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66)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17편 호주

신사의 나라 영국 죄수들이 세운 아시아 속의 유럽대륙 호주
(1)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 입력 : 2017.07.03 21:26:23    수정 : 2017.07.03 21:3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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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상징하는 요하네스 베르메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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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네덜란드 상인들은 튤립 투기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지만 거품이 터지면서 사회 경제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상류층들의 튤립 투기를 풍자한 풍속화’

호주는 원래 17세기에 금빵을 먹고 다이어몬드를 싼다는 유럽 최고의 경제신공을 가진 네덜란드 사람들이 처음 발견했다. 1606년에 발견했다고 하는데 1602년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이미 인도네시아를 근거로 활동을 하고 있었으니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유럽에서 네덜란드의 정치적 지위는 합스부르크 왕가이면서 스페인왕인 칼 5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더욱 힘들어졌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는 칼 5세이고 스페인왕으로서는 카를로스 1세이다. 공교롭게도 당시 네덜란드 북부인 플랑드르(오늘날 네덜란드)가 칼 5세와 가장 탄압이 심했던 아들 필리페 2세의 고향이면서 스페인 통치권 안에서 가장 극심했던 개신교 반란지역이기도 하다. 칼 5세(카를로스 1세)는 유럽에서 근대 이후 인류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가장 많이 만들어준 나라인 스페인 왕 중 하나다. 먼저 그의 출생은 함스부르크 왕가의 직계 자손으로 조부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다. 독일 바이에른주로 여행을 가면 이 사람의 이름이 걸려있는 옛날 건물이 많다. 나중에 19세기 멕시코의 마지막 황제 이름도 막시밀리안이다. 매우 왕족다운 이름이다. 본부장도 여름마다 바이에른주에 속하는 바그너의 고향 바이로이트의 바그너 오페라 페스티발을 가면 항상 바이로이트 시내를 구경하는데 막시밀리안이란 이름이 자주 나오더라. 물론 히틀러 사진도 엄청 많다. 아예 대놓고 나온다. 알고 보니 바이에른 주에서 히틀러가 기반을 잡았고 또 워낙 오페라 광이라 많이 왔다 갔다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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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16세기 이탈리아는 스페인(아라곤,카스티아),프랑스,신성로마제국의 영향력이 도시국가별로 나뉘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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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상 가장 타락한 성직자인 교황 알렉산더 6세를 주제로 한 미드 ‘보르지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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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알렉산더 6세의 막내딸이며 세기의 악녀 루크레치아를 에디타 그루베로바가 연기한 도니제티의 ‘보르지아 루크레치아’

카를 5세의 부친은 조부인 막시밀리안 1세의 장남인 필리프1세로 합스부르크 왕가의 정략결혼을 위해 콜럼버스 탐사대를 후원한 것으로 유명한 스페인 이베리아 반도의 중주국인 카스티아의 이사벨라 여왕과 카스티아 다음 두 번째로 큰 아라곤 왕자의 딸인 후아나와 결혼한다. 이 결혼으로 합스부르크 왕가는 스페인에서 세력기반을 얻게된다. 조부인 막시밀리안 1세는 대단한 야심가여서 유럽 전역을 자신의 손안에 넣기 위해 그야말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하였고 이때 함께 음모를 꾸몄던 자가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교황으로 미드 ‘보르지아(Borgia)’에서 제레미 아이언스가 연기한 알렉산데르 6세이다. 이자는 토르데시아스 조약을 선포해 스페인 포르투갈의 해외원정 독점권을 주며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이탈리아는 프랑스는 베네치아, 스페인 아라곤은 나폴리, 시칠리, 사르디나, 스페인 카스티야는 밀라노를 세력권으로 두고 나뉘어져 있었다. 이탈리아 안에서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는 프랑스보다 스페인 포르투갈 세력과의 협력이 중요했던 것이다. 결국 칼 5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직계로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손자이고 스페인 왕가 페르난도 2세의 외손자이며 포르투갈 왕가와도 같은 합스부르크 일족이면서 로마 카톨릭의 수호자라는 권위까지 거머쥔 역사상 최초로 통합된 이베리아 반도에서 스페인이라는 나라 이름으로 최초의 왕으로 등극해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시대를 연 장본인이다. 더불어 독일 그림형제의 동화 백설공주의 원래 주인공인 아들인 필리페 2세와 신분의 차이를 극복하고 결혼한 왕족이 아닌 며느리를 독살한 매우 현실적이고 매정한 황제이기도 하다. 본부장이 좀처럼 이렇게 자세하게 기술을 하지 않지만 이 부분은 우리에게 중요한 대항해 시대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기에 자세히 설명하니 계속 경청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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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무적함대 스페인의 전성기를 연 신성로마제국 황제가된 스페인 왕 칼 5세 ‘노란색은 합스부르크 왕가 통치 지역 & 붉은 색 선은 신성로마제국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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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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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페 2세 시대의 스페인 포르투갈 동군연합 제국 영토 ‘아메리카 대륙,이베리아 반도, 이탈리아의 절반,네덜란드 그리고 동,서인도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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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메리 여왕의 남편이자 스페인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통치했지만 총 4번의 국가파산 선언을 했다. ‘필리페 2세’

