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76)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돈이란 무엇인가(2)
종이 돈이 준 부자의 꿈

  • 입력 : 2017.09.20 21:14:38    수정 : 2017.09.20 21: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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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just money, it’s made up, pieces of paper with pictures on it so that we don’t have to kill each other just to get something to eat.” 영화 ‘마진콜’에서 제레미 아이언스 가라사대 '니들 지금 나 때문에 온전히 밥먹고 사는거야'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 날은 정치적으로 중부 유럽의 강자, 독일이 유럽의 수많은 방해꾼들을 넘어 통일이 되는 날이기도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냉전체제가 해체되어 자본주의의 승리를 선포한 날이다. 냉전의 문제는 19세기부터 시작된 러시아의 봉쇄에서 20세기 러시아 혁명 이후 공산주의의 봉쇄로 이어지는 유럽 자본주의 시스템(사유 재산 제도)의 방어 문제였다. 프랑스 나폴레옹이 만약 황제를 지칭하지만 않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공주를 왕비로 얻지만 않았다면 러시아 제국은 민심의 이반으로 아마 나폴레옹에게 졌을 것이고 러시아 황제는 100년 먼저 민심의 심판을 받아 공산주의는 그 터전 자체를 잡지 못하고 냉전도 없었을 것이다. 냉전을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인 문제로만 보지만 매우 경제적인 문제이다. 물론 후에 방법론으로 가면서 전형적인 정치적 이슈로 변질되었지만.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은 '자존심의 문제'이고 경제적인 문제라는 것은 '기득권의 문제'다. 정치는 힘이고 경제는 돈이라는 아마추어 같은 정의는 집어치우라는 말이다. 전쟁도 대부분 기득권의 문제이지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본부장이 봤을 때 순수한 정치적 문제만으로 보이는 전쟁은 1차 세계대전과 같이 촘촘히 엮여진 국가간 동맹으로 유럽제국(諸國)이 자동 개입해 얼떨결에 시작되어 지금도 발발의 이유가 불가사의한 전쟁, 2차 세계대전과 같이 민족의 자존심을 걸고 상대방의 무조건적 파멸을 목표로 한 무제한 전쟁 그리고 베트남 전쟁과 같이 완전한 민족해방 전쟁, 마지막으로 테러리즘 전쟁이다. 모두 20세기에 벌어진 광적인 해프닝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전쟁들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기득권에 대한 방어를 위한 전쟁이다. 기득권은 무조건 돈 문제다. 정치는 기득권을 가진 자나 기득권이 없는 자 모두가 가진 마지막 자존심을 이용하는 게임이다. 결국 인간이 인간을 죽고 죽이는 일은 돈이라는 것이 개입되면 자연스럽게 없어진다. 본부장의 아버지는 경찰 출신이신데 어릴 적 뉴스를 보다가 살인사건이 나오면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살인 사건의 80%는 치정(배신당한 이성에 대한 복수) 사건이라고 말이다. 그 만큼 자존심이 밥 먹여 주지는 않지만 목숨을 좌지우지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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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말은 실제 금융 회사에서는 새삼스러워 일부러 하지도 않는다. ‘모두가 사기꾼이지만 한발 뒤쳐지면 정말 사기꾼 된다.’

자본주의라는 것은 말 자체에서 이미 돈을 전제로 만들어진 신념체계이다. 일반인이 언뜻 듣기에는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매우 인간적이고 따듯한 캐치 프레이즈를 제시하는 것처럼 들린다. 모두가 다 공평하게 잘 살기 위해 공산(共産), 즉 생산 수단을 공평하게 나누자는 말이니 말이다. 그런데 칼로 정확하게 나눌 수 없으니 공유(共有)하자는 것이 공산주의다. 수렵시대에는 산과 들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몸이 생산 수단이었기에 각자의 역량에 따라 생산물이 천차만별이었다. 농경시대에는 곡식이 자라는 땅이 생산 수단이었고 산업시대에는 기계가 생산수단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자본이 생산수단이 되기 시작했다. 산업시대에는 노동자가 빚을 내서 사업을 하거나 집을 사지 않았다. 교육이 대중화되지 않아 미래에 대한 안정된 꿈을 꿀만한 직장도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자본은 언제나 산업가의 선택을 기다리는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고 실제로 둘은 하나였다. 하지만 대중사회가 되면서 자본은 스스로 대중에게 직접서비스를 할 수 있을 만큼 대중의 기대 수준이 높아졌고 또한 스스로의 생산 능력도 갖추게 되었다. 지식시대가 되면서 생겨나기 시작한 전문직의 출현은 지식이 생산 수단이 됨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지식시대는 자연히 디지털 시대를 촉발하기에 이른다. 정보의 활용만큼 중요해진 게 정보의 저장 능력이기 때문이다. 즉 지금은 지식이 아니라 지식의 저장 능력이 생산 수단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 그 만큼 컴퓨터와 로봇 등의 첨단 기계화를 통한 제조업 혁명을 통해 제조 프로세스 비용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결국 공정과정에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갔던 산업시대와 달리 현재는 자본이 곧 산업이 될 수 있는 초간편 프로세스의 시대인 것이다. 하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은 돈이 가진 배타적 차별성 또한 없다는 말이다.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하찮은 돈의 양면성이 극명한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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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란 사실이 아니라 그런 느낌이 중요한 사람들이 고르는 파란 알약. ‘富者感의 시대’

