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71)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22편 중국

알리바바와 만리장성의 나라,중국
(1) 초한지로 생각하고 삼국지로 행동한다

  • 입력 : 2017.08.17 20:39:15    수정 : 2017.08.17 20:5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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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랙탈 우주 이론'

폴란드 태생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B. Mandelbrot)라는 사람을 들어 봤는지 모르겠다. 이름이 어렵다. 앞에서 말했듯이 유럽 최고의 근성 플란드에는 뛰어난 인물도 참 많았다. 마담 퀴리부터 시작해서 말이다. 브누아 망델브로도 마담 퀴리처럼 프랑스에서 공부한 과학자이다. 당시 유럽에서 유학생에게 가장 관대했던 나라가 프랑스이니 말이다.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래서 유럽에서 테러가 났다고 하면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나는 것이다. 외국인 유입에 관대하다보니 말이다. 물론 그들이 인종차별을 안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표면적으로나마 똘레랑스 즉 관용 또는 포용을 내세우는 것만이라도 프랑스는 유럽에서 자신들이 차별화한 국가 마케팅에 성공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폴란드 태생 수학자 브누아 망델브로가 주장한 것이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이다. 프랙탈(Fractal)인란 용어도 스스로 만들었다. 라틴어로 조각이란 단어에서 따온 신생어다. 이것부터가 이 양반은 멋진 사람이다. 퀴리 부인이 라듐을 발견하고 그 이름을 지었듯이 브누아 망델브로는 가상적인 추론을 통해 유추된 이론에 자신이 만든 신생어를 붙였다. 여러분도 이제부터라도 자신만의 신생어를 만들기 바란다. 본부장처럼 말이다. 전편 <본부장이 말한다>는 콘텐츠의 50프로 이상이 본부장이 만든 말이다. 물론 나머지 50프로는 150년 이상된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클래식한 용어들이고 말이다. 스스로가 무엇인가에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은 그만한 노력을 한 사람이다. 그것에 대해 한 번 이상 아니 수 천번 생각한 사람이기에 다른 사람이 그것에 토를 달 수가 없는 것이다.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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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형으로 프랙탈이론을 설명하는 '브누아 망델브로(Benoît B. Mandelbrot)'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은 쉽게 이야기 하면 우리가 사는 이 우주는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는 패턴이 계속 반복된다는 말이다. 나무가지가 뻗어있는 모습과 나뭇잎에서 줄기가 뻗어있는 모습은 거의 유사하다. 번개가 치는 모습은 수 백 번을 처도 거의 비슷한 패턴을 가지고 있다.강줄기는 세계 어디 강을 봐도 대부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런 생태계의 예를 넘어 원자와 전자 그리고 태양과 행성과의 유사성 그리고 태양계와 은하계의 유사성, 은하계와 대은하의 유사성까지 그야말로 아주 작은 미립자에서부터 대우주까지 그 유사성과 규칙성을 찾을 수 있다는 이론이 바로 프랙탈 이론이다. 사실 이 프랙탈 이론이 일반에 알려지게 된 것은 영화 <맨 인 블랙 1>의 엔딩 장면때문이다. 당시에는 영화 자체의 독특한 외계 콘덴츠 뿐아니라 윌 스미스와 탐미리 존스라는 배우의 인기가 합해져 그야말로 대박이 난 영화이다. 그런데 이게 마지막 엔딩까지 관객들에게 환호성을 지르게 만든 것이다. 바로 카메라 앵글이 영화의 엔딩 장소에서부터 계속 우주 공간으로 빛의 속도로 후진하면서 지구와 태양계 그리고 은하계를 넘어 대은하가 하나의 구슬이 되어 무엇인가 알 수 없는 큰 존재가 그 대은하 구슬로 구슬치기를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크로즈된다. 당시만해도 획기적인 발상이었다. 물론 지금같은 가상현실의 시대에는 아예 대중들에게 관심조차 끌지 못하는 우주 이야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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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장 비싼 사과 '애플'

