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80)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재테크란 무엇인가(1) 재테크의 허상(虛像)

  • 입력 : 2017.10.30 17:00:44    수정 : 2017.10.30 2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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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사용하면서부터 논리적 사고를 하고 싶어하는 것은 매우 인간적인 행동이 되었다 사진출처: Google



SF영화를 보다 보면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말로 날아가는 총알을 맞춘다는 표현을 종종 쓴다. 그런데 그런 표현을 쓴 다음에는 항상 결말은 그 일을 완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이 표현을 쓰기로 작정한 것 자체가 결과를 예측하게 만든다. 이미 결과를 만들어 놓고 시작했다는 말이다. 결과를 만들어 놓은 상태는 상식적 사고가 필요 없는 상태이다. 오로지 만들어 놓은 프로세스대로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영화 감독같이 전체 프로세스를 다 알고 있는 상태 말이다. 여러분이 이런 상태에 놓인 자라면 굳이 물밑의 이해관계를 보기 위한 훈련을 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본부장이 말한다’와 ‘본부장이 시대를 말한다’에서 상식적 사고란 것은 귀납적 추론이 그 기본에 있다는 말을 했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Inductive reasoning'말이다. 그렇다고 데카르트의 연역적 추론 즉 'Deductve reasoning'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다. 둘 다 논리적 사고(logical thinking)라는 영역 안에 있는 합리적 판단을 위한 진실(사실이 아니라 진실)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귀납적 추론의 핵심은 포괄적 '경험'에 있고 연역적 추론의 핵심은 집중적 '의심'에 있다. 사실 둘이 합쳐져야 완벽한 완성품이 될 것이라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완벽함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이작 뉴튼이 프린키피아에서 첫 번째로 이야기한대로, 움직이는 모든 물체는 관성이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역적 추론을 하다가 귀납적 추론을 하는 자신을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유는 인간은 결과지향적인 것 같지만 매우 방법지향적이다. '나만의 성공 방식'이라는 것이 명확하길 바라고 그 방식이 아닌 것으로 성공하는 것을 거부한다. 일관성이 밥 먹여 주냐고 하지만 다들 그 일관성에 매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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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사피엔스는 最善이 아니라 次善을 선택하는 '보편타당'한 프로세스로 문명을 발전시켜 왔다. 그 프로세스 중 하나인 <다수결의 원칙> 사진출처: Google



귀납적 추론이란 '나만의 방식'을 거부하는 것이다. ‘본부장이 말한다’에서는 '평범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보편 타당한 일반론을 따라가는 것이니 말이다. 역사상으로 보면 그리스 로마 문명의 전통이 바로 이러한 일반론을 따르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는 것이 옳다라고 여겼다. 이게 민주주의의 지고지순의 원리인 다수결의 원칙을 만들어 냈다. 이때 이 다수결의 위험성을 경고하다가 죽는 사람이 소크라테스다. 플라톤도 이러한 대중편향적인 정치가 사회에 주는 해약을 경고하고 절대적으로 중립적인 합리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철인(천재 또는 현명한 소수)이 정치를 독점하는 '철인 정치'를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 독재라고 하여 가장 금기시 되는 발상이다. 결국 대중은 가장 올바른 방법이냐를 따지고, 철인 또는 천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냐를 따지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이전의 저서에서 귀납적 추론을 강조한 이유는 이 방법이 '합의 즉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추론 방식이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이미 과정에서 승리한 추론방식이다. 반면 연역적 추론은 '논란 즉 의심'을 불러 일으키는 추론 방식이기에 이미 시작부터 패배한 추론 방식이다. 인간이 혼자 산다면 무조건 연역적 추론 방식으로 살아야 한다. 공감이 불필요한 최선책을 찾아 나서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부장은 지난 17년간 공적 영역에서는 귀납적인 사고를, 사적 영역에서는 연역적인 사고를 연습하고 살았다. 이유는 그것이 사회생활을 영위해야 하는 인간에게 허락된 가장 균형감각에 맞는 생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정착이 되면 사회적 인간이라는 호모 사피엔스는 매우 이상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사실 ‘본부장 시리즈’의 집필 의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극히 사적 영역인 재테크 분야에서는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본부장이 그토록 강조해온 균형감각이라는 것을 살짝 내려놓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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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셔티브를 잡는다는 것은 자기만의 논리라는 내부 에너지가 충만해야만 가능하다 사진출처: Google