요즘 흔히 부자감(富者感)라고 하는 말이 있다. 지금 스스로가 차별화된 생산 수단을 가지고 있다고 느낀다는 말이다. 돈이 흔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돈의 힘은 작았으나 돈을 가진 자의 힘은 컸다. 반대로 돈이 흔한 지금의 시대에는 돈을 가진 자들이 워낙 많아 변별력이 없으나 돈 자체의 힘은 예전보다 더 크다. 부자라고 느끼게 되는 이유가 시대별로 다르다는 말이다. 산업 전반의 생산성이 향상되면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들의 제고비용을 줄이고 남아도는 돈을 더 많이 놀리기 위해 자본이 생각해낸 것은 제품을 살 수 있는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것이다. 차별화된 생산수단이 데이터의 저장 용량인 현재의 시대에서 돈의 단순한 보유는 스스로가 부자라는 생각을 들지 못하게 한다. 오히려 돈의 소비를 통한 유용한 데이터의 습득과 저장으로 스스로를 부자라고 인식하게 만든다. 결국 데이터 시대에서는 돈의 소비를 통한 포만감을 부자의 기준으로 생각하는 대중들이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면 모 재벌 그룹 회장이 현재 건강이 안 좋아서 병원에 누워 아무런 소비를 할 수 없다면 차라리 지금 좀 더 아름다운 외부 데이터의 인식을 위해 100만원을 쓸 수 있는 자신이 더 부자라는 식의 발상이다. 요즘 틈만 나면 멀리 해외여행을 가려고 장사진을 이루는 공항 풍경을 보면 이들이 누리는 부자감(富者感)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좀 더 나은 외부 데이터 인식을 할 수 있는 상황을 계속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본인들의 오감에 너무나도 충실하고자 하는 시대. 영화 <매트릭스>에서 인식만이라도 럭셔리하게 살고자 스스로 온몸에 튜브를 꼽고 인공 부화기로 들러가는 것을 선택하는 장면처럼 말이다. 이게 바로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의 부자감(富者感)을 보여주는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돈의 무제한적인 공급으로 인해 누구나 거머쥘 수 있게 된 부자의 꿈인 것이다. 돈은 이제 그저 종이일 뿐이지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하나뿐인 나의 인생은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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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짜리 럭셔리한 생활 정도는 누구나 할 수 있게 만들어준 현대 금융의 필살기 ‘평생같은 하루를 살아라’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급 저택이나 승용차를 모기지 또는 리스같이 미래의 돈을 당겨서 당당하게 구매하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갚아야 할 고통보다 누리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다. 70~80년대에는 누구도 빚을 내서 생활한다는 식의 생각을 타부, 즉 금기로 생각했다. 빚을 갚는다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의무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개인의 신용이라는 것이 스스로에게 매우 중요한 시대였다. 하지만 지금 개인들이 자신의 신용에 대해 걱정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다. 추가 대출을 받지 못할 것에 대한 공포 말이다. 개인 파산이나 회생에 대해 이들이 예전보다 너그럽게 생각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스스로의 과거보다 지금이 더 어려워 보이는 스스로를 참지 못하기 때문이다. 과거 우리 부모들이라면 얼마든지 받아들였던 것들을 지금의 시대는 힘들어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 날이 바로 서두에서 말한 1989년11월 9일이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영혼 없는 자본의 독주 말이다. 지금껏 그나마 애써 분별력을 지켜가며 도덕성을 유지하려 해왔던 금융기관들이 이제 온갖 희한한 파생상품들을 쏟아내면서 그들이 그동안 자제해왔던 악마(?)의 필살기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지금 당신들이 즐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임을 속삭이며 전화 한 통이면 돈다발이 떨어지는 광고처럼 말이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비비안 리의 일성은 사실 영화 제목처럼 이미 예전의 분별력을 잃은 금융회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물론 비비안 리(스칼렛 오하라役)는 그들이 좋아하는 쪽과 완전히 반대의 뜻으로 한 얘기임은 말할 것도 없지만.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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