또 하나의 거대한 세상인 중국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프랙탈 이론을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인간에게는 시공의 한계가 있다. 내가 지구에 있는 동안 나는 다른 행성을 몸으로 직접 경험할 수 없다. 한번에 두 가지를 온전하게 경험할 수는 없다는 말이다. 본부장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지만, 젊은 시절 양다리를 걸쳐가며 여자들을 사귀던 얼빠진 친구가 생각난다. 아마도 그 친구는 한 여자도 제대로 사귀지 못하는 바보 짓을 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을 것이다. 한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여러분은 이미 지구상의 모든 여자하고의 사랑을 한 것이다. 이게 본부장이 생각하는 프랙탈 이론의 생활 이론적 적용이다. 좀 간지럽긴 하다. 결국 요지는 제대로 된 하나는 전 우주와 같다라는 말이다. 여러분이 중국에 대해 정확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중국에 사는 중국인들도 그것을 모른다. 오히려 여러분들이 잘만 하면 중국인들보다 더 중국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중국에서 일어난 오랜 일상에 대해 개념적인 정의를 내린 문학 작품을 보면 되는 것이다. 중국에서 몇 년을 공부하고 돌아온 중국 유학생에게 중국에 대해 물으면 십중팔구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기 전에 알던 중국과는 너무나도 다르다라는 것이다. 어찌보면 가기 전에 알고 있던 중국이 진짜 중국이고 가서 알게 된 중국은 가짜 중국일지도 모른다. 뭐든 직접 경험해 보라는 것은 실행력을 키우고자 하는 말이지 사고력을 키우는 말은 아니다. 사고라는 것은 사물에 대한 실체를 알고자 하는 것이고 경험이라는 것은 사물을 맛보는 것이다. 우리가 사과에 대해 사고하면 사과는 많은 상징을 우리에게 준다. 아이작 뉴턴의 사과는 만유인력의 영감을 스티브 잡스의 사과는 부조화의 조화같은 애플 창립의 영감을 주었다. 하지만 내 입에 들어간 사과는 아무런 영감을 주지 않는다. 오로지 시큼하고 달콤한 맛을 줄 뿐이다. 그리고 끈적이는 손가락을 불쾌해하는 마음이 사과로부터 받은 영감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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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나라나 소신민들의 삶은 다 똑같다 '런던의 펍에 모여 주말을 즐기는 젊은이들'

본부장이 이 책에서 여러분에게 주고 싶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영감말이다. 책을 읽어 나가면서 여러분은 이 책에 쓰여져있지 않은 컨텐츠나 캐릭터 또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나야한다. 본부장은 이 책이 여러분 입으로 들어가는 사과이길 원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 책을 맛보기도 소화시키기도 원하지 않는다. 그저 읽고 보며 생각하고 결단하게 만들고 싶다. 본부장이 자꾸 이 책을 쓰는 이유를 반복하는 것도 이때문이다. 지금까지 쓰여진 모든 국가들에 대해 여러분이 외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로지 여러분이 해야 할 것은 이 책을 읽고 이 책과 같은 에세이 즉 소고(小考)를 쓰는 것이다. 본부장은 중국에 대해 완벽하게 알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중국에 대해 어느 하나를 일반 중국인보다 더 많이 생각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부장이 말한다. 영국인보다 영국을 더 잘아는 길은 서머셋 모옴이나 조지프 콘레드 또는 프랜시스 드레이크에 대해 영국인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더 많이 생각해보는 것이다. 중국인이 아는 중국이나 영국이 아는 영국은 그냥 삶이고 환경이다. 이건 중국도 아니고 영국도 아니다. 지금 여러분이 살고 있는 그 도시와 너무나 똑같은 일상이다. 동네 아이들은 늘 시끄럽고 택배원은 불친절하며 세탁소 아저씨는 지난주에 맡긴 세탁물을 잊어버린다. 와이프는 들어올 때 상사의 욕을 하며 들어오고 어제 배달 시킨 부엌에 남은 음식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한다. 전 세계의 모든 도시가 다 이렇게 하고 산다. 아마 엊그제 쿠데타가 난 터키의 수도 앙카라에서도 지금쯤은 이렇게 살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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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20대에 읽은 가장 유익했던 책 '권력 이동'