재테크라는 것을 하나의 기술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뭐 대단한 필살기말이다. 학창시절에는 금융권에 들어가면 돈을 버는 기술을 쉽게 배울 수 있을 것같이 보인다. 은행, 증권, 보험 그리고 그 밖의 제2, 3금융권에 있으면 손쉽게 돈이 돌아다니는 원리를 알게 될테니 말이다. 부동산 중개업을 하면 전국의 부동산 정보를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알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여기까지는 맞다. 그러나 여기서부터 본인만의 판단 영역에 맡겨진다. 이유는 성공확률이 반반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반반이라는 것은 매우 개념적인 표현이다. 사실 10분의 1정도이다. 이 세상의 성공확률은 뭐든 10분의 1에 가깝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개념이 좀 틀리다. 생각하는 10명 중 행동하는 한 명이 성공한다는 말이다. 재테크에서 성공하는 개인 고객들의 행태를 오랫동안 관찰해온 본부장이 말해주겠다. 조직에서의 리더의 결단은 귀납적 사고를 통한 공감의 결단을 해야 하고 개인의 정치적, 경제적 결단은 언제나 연역적 사고를 통한 희소성의 결단을 해야 성공할 수 있다. 결국 조직은 남과 같이 가는 길로, 개인은 남이 가지 않는 길로 가는 것이다. 경험상으로 보면 재테크 성공의 길은 언제나 후자이다. 재테크라는 것이 가지는 대중적 허상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야 한다. 남들이 하니 나도 빨리 해야지가 아니라 나들이 하던지 말던지 해야 하는 것이다. 재테크를 하는 마음가짐은 언제나 자기본위를 유지해야 한다. 금융권에 근무하다 보면 가장 멍청한 사람이 조직관리는 자기 본위대로하고 재테크는 남의 본위로 한다. 필패의 생활 방식이다. 재테크라는 것은 그래서 연역적 사고로 해야 한다. 포괄적 경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논리로 하는 것이다. 마치 앞서 말한 SF영화의 감독처럼 그 결과를 알고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결말을 알고 있는 사람은 지금의 고통을 참을 수 있다. 남이 하니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이 하지 말던지 하는 것이 성공하는 재테크의 마인드다. 사업도 개인 사업이라면 이 방법을 써야 한다. 주도권 즉 이니셔티브라는 것은 먼저 생각한 사람이 아니라 먼저 결단하고 행동하는 사람이 가지는 것이고 이게 재테크의 유일한 성공 필살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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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관된 논리의 소유자였지만 일반적 논리는 갖지 못해 많은 비판도 받았던 잡스의<일관성> 사진출처: Google