특히 다음의 이름들을 꼭 주목하도록 해라. 막시밀리안 1세(독일), 알렉산데르 6세(교황), 칼 5세(스페인), 필리페 2세(스페인), 엘리자베스 1세(영국), 이사벨라 1세(스페인)만 이야기해도 몇 날 밤을 세워도 유럽 역사를 다 이야기하지는 못할 정도로 이들이 만들어낸 역사적 이슈는 실로 엄청나다. 솔직히 이 사람들만 제대로 공부해도 유럽에서 웬만한 저변의 이해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모두 한 시대를 접고 새로운 시대를 여는데 역할을 한 사람들이니 말이다. 칼 5세는 이들과 시대적으로 중간에 위치하며 16세기 스페인 전성시대를 열었고 반대로 네덜란드에게는 가장 혹독한 시련의 시대를 열었다. 네덜란드가 칼 5세의 어마어마한 위세를 이어 스페인과 그 식민지를 정치적 종교적으로 철권 통치한 필리페 2세에게 대항하여 1568년 네덜란드 공화국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30년 전쟁으로 개신교가 인정되는 계기가 되는 조약)에서 완전 독립을 인정받을 때까지 고난의 80년이 걸렸다. 하지만 완전 독립 이전에도 이미 해외 식민지 개척에서 네덜란드 공화국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아메리카와 인도, 인도네시아, 호주 심지어는 남아프리카까지 네덜란드가 영국보다 항상 먼저 개척을 시작했다고 보면 된다. 이중 인도네시아만 지켰고 나머지는 영국에게 밀렸지만 말이다. 특히 호주는 인도네시아를 근거를 둔 네덜란드가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방식이 영국과 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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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에서 매우 가까워 일찍이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에서 존재를 알고 있었다. ‘1606년에 네덜란드인이 첫 발견하여 New Holland로 명명’

네덜란드는 초기 포르투갈이 했던 방식처럼 거점 지역에 연락소를 설치하고 중개무역으로 이익을 보는 방식을 선택했기에 인도나 호주, 아메리카처럼 큰 대륙을 직접 식민지화하는 것에는 소극적이었다. 특히 호주는 전체 면적에 비해 거주 가능 지역이 매우 협소하고 위치마저도 구대륙에서 멀리 떨어져있어, 아시아 전역과 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중개무역만을 주목적으로 하는 당시 세계 최초의 다국적 기업인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입장에서는 그다지 매력이 떨어지는 곳이라 볼 수 있다. 한마디로 현지에 인프라까지 건설해주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뭐든 처음부터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자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영국의 경우는 무엇이든 성과를 이루려면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을 자국이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4개 섬이 점차적으로 합쳐지는 과정에서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다. 작은 섬을 모아보았기에 큰 대륙도 모으는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엔 다 힘들다. 아무리 쉬워 보이는 일도 일단 시작하면 괴롭고 지루함의 일상일 뿐 처음에 보았던 근사함은 온데간데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도 무슨 일에 임하든 이런 마음가짐을 처음부터 안고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우리의 힘있는 기성세대 영감님들이 여러분을 눈 여겨 볼 테니 말이다. 이미 이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내일이라도 당장 기회는 온다. 명심해라. 좋은 회사일수록 자리는 많은데 인재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호주 이주 역사를 보면 이런 인간사의 모든 과정이 녹아있다. 아니 호주뿐 아니라 근대에 이루어진 대항해 시대의 기록들이 모두가 그러하다. 처음에 먼저 누가 발견했느냐 또는 누가 빨리 움직였느냐가 중요해 보였다. 하지만 이 둘은 좀 더 지속력 있는 태도를 가진 자들에 의해 이내 자리를 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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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는 호주, 아직도 영연방 국가로 선진국중 유일하게 국기에 유니언젝을 쓰고 있다.