본부장이 중국을 중국인보다 더 잘 알게 해주마. 그리고 세계 어느나라 누구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주마. 잘 들어라. 먼저 초한지와 삼국지를 봐라. 동양에서는 어린아이들도 만화로 다 본 게 초한지와 삼국지라고 손사례를 치고 있는 제군들도 있으리라. 다시 한번 말한다. 오랫동안 자주 보란 말이다. 시간 날 때마다 본 것을 또 보고 읽을 것을 또 읽어라. 요즘에는 드라마 제작이 잘 되어 있으니 영상물로 보라고 권하고 싶다. 보통 초한지나 삼국지 각각 100시간 남짓 될 것이다. 물론 처음부터 이렇게 다짜고짜 말을 하니 여러분들도 좀 언짢을 거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사실인 것을 어쩌겠나. 온갖 온라인 게임으로 세상이 완전 야단법석이 나기 전만해도 해도 삼국지를 10번 본 사람하고는 이야기도 하지 말라고 했다. 지금은 그 삼국지도 게임으로 하고 있다. 뭐든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다. 조용히 사고하고 번개처럼 결단하는 게 아니라 번개처럼 잔 생각만 자꾸 하고 아예 아무 결단도 하지 않는 세상이다. 본부장도 어린 시절 삼국지를 보라는 주위 어른들의 이야기가 내심 부담스러웠다. 그 분들은 그러면서 초한지를 본뜬 동양 체스인 장기를 두고 있었다. 마치 자신들이 세상 이치를 다 알고 있는 듯말이다. 정말 맘에 안들었다. 더구나 삼국지란 책은 10권이나 되는 분량에 매우 두꺼웠고 그림도 잘 없으며 내용은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는, 알아도 되고 몰라도 되는 그런 불필요한 책같아 보였다. 사실 대학시절에도 삼국지나 초한지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장기도 마찬가지. 본부장은 오히려 제3의 물결(the 3rd Wave)이나 권력이동(Power shift) 그리고 미래 충격(Future shock)같이 미래학자들이 쓴 책이 좋았다. 마치 대단한 지식이 머리 속으로 빨려들오는 듯했다. 당시에 본부장이 대학 캠퍼스에서 항상 권력이동을 들고 다녀서 지금은 유명경제신문사 차장기자인 당시 절친이었던 대학 동기는 날 무던이도 비아냥거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지금도 만나면 그 얘기를 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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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찾아가는 독일 바그너의 성지 바이로이트 페스티발 'Bayreuther Festspielha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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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찾는 곳이라 이젠 친근감마저 느껴지는 150년 된 '바이로이트 오페라 하우스 객석'

삼국지를 비롯한 책의 재미를 다시 알게 된 것은 일에 파묻혀 지내던 30대 초반이다. 어느 날 집에 오니 와이프가 20권짜리 일본 역사 대작 <대망>을 보고 있더라. 정말 놀라워 보였다. <대망>은 일본인 등장인물들 이름 외우는 데만 한달 걸린다는 대작이다. 30대 초반에 다시 책을 보기 시작한 엄청난 계기였다. 그 이후로 본부장은 지금까지 수 천 권을 책을 보고 적어도 천 편 이상의 클래식 공연과 수 백 편의 연극을 섭렵했다. 책만큼 중요한 것이 공연이다. 그리스나 로마 시대 심지어는 중세시대에도 사회 지도층들은 항상 공연을 보아왔다. 공연을 보는 것을 즐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공연을 보는 것은 책을 보는 것처럼 일정량의 끈기가 필요하다. 그 일정량이 넘어가면 알아서 책이나 공연이 내 안의 선량한 관리자를 자극하고 균형감과 판단력을 적절히 구사하도록 그 관리자를 무럭 무럭 키워준다. 본부장은 특히 셰익스피어 극과 독일 오페라 그리고 베르디 오페라를 즐겼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본부장은 스스로를 엘가라고 생각하며 바그너를 동경하지만 차이코프스키를 좋아한 알렉산더 보로딘이라고 정의했다. 스스로를 이렇게 정의하려면 정말 천편 이상의 공연을 봐야한다. 이 정의가 맞고 안맞고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런 정의를 하고 내 안의 선량한 관리자가 신을 대신해 내게 하는 거룩한 속삭임인 소위'양심'에 꺼리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수 천 권의 책과 공연을 쏟아지는 일과 조직의 돌발변수 해결에 접목시켜가면서 무한한 시너지가 생김을 느끼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수 많은 지식과 지혜를 주는 책과 공연을 통틀어 삼국지와 초한지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가를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날 와이프가 <대망>을 읽어 준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지금은 책보다는 쇼핑하러 다니는 걸 더 좋아하는 돈 많이 드는 도시녀로 변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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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상징 '만리 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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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구전되고 필사되어 전해내려온 삼국지 '필사본 일부'

