 망해도 계좌 안의 돈에는 이상이 없다. 물론 투자 수익이 엉망이어서 계좌가 깡통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앞서 은행이 오랫동안 쌓여진 공신력이 필요한 기관이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경영을 잘 못해서 망해도 누가 대신 사고 싶은 공신력 있는 브랜드가 구축되어 있으면 문제가 없어지는 것이다. 미국 AIG처럼 말이다. 물론 아무 기관도 안 망하고 어떤 개인도 손해를 보지 않는 것이 최고지만 그런 일은 자본주의에서 존재하지 않는다. 어차피 절차적 과정의 정당성만을 담보로 불확실하지만 보편 타당한 결론을 당연히 받아들이기로 맹세한 사회계약이니 말이다. 확실하고 특정한 결론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고 과정상의 정당성을 찾아가는 사회주의와는 그래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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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공공의 영역이 되어버린 금융 수수료의 세계<종이돈과 금융 전산화의 총아(寵兒),ATM> 사진:구글



앞서 예를 들었듯이 각 정당들이 공공서비스를 확충했다며 길거리에 내걸은 정책 광고 현수막은 그래도 생색내기를 위한 모양새라도 잡은 것이다. 국민이 주인이다라는 것을 겉으로라도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니 말이다. 공공 서비스에도 물론 시행을 위한 적잖은 사업비가 투입될 것이다. 공적 영역에서 서비스를 위한 사업비도 매우 방만한 경향이 다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누가 큰 부자가 되지는 않는 것 같다. 원래 민간업체입장에서 정부 입찰이란 게 정확은 한데 지속성은 희박하다. 뭐든 돈을 벌려면 사업의 지속성이 확보되어야 하는데 그게 힘들기 때문이다. 바로 이 사업의 지속성이 가장 확실히 담보되는 것이 금융 서비스에 대한 사업비인 금융 수수료다. 모든 금융상품에는 수많은 수수료가 녹아 있다. 일반 급여 소득자가 유리 지갑이라고 하는 이유는 세금이 알아서 공제되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같은 간접세와도 같은 직접세인 꼴이다. 금융 수수료도 이와 같다. 우리가 공공기관에 가는 경우보다 금융기관에 가는 횟수가 더 많을 수록 나보다는 타인인 누군가는 부자가 되어간다. 문제는 그 부자가 공정경쟁이 아닌 독점에 의한 것이라는 것이 문제다. 자본주의의 가장 큰 폐해가 독점이라고 한 것은 이미 300년전부터 제기된 사실이다. 이러한 독점 중에 자본 독점의 폐해가 가장 심각하다. 그야말로 개인은 꼼짝없이 갇히는 꼴이 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말처럼 철인(哲人)이라는 현자(賢者)의 독재는 이상적일 수도 있지만 돈 앞에서 과연 스스로 현자(賢者)일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되겠는가. 여러분이 ATM기에서 1만원을 뽑아도 1300원을 내야 하는 것은 사업시작에 따르는 리스크를 감안하면 합리적인 가격일 것이다. 기계설치와 관리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일정 시간이 지나 어느 시점에 가서는 1300원은 소비자입장에서는 불합리한 가격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그 가격이 불합리하다고 말할 길이 없다. 시장 안에서 모두가 그 가격을 받기를 강요 받는 환경이 조성될 것이다. 결국 사업의 지속성이 확보된 독점자본은 고객돈의 유치가 아닌 수수료만으로도 돈을 벌어간다. 물론 아직도 후진국의 경우는 이 금융 수수료 수입이 매우 적다. 아직 일반적인 개인 계좌 유치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수수료 마진도 선진국에 비해 아직 낮은 편이다. 하지만 앞으로 계속적으로 빠르게 상승할 것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문제는 일방적으로 이루어지는 약탈적인 수수료인가 아니면 추가적인 가치창출을 가능하게 하는 고차원적인 금융서비스인가는 나라마다 다를 것이고 거기에 따라 각각 선진국과 후진국으로 스스로의 입지를 달리할 것이다. 금융서비스 시스템만 잘 정비해도 국가 경쟁력이 매우 향상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사회 투명성과도 직결되는 부분이다. 보통 그 사회가 투명하다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 수준만큼이나 금융시스템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종이 돈과 금융 전산화의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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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만큼 극도의 금융경색을 경험한 나라도 드물다. <독일은행 국유화를 선언하는 히틀러> 사진:구글



급격히 상쇄시킨다. 말하자면 공공서비스 수수료인 세금처럼 금융 수수료의 공적 관리는 그래서 필수적이다. 독점에 따른 대체제가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공적 관리라는 것은 통제가 아닌 비상식의 척결을 의미한다. 즉 공정 경쟁을 통한 합리적 가격이 결정되게 해야 한다. 아울러 자본주의 역사상 전통적인 민간영역이었던 금융권이 이미 공공영역임을 명백히 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이러한 경제정책을 들고 나와 성공한 것이 바로 히틀러다.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국가전복의 상황에서도 매우 조심스럽게 여겨졌던, 서구 자본주의 역사상 처음 시도된 정부의 은행 국유화(히틀러에게 자본을 댄 영미 금융가들에게는 완전히 패닉이었겠지만) 말이다. 전세계에서 독일만큼 금융경색을 제대로 겪어본 나라도 없다. 독일의 예를 보면 금융이라는 영역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곳인지 알 수 있고 또 그것이 적절하고 합리적으로 해결되었을 때 사회전체가 얼마나 일사불란하게 역동성 있어지는지도 보여준다. 특히 유럽에서 유대인들이 겪은 엄청난 고난의 뒤에는 소수의 몰지각한 부유층 유대인의 금융 독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실제로 유대인들중 부유층은 대부분 유럽을 탈출했고 어쩔 수 없이 남은 가난한 유대인들만 엄청난 고난을 치루었지만). 문화국가들로만 모여있다고 자부하던 유럽대륙에서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폭력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을 우리는 좀더 사회시스템적으로 주목해야 한다. 인간이 가장 폭력적이 될 때는 자신이 시스템적으로 매우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있다고 자각할 때다. 인간은 혼자만의 개연적이거나 운명적인 불행에 대해서는 그것을 되도록 겸허하게 받아들이려 애쓰지만 시스템적인 불합리에 의한 불행에 대해서는 오히려 필사적으로 저항하려 한다. 그리고 그러한 시스템적 불합리를 가장 근접하게 불 수 있는 곳이 바로 금융이라는 점을 우리는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소녀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언제라도 마녀로 돌변할 수 있는 금융회사의 이중성을 간과하고 방치한다면 그땐 이미 늦을 테니 말이다. 한번 변해버린 모습은 다시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없을 테니 말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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