계획 없이 무분별하게 남미를 개척하면서 막대한 금과 은을 스페인 국내로 유입시켰음에도 스페인은 파산했고 북아메리카는 초기 진입자인 스페인 네덜란드를 따돌리고 프랑스를 제압한 영국을 거쳐 독립했다. 인도도 포르투갈의 바스코 다가마가 발견해 네덜란드 그리고 프랑스를 제압한 영국을 거쳐 독립했다. 호주는 포르투갈 스페인 쇠퇴기에 맞추어 네덜란드가 최초 발견해 영국을 거쳐 독립한다. 무슨 상황극처럼 역할과 과정을 마치 정해둔 것처럼 동일하다. 이제는 여러분이 각 인과관계의 차이를 생각해 보길 바란다. 하지만 본부장이 보기에는 매우 심플하게 보인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모든 일 처리의 성사과정과 이해관계를 보는 것이 본부장이 이 글을 쓰는 주 이유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말했던 대로 일 처리의 핵심은 완성에 있다. 완성했다고 다 내 것이 되는냐 하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인간이 지구상에 영원히 자신의 소유로 만들 수 있는 것은 먼지 하나도 없다. 인간이 오로지 소유할 수 있는 것은 물건이나 사람 또는 나라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했던 기억이다. 내가 하는 기억과 남이 그리고 후손들이 하는 기억 말이다. 인생은 기억되는 자가 가장 부자다. 성경이나 다른 종교 경전을 비롯한 인류가 만든 모든 기록물에 그들이 한 행적으로 이름을 남기거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사람은 더욱 부자다. 그것이 실패했어도 아무것도 아니한 사람보다는 낫다. 다만 기왕 행한 일을 완성해주는 자가 가장 훌륭하다. 소유는 완성과는 틀리다. 완성은 과정을 전제로 하지만 소유는 그저 숫자나 글자의 희미한 흔적일 뿐이니 말이다. 본부장이 20여개 나라의 이야기를 뽑아 여러분에게 하고자 하는 말은 역사의 결과나 소유관계를 규명하고 싶은 게 아니다. 역사의 과정, 생각의 과정, 이해관계의 추론 과정 그리고 일 처리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 대화하며 공유하고 싶었던 거다. 베스트 그룹핑 능력을 가진 실전형 인재는 오로지 공유할 만한 과정을 가진 자만이 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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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에서 금성을 관측하다가 호주를 탐사한, 선장 리더십의 롤모델 ‘제임스 쿡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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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쿡의 탐사를 끝으로 전세계는 모두 유럽에 알려져 대항해 시대는 막을 내리고 식민지 시대가 도래한다 ‘제임스 쿡 선장이 완성한 대항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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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3번의 항해를 통해 대서양과 태평양 그리고 베링해를 탐사한 제임스 쿡 선장 ‘과정적 완벽함과 결과적 완전함을 겸비한 리더십’