삼국지는 공명이 30% 조조 유비가 각 20% 관우 운장과 사마 중달이 각 10% 이고 나머지 영웅들이 마지막 남은 부분을 채운다고 보면 된다. 간혹 삼국지에서 특정 인물을 이야기 하며 자기가 지목한 인물이 최고네 서로들 다투는 모습을 본다.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지만 특정한 시각은 혼자서 좋아하면 된다. 하지만 대세적인 시각을 잃어서는 안된다. 색다른 시각을 가지라는 게 아니라 숨겨진 이해관계를 보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색다른 시각은 일회성의 놀라움을 주고 떠나는 소나기와 같은 것이다. 본부장도 개인적으로는 촉오대전 중 이릉전투에서 파죽지세로 승전하던 유비의 70만 대군을 사지로 끌여들여 몰살시킨 오나라의 육손의 침착한 인내심을 너무나 존경한다. 하지만 대세적으로 일회성의 놀라움으로만 기획된 육손의 전술만 가지고는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이길 수 없다.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그것도 집중력을 다하지 않으면 하나도 못 배울 수도 있다. 삼국지에서 우리가 가장 배워야할 사람은 공명, 조조, 유비, 관우, 사마 중달이다. 이 5명을 다 통달하면 그다지 인상쓰며 살 일이 없어진다. 아마 거울을 보면 웃는 얼굴이 되어 있을 것이다. 생의 전략이 세워져있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주는 교훈과는 좀 다르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던지는 핵심은 일처리의 법칙이다. 즉 승부를 결정짓는 굳은 마음가짐을 말하는 것이다. 비지니스에서는 오히려 미야모토 무사시의 교훈이 더 쓸모가 있다. 하지만 비지니스도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이 사는 인생이 있고 비지니스도 있는 것이다. 이 인생의 마음가지을 배우는 것이 삼국지와 초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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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이 없기에 상식도 없는 '인공 지능'

공명 하나만 마스터해도 사실 그걸로 족하다. 괜히 두 세 명 섞어봐야 헷갈리기만 하다. 간혹 공명이 실존인물이냐 아니냐하는 논란이 있다. 본부장은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웃음만 나온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본부장이 실존인물이 아닌 외계인이라도 여러분은 이 글을 읽어야한다. 실제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공명이 실존인물이 아니라면 더 좋다. 오히려 수 천 년의 지혜가 응축된 알파고같은 가상의 존재라도 말이다. 우리는 그저 그 알파고와 대련만 하면 된다. 아직도 이 지구상에는 인공지능보다 이겨야 할 인간이 더 많다. 공명이 삼국지의 30%라고 한 것은 100%라는 한계때문에 어쩔 수 없이 준 최소비율이다. 그만큼 공명의 존재는 훌륭하다. 어릴적 본부장도 공명의 신출귀물한 전략에 매료되었다. 그리고 그가 구사하는 비상식적인 전략이 오히려 더 매력적으로 보였다. 인간은 자기가 못 할 바에야 차라리 아예 알 수 없는 수퍼맨이 배트맨보다 끌린다. 어차피 둘 다 불가능하다면 말이다. 논쟁을 할 필요가 없는 완결무결한 존재라면 질투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본부장이 갖추어진 관리자입장에서 다시 보기에는 공명은 너무나 상식적인 사람이다. 여러분은 아직 모른다. 상식적인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말이다. 요즘을 현대라고 부르면서 사회 도덕이 무너졌다며 탄식하는 어르신들이 있다. 2천년 전 공명 시대에도 사회 도덕은 이미 무너졌었다. 군웅이 할거하는 전국시대에 도덕이라는 게 과연 가당키나 하겠는가. 앞서 인도 편에서 이미 이야기한 욕망과 본능으로 휘몰아치던 축의 시대가 바로 이때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인간에게 상식이라는 것은 매우 귀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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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중간이 힘들다