한때 장기투자라는 말이 마치 불변의 성공 방식처럼 불려졌었다. 오래 묻어 놓으라는 말일 것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20세기는 격동의 시대였다. 어느 시대나 격동의 시대가 아니었던 때는 없지만 20세기만큼 인류가 많이 돌아다녀야 한 시대도 없다. 전쟁으로 가지고 있던 땅이나 재산이 하루 아침에 남의 것이 되는 것을 수없이 보아왔던 사람들은 언제나 지닐 수 있는 재산을 선호했다. 무엇인가를 묻어 놓는다는 것을 금기시 했던 사람들 중에 반대로 그것을 시도했던 사람들이 돈을 벌었던 것이 그 계기가 되어 생긴 말이다. 일부러 묻어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본인만의 개똥철학에 따라 '일관된 논리'로 묻어둔 사람들이 대부분이더라. 지금의 '일반적 논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결과를 예측한 '일관된 논리'말이다. 앞에서 얘기 했듯이 둘은 하나의 싸이클이지만 함께 얼굴을 맞이 할 수는 없는 관계이다. 장기투자의 법칙은 당시만해도 일반적 법칙이 아니었던 것이다. 돈이 돈을 번다는 지금 유행하는 말이 30년 전만해도 말도 안되는 말이었다. 80년대에는 돈을 쥐고 있는 사람은 바보였고 기업이든 개인이든 최고의 사업 실력을 돈을 융통해올 수 있는 능력으로 봤다. 즉 대출능력 말이다. 당시 이자가 10%이상이었던 이유는 그 이자를 주고도 돈이 간절히 필요한 사람이 많았단 말이다. 그래서 예전에는 뉴스를 장식했던 기사가 대부분 무슨 무슨 불법대출이었다. 엘리트 같은 사람들이 양복입고 수갑차고 사진 찍힌 제목이 대부분 이 죄목이었다. 본부장도 어릴 적에는 도대체 불법대출이 뭐길래 저렇게들 하는지 몰랐다. 나중에 금융권에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불법대출이란 금융사가 고객 돈을 특정인에게 그냥 주는 것이었다. 대부분 회수가 안되기 때문이다. 배임이고 횡령이요 파렴치한 범죄였다. 길거리 할머니가 김밥 팔아 맡긴 돈을 누군가에게 뇌물을 받고 그냥 주고 모르는 척하는 행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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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업은 가장 도덕적인 직업적 사명(使命)의식과 스스로 빛나는 인격(人格)을 요구하는 최고급 서비스업이다 사진출처: Google



도덕적인 금융인의 관점에서 보면 정말 살인보다 나쁜 짓이다. 살인은 우발적일 때도 있지만 이건 무조건 알고 하는 짓이기 때문이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등에 관한 법률'에 범죄 금액이 50억 이상이면 5년 이상의 징역을 주게 되어있는데 아마 이 법으로 그렇게 오래 살고 나온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모 재벌 그룹 오너들이 고객이 투자한 회사 돈 수 천억 원을 해외에 빼돌리고도 하루도 징역살이 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가 얼마나 돈에 관련된 범죄에 관대한 나라인지 알 수 있다. 금융 후진국인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예전 어린 시절 80년대였을 것이다. 과외 몰래 하다 걸려 수갑차고 포승 줄에 묶여가는 안경 쓴 서울대 누나가 TV에 나오는 것을 봤던 기억이 난다. 불쌍한 누나다. 당시에 본부장이 살던 강남에서 자기가 배우던 학교 선생님들에게 과외를 받지 않고 서울대를 가는 애는 왕따였다. 머리가 좋아 혼자 공부를 잘해도 욕 먹는 게 대한민국이다. 나쁜 짓도 함께하면 괜찮은 나라이기에 금융 범죄만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사례가 또 있을까. 몇 단계만 거치면 돈 안받은 사람이 없고 결국 서민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입고 금융감독원 앞에서 거품물고 기절하는 것이다. 지금은 세상이 바뀌어 하루에 몇 번이나 돈을 쓰라고 전화가 온다. 돈을 빌리기 싫다고 해도 이렇게들 돈 쓰라고 난리다. 돈 가지고 하고 싶은 것이 그만큼 없다는 말이다. 돈이 무슨 못생긴 무수리도 아니고 하루라도 데리고 있거나 보고 싶어하지 않는 시대다. 금융사는 못빌려줘 난리고 개인은 더 못 빌려써서 난리고 기업은 돈을 국내외로 꽁꽁 숨겨둔다고 난리다. 이런 시대의 재테크 방식은 오로지 자신만의 방식이 최고다. 남이 하던 거 하다가는 남 좋은 일만 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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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렴풋하고 허황된 망상을 버리고 명확한 자신만의 방향성을 가져야만 재테크에 성공할 수 있다 사진출처: Google