극이나 책에서 공명이 이야기하는 말을 잘 들어보면 대부분 모든 인간이 가지는 깊은 두려움을 자극하는 말들이다. 즐거움에도 레벨이 있듯이 두려움에도 레벨이 있다. 인간은 같은 양의 즐거움 포기하고서라도 두려움을 안고 싶어하지 않는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가진 자라도 나약한 인간으로서 가진 두려움을 떨칠 수는 없다. 즉 공명이 알고 있던 법칙은 두려움에 관한 대수의 법칙이었던 것이다. 10명중 8명은 누구나 보통사람이고 이들은 그만큼의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라는 '상식'말이다. 이 생각 하나만 믿고 모든 전략을 짠 게 공명이다. 나머지 2명에 대한 생각을 공명은 크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공명이 생각하기에 그런 사람은 아마 지휘관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10명중 1~2명의 생각을 가지다가는 출세를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간단한 이치다. 즉 공명이 필승한 이유는 본인이 지극히 상식적이었던 것이다. 본인이 상식적이지 않았다면 모든 게 예측이 안될테니 말이다. 하지만 어려운 것은 내가 상식적인 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대중은 언제나 상식적이지만 개인이 상식적인 것은 어렵다. 여러분은 지금 중국 편에서 본부장의 모든 지혜와 지식의 매복에 걸린 것이다. 머릿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너무나도 중국 편에서 이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 왜냐면 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은 새로운 레벨로 넘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 어렵다는 상식적 인간말이다. 여러분이 공명의 얼굴을 한번도 보지 않고도 그가 잘 생겼을거라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가진 상식의 멋때문이다. 균형잡힌 사고로 인간만사의 대수의 법칙을 읽으면서도 본인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 상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명의 멋진 인간다움말이다. 본부장이 그리스 편에서 인류중 가장 멋지다고 한 그리이스의 율리시스보다 더 멋진 자가 사실 공명이다. 이유는 경험하는 자는 다음에 이길 수 있으나 생각하는 자는 지금 이길 수 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된다는 그 정신이 바로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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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길은 어느 정도 정해져있다

공명의 상식 3원칙을 말해줄테니 잘 듣고 인생의 위급한 때 써먹도록 해라. 첫째 복중에 화가 있고 화중에 복이 있다. 즉 위기 다음에는 반드시 기회가 있다. 둘째 그렇다고 생각하면 그런 것이고 아니라고 생각하면 아닌 것이다. 즉 자기 또는 자기편부터 속여야 이긴다는 것이다. 셋째 허실과 기정. 즉 수 천 가지의 책략보다 기본에 근거한 상식이 이긴다. 이 세 가지는 공명이 30대부터 죽기 직전인 50대까지를 통틀어 항상 깊이 품어온 필승의 마음가짐이다. 여러분들은 지금까지 조조나 도쿠가와 이에아스 또는 쿠빌라이 칸같은 인물들의 리더쉽을 분석하는 책들을 많이 들어 봤을 것이다. 물론 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뭐 보는 것이 안보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지금까지 오직 실전에서 진검승부만을 해왔던 본부장이 보기엔 공명이 최고다. 공명은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이길 수 밖에 없는 전략을 가진 사람이다. 스스로를 항상 평균점에다 두고 흐트러지지 않는 마음가짐으로 물밑의 이해관계를 유심히 볼 수 있는 준비된 눈을 가졌기 때문이다.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대로 승부라는 것은 냉혹하다. 승부가 냉혹한 것은 이번 판이 마지막이기때문이다. 그리고 이 판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 나에게 주어진 승리의 기회를 오로지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사실 승부는 단판이라도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니다. 끝없는 패넌트레이스란 말이다. 지속된 패배자에게도 미래는 없지만 우연한 승자에게도 미래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이긴다는 것은 계속 이긴다는 것이다. 계속 이기기 위해서는 이기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 이기는 환경을 공명은 세 가지로 본 거 같다. 첫째 흔들리지 않는 상식적인 자신, 둘째 무한 신뢰로 자신의 말에 선의로 기꺼이 속아줄 베스트 그룹핑, 셋째 시대정신을 거스르지 않는 비전 즉 캐치프레이즈. 이 세 가지만 갖추면 여러분이 어떤 조직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도 필승이라도 감히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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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자 아직 멀었다. 계속 주목하기 바란다. 조조를 말해주마. 근래에는 조조에 대해서 상당히 다양한 평가를 해주는 미디어 덕에 조조에 대한 평가가 매우 중구난방(衆口難防)이다. 본부장이 말한다. 조조는 매우 훌륭한 리더다. 여기서 훌륭하다는 것은 그저 감상적인 추상적 단어가 아니다. 본부장에게 훌륭하다는 것은 효과적인 결과를 잘 내면서 주변의 존경받는 리더라는 것이다. 이미 공명이 구축한 이기는 환경을 본인도 간파하고 그것을 구축한 사람이다. 특히 조조가 대단한 점은 정확히 시대정신을 읽었다는 것이다. 물론 현재는 아니지만 앞으로 올 시대정신말이다. 조조가 이루려는 것은 매우 이상적이었지만 실천방식은 매우 현실적이었다. 그가 이루려는 이상은 봉건시대를 넘어서는 능력주의를 말한다. 여러분은 흔히 결과주의라는 말을 별로 안좋아하더라. 물론 요즘 기성세대들이 갖은 안전장치를 달고 여러분과 불공정한 게임을 하는 것을 어제 오늘 본 것이 아닌 여러분들이라 이해는 한다. 원래 결과주의는 능력주의를 말하는 거다. 미천한 계급에서 태어나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결과주의는 최고의 동기부여였다. 우리네 기성세대들이 여러분같은 M세대를 앉혀 놓고 자기들 고생한 얘기하는 근본 사상에 바로 이 결과주의 그리고 능력주의가 담겨져있다. 문제는 그들이 이미 그때와 달리 너무나 많은 기득권 즉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그러니 여러분들이 기성세대들과 툭하면 마찰하는 거다. 물론 그 중에도 똑똑한 M세대들은 이미 눈치채고 납작 엎드린 부류도 보이긴 보인다. 본부장이 기성세대들을 바로 옆에서 작전 짠 다스베이더의 입장에서 말해주겠는데 그런 거 속이 너무 잘 보인다. 그 양반들은 그런 척하는 거 금방 다 안다. 척하지 말고 아예 그들과 99% 동화되어야 한다. 1%로의 핵심 마음가짐 즉 크라운 주얼만 남겨두고 말이다. 여러분들만의 최우선 가치말이다. 그 양반들은 이게 없어진 지 이미 오래니 말이다. 그러면 무조건 여러분들이 이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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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즘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다

능력주의를 지향한 조조를 유비가 가장 싫어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유비는 전형적인 파쇼라고 보면 된다. 원래 파쇼가 겉보기엔 더 호소력있다. 캐치프레이즈가 매우 선동적이기때문이다. 대한(大漢)의 부흥. 얼마나 멋진 말인가. 마치 본인이 황제라고 자처하는 것이고 하늘에서 내려온 천자 즉 하늘의 아들을 연상시키는 막스 베버의 카리스마적 리더쉽의 전형이다. 그가 내세우는 것은 다시 봉건체제로인데도 그가 내세우는 전체적인 국가의 외형은 매우 전통적인 정당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독일 편에서 히틀러가 제3제국을 칭하며 신성로마제국에 그 바탕을 둔 것처럼말이다. 물론 히틀러에 비하면 유비는 너무나 양반이지만 말이다. 다만 조조와 비교해보면 매우 개인적 카리스마와 전통적인 정당성에 리더쉽의 무게 중심을 둔 건 분명하다. 사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리더쉽이다. 자기 스스로에 대한 엄격한 도덕주의와 공동체에 대한 투철한 의무감을 가진 리더는 일단 분명한 명분을 쥐고 있다. 마치 초년에 갖은 고생을 겪으며 개인의 수련을 통해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된 초대 스페인 왕인 칼 5세(카를로스 1세)의 면모와 흡사하다. 여러분들도 이러한 풍모를 갖출 필요가 있다. 이런 리더쉽은 공격당하기 쉽지 않다. 여러분도 이런 리더쉽의 소유자를 함부로 공격하지 마라. 역공의 위험이 있다. 이런 리더쉽은 매우 안정적인 리더로서의 위치를 유지하며 조직을 이끌 수있다는 것이다. 보통 이런 리더쉽이 빛나는 기업이 중소기업이나 중소 금융사이다. 따라서 중소기업이나 중소 금융사에 가서는 매우 도덕적일 각오를 하는 것이 좋다. 그러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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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의 길을 가지 마라