부동산 투자로 돈 버신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대부분 갈비집 같은 음식점으로 시작한 분들이다. 돈이 귀한 시기에 뼈빠지게 돈을 벌어 투자처를 부동산으로 결정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손에 아무 것도 쥐지 않고 투자만으로 돈을 버는 것으로 착각들을 한다. 투자라는 것은 빌린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선택한 투자에 실패해도 지금 당장 수입이 있어 정상적인 생활을 얼마든지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딘가에 투자를 하려면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투자한 것만큼만은 망해도 좋다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재테크라는 것은 마음을 내려놓은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다. 강남재건축 아파트로 돈을 벌고자 한다면 벌레 나오는 거지같은 아파트에서 살면서 주차난으로 시달려도 괴로워하지 않을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한마디로 무엇이든 몸이 고달플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화에서 보듯이 알마니 양복입고 외제차 타고 하얀 서류에 싸인하고 다니면서 재테크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한마디로 허상에서 깨어라. 자기만의 일관된 논리를 실천하는 길은 이처럼 여유로운 마음가짐과 고단한 행동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에 꼭 필요한 것이니 말이다. TV에서 나오는 재테크의 여왕들은 실제 고행의 여왕들이지 진짜 우아한 여왕은 아니다. 본부장은 그 길이 꼭 부러운 길이라고 말해주고 싶은 생각은 없다. 옆에서 보면 돈 벌자고 젊은 시절 다 보내고 나이 들어서 쥐고 있는 돈 때문에 자식들에게나 형제들에게 눈총 받고 살고 있는 모습에 사뭇 처연마저 느끼기까지 한다. 아무리 부모나 형제라도 가진 돈이 없었으면 기대도 하지 않을 텐데 재산이 있는 게 눈에 보이니 뭐든 서운한 것이다. 그들의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서 그다지 여유로운 자태는 찾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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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쓸 돈이 많은 것도 축복이지만 집중할 것이 있는 생활도 나쁘지 않은 노후이다.<老年의 앙리 마티스> 사진출처: Google



진정한 노후준비는 쓸 돈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할 줄 아는 것을 준비하는 것이다. 금융권이 돈을 모으기 위해 노후 준비에 대한 허상을 너무 지나치게 미화시켜놓았다. 마치 손 하나 까닥 안하고 무슨 19세기 귀족처럼 사는 것을 당연한 노후의 모습인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살려면 얼마를 다달이 준비하라는 식으로 끌어 모은 돈이 어마어마하다. 어차피 돈 가진 사람들의 세대를 굽어보면 오늘날 386세대들이니 마케팅전략 한번 정말 잘 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실제 노후에 그렇게 아무 짓도 안하고 골프만 치고 아이들과 우아한 저녁식사만 하다가는 몇 달도 못 가서 지루해서 힘들 것이다. 물론 돈이 많은 것은 노후의 축복이지만 없다고 우울해 할 필요는 없다. 진짜 축복은 건강한 몸으로 할 줄 아는 것을 하며 죽는 그날까지 호기심을 가지는 삶이니 말이다. 나이 들어도 귀납적 추론과 연역적 추론을 할 수 있는 할아버지보다 멋진 노인은 없을 것이다. 돈이 있고 없다는 것이 궁극적인 인생의 성공을 결정한다는 단순논리에 매몰되어 깊이 없는 이해타산적 사고와 편협한 계급의식으로 무장한 노인만은 되지 말아야 한다. 차라리 자신에게는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더라도 지구 반대편의 국제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노인이 진정한 노후준비가 된 것이다. 재테크의 진정한 목적은 20대는 40대처럼 살고 40대 이후부터는 20대처럼 영원히 사는 것이다. 이게 목적이 아니고 오로지 돈이 목적인 재테크라면 계획이 아니라 마음가짐부터 다시 짜야 한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 유명한 로버트 기요사키(본부장이 그다지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처럼 임대 건축물을 수천 채 가지고 대한민국의 모 선박 왕처럼 배를 수 백 척 가지고 있는 것같이 오로지 돈만을 목적으로 수천억씩 모으는 것도 사업가적인 기질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걸고 인생이란 도박에서 승리하고자 하는 승부사적 삶을 즐기며 말이다. 여유라는 단어는 평생 생각하지도 말고 말이다. 물론 본부장은 이러한 집중적인 삶도 좋다고 본다. 다만 매우 리스크를 사랑해야 할 것이다. 아주 많이 말이다. 하지만 이런 삶이 전체 인생으로 봤을 때는 재테크의 허상에 빠진 삶보다는 훨씬 덜 리스크함을 말해두고 싶다. 후회는 없을 테니 말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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