관우는 중국인이 항우와 함께 매우 좋아하는 캐릭터이다. 중국인들을 좋게 표현하는 단어 중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둘 있다. '유장함' 그리고 '호탕함'이다. 유장함이란 여유가 느껴지게 느리고 편안하다는 뜻이고 호탕함이란 호기가 있고 걸걸하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을 보통 실리에 밝은 민족이라고 한다. 웃음만 나온다. 전 세계에서 실리에 안 밝고 선진국 노릇을 하는 나라가 있는가 보라. 실리에 밝은 것은 균형잡힌 인간의 훌륭한 경제 관념이다. 자신의 경제 상황을 불균형으로 몰가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할 최고의 악덕이다. 명심해라. 자신의 경제 상황을 불균형하게 몰고가면서 행하는 모든 미덕은 악덕이다. 따라서 빚을 져가면서 친구를 도와주는 것은 악덕이다. 그런 훌륭한 경제관념을 가진 중국인이지만 그들이 숭배하는 영웅 캐릭터는 관우나 항우같은 우직한 스타일이다. 그들이 좋아하는 항우나 관우는 실리적인 것을 금기시하고 오로지 자신이 정해놓은 도덕률에 살아가는 인간형이다. 말하자면 쇼맨쉽 즉 스타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어느 조직에도 이런 캐릭터는 늘 존재한다. 그리고 조직도 한 두 명 정도는 원한다. 조직에 활력을 주기때문이다. 단 최상위 리더의 리더쉽에 반(反)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일반적으로 항상 반(反)하니 문제지만. 여러분들 중에 특히나 스타적 자질이 있는 사람들은 지금부터 부단히 자신만의 캐릭터와 컨텐츠를 만들어서 조직에 들어가지 말거나 있더라도 오래 있지 말기를 당부한다. 관우나 항우는 조직에 매우 지대한 부분 도움을 주었을지도 모르나 정작 본인들은 조직으로부터 그다지 좋은 결과를 보지 못한다. 관우나 항우 모두 적에 포위되어 자결하는 운명을 맞았으니 말이다. 사회 생활 정말 못했다는 얘기다. 여러분을 이끄는 리더로서 본부장은 여러분이 이런 캐릭터가 아니길 바라지만 멋있긴 하다. 사실 본부장은 이런 캐릭터를 전문적으로 잘 이끌어 주는 리더 부류다. 소위 부하를 영웅으로 만들지만 스스로는 고독한 리더쉽말이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그런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방법이 하나있다. 이건 정말 천금같은 살아있는 조언이다. 잘 들어라. 배우자를 매우 관리형으로 만나도록해라. 남편으로는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의 남편 알버트 공처럼 신사다운 풍모가 좋고 와이프라면 한고조 유방의 부인 여치같은 여장부 스타일이 좋을 것이다. 물론 본부장같은 리더를 만난다면 다 필요없는 얘기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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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는 인류 최고의 유희

사마 중달은 극중에서는 공명에게 항상 패하는 인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삼국지의 최종적 승자다. 여러분들은 아직 조직생활을 많이 안겪어봐서 승부라는 것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모른다. 당장의 승부와 최종적 승부말이다. 물론 여기서의 최종이라는 시간적 개념은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고, 승부의 결과는 역사 즉 후대가 결정하는 것이다. 자신은 이긴 걸로 알고 있는데 후대가 진 걸로 평가한다면 당장의 승부는 이겼지만 최종적 승부는 진 것이다. 사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나는 그런 승부에 관심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줄 안다. 물론 현 시대에 그런 승부라는 것이 중요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그렇다고 10년 후 20년 후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다. 인류가 19세기말 20세기 초에 겪었던 문화적 황금기가 유럽에 아늑하게 펼쳐졌을 때 독일의 문호 토마스 만이나 프랑스의 앙드레 지드같은 사람들은 유럽의 문화를 찬미하고 인류 문명의 고귀함에 공감했다. 하지만 10년도 안되어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난 이후 가장 야만적인 살육이 자행되는 시대로 탈바꿈되는 1차 세계대전을 목격하게 된다. 역사의 유행이나 시대적 조류는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본부장을 따르는 여러분들은 승부라는 것에 대해 익숙해져 준비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러면 자연히 승부욕이라는 것이 생긴다. 이 승부욕이라는 것의 끝판왕이 사마 중달이다. 당장의 승부와 최종적 승부가 일치되는 법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매 승부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견지한 자만이 최종적 승부에서 승리한다. 사마 중달을 보고 승부란 맨 마지막에 딱 한번 이기는 것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사실 본부장의 리더쉽 캐릭터에 가장 가까운 자는 바로 사마 중달이다. 그의 잘난 재능과 풍모 그리고 전승의 기록과 몰려드는 문하생에도 불구하고 그에 비례하여 주변에서의 견제 또한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사마 중달은 내적으로는 조조 가문의 끝없는 견제와 외적으로 공명에 대한 힘겨운 라이벌전-이 부분은 본부장과 좀 다르긴하다. 중달은 상식적 사고가 좀 부족했던 거같다-으로 항상 괴로워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마지막까지 정신줄을 놓지 않고 끝까지 승부욕을 발휘하여 기어이 패권을 거머쥔다. 정말 미리 알고는 가고 싶지 않은 길이다. 여러분들도 혹시 사주나 점 또는 어른들이 이르기를 크게될 인물이라고 일컬어졌다면 너무 좋아하지 말아라. 고생 지대로 한다는 얘기다. 크게 될 인물이 어떻게 편안하게 만들어 지겠는가. 하지만 나중에는 그만한 보람이 있다고들 크게 된 여러 사람들이 이야기한 걸 본부장이 직접 들었으니 크게 될 여러분들도 너무 낙담하지 말길 바란다. 뭐든 나중에 좋은 게 좋은 거란 옛 어른들의 말은 절대 틀린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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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담함이 갖는 매력

삼국지를 전체적으로 보면서 여러분이 반드시 캐치해야 할 것은 '대담해야 이긴다'다. 삼국지 전체에서 흐르는 주요 메세지는 약자는 대담하고 강자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소심한 약자의 미래는 필망이요 오만한 강자의 미래는 폭망이다. 약할수록 대담해져야 한다. 여러분들이 꼭 명심해야할 부분이다. 이미 기성세대나 기득권들은 이것을 간파하고 매우 조심스럽게 살고 있다. 전술적으로만 보면 매우 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들이 너무 소심해서는 이길 가망이 없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육손이 이릉전투에서 유비의 70만 촉군을 몰살시킬 수 있었던 것은 그만의 초인적인 인내심이다. 하지만 인내심은 또한 무한한 대담함에서 나온다. 대담함이란 공격에서만 쓰이는 게 아니다. 때를 기다릴 때도 꼭 필요한 덕목이다. 주변의 모든 오나라 장군들이 육손에게 싸우지 않음을 힐난하고 심지어는 항명까지하면서 면박을 줄 때 육손은 이를 끝까지 이겨내며 대도독의 면모를 잃지 않는 대담함을 보여 주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사실 공격적인 대담함도 필요할 때가 있겠지만 수비적인 대담함이 정말 필요할 때가 많다. 주변의 비난을 참고 이겨내며 본인의 존재 가치를 지켜나가는 대담함이야 말로 진정한 리더쉽의 아우라라고 본부장은 단언하고 싶다. 본부장의 리더쉽이라고 말했던 사마중달이 20년 동안의 긴 인내를 참아내지 않았다면 마지막 일격을 타격했던 그 대담함은 사실 실현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세상은 공평하다. 성경에 나오는 브레셋 장군 골리앗이 9척의 거구로 무겁고 긴 창을 거머질 수 있었듯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체구의 다윗도 손안에 딱 맞는 돌멩이 하나를 거머줄 수 있는 것이다. 승부는 내가 끝내는 것이고 승부에 대한 결과는 후대가 판단하는 것이다. 아무도 이 승부를 끝낼 수 없다. 본부장을 따르는 여러분들에게 승부는 언제나 진행중인 것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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