모든 일 처리 과정에는 항상 피할 수 없는 고단한 선택이 도사리고 있다. 큰 조직을 경영하면서 자신을 항상 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떳떳하라는 말을 하는 이유는 나중에 한 갓 명예를 남기라는 뜻이 아니라 그가 앞으로 해야 될지 모르는 불가피하지만 인기 없는 선택 때문이다. 본부장이 리더십중에서 선장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어느 지역의 총독이나 지방관의 리더십은 균형감각과 분별력에 큰 비중을 두지만 선장의 리더십은 이건 기본이고 대담함까지 요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하고 싶어하지 않는 결정을 하는 용기 말이다. 바다에서의 선장은 육지의 지방관처럼 자기 한 몸 처신 잘한다고 팔로워들이 따라주는 정착민들이 아니다. 모두가 큰 리스크를 짊어지고 함께 목표를 성취해야만 모든 행동의 보답이 생기는 완벽함이 아니라 완성품을 요구하는 리더십이다. 배위에 사람들과 항구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모두를 위해 반드시 빈 손으로 돌아갈 수 없는 리더십이다. 결과를 만들어 내야만하기에 과정까지도 오로지 리더십의 대상이고 심지어는 일의 시작 단계까지도 남다르기를 바라는 리더십이다. 본부장 정도의 신공이 아니라도 비롯한 웬만한 선장 리더십을 가진 전문가들은 잘 알고 있다. 인풋이 같으면 아웃풋도 같은 것을 무수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조금이라도 공정과정의 오차를 없애고 모수를 늘려야 하기에 완성품의 리더십은 과정상에서는 오히려 완벽함을 기하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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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로 24살에 베스트셀러작가가 된 ‘콜린 윌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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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모든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굽히지 않는 작가 ‘콜린 윌슨’

호주 이주과정을 보면 미국만큼 처절하다. 일단 시작부터 개척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서가 넘쳐났다. 경제성을 알아보는 것에는 유럽최고인 네덜란드인들도 외면한 곳으로 영국의 몇 몇 해적들이 다녀가면서 더 더욱 비관적인 보고가 난무했다. 결국 초기 호주 정착민은 미국처럼 종교적, 경제적 또는 정치적으로 자발적 이주민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자발적이라 하더라도 본국에서 자생이 불가능한 죄를 짓거나 사회적 평판을 받은 사람들이 호주로 향했다. 영국 정부도 자발적 이주민을 모으기가 힘든 것을 알고 급속발전하고 있는 제국의 영역내에서 급증하는 죄수들을 우선적으로 투입했다. ‘잔혹의 세계사’를 쓴 영국작가 콜린 윌슨의 말을 빌리면 나중엔 사소한 경범죄를 지은 성인 남녀는 물론 어린아이, 청소년 범죄자들까지 호주로 이주시켜 식민지 개척을 통해 복역하게 했다. 우리가 영국인들을 국제적인 악당이라고 헐리우드 영화나 광고 같은 데서 곧잘 하게 된 계기가 다 식민지 개척 시기에 행해진 가혹한 결정들 때문이다. 인도의 세포이 항쟁 진압이라던지 파키스탄, 인도, 방글라데시 분할 또는 아라비아 반도와 발칸반도 처리 및 분할 그리고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 지중해 등 전세계 전략적 요충지역과 섬에 대한 할양과 민족이나 국가 분단에 개입한 것들을 여기서 다 말하자면 끝도 없다. 나쁜놈 들이다. 하지만 진짜 악당 소리를 듣는 이유는 자국민에게도 매우 엄격하고 가혹했다는 것이다. 호주로 끌려온 영국 성인 남녀나 어린이들은 모두 평소 같으면 가벼운 복역이나 구금에 끝날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정말 악질적 중범죄는 보통 사형이 내려지던 18세기 당시이니 말이다. 런던 시내에서 소매치기를 한다거나 매춘 또는 가벼운 사기를 친 사람이라도 바로 런던항에서 배를 타고 돌고 돌아 인도나 캐나다 아메리카에서 현지에서 체포되어 재판받은 죄수들을 더 태운 후 고향에서 수 천 킬로 떨어진 유형지 호주로 끌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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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내 이탈리아 동족들의 민원을 들어주는 代父를 연기한 말론 브란도의 ‘대부’

영국 작가 서머셋 모옴의 ‘페인티드 베일’에서 영국인들은 고향에 대한 향수가 프랑스보다 매우 약하다고 한 이야기 뒤에는 다 이런 아픔이 있었던 것이다. 어디 고향이라고 인간의 따뜻함을 느껴봤어야 말이지. 어디가나 입바른 소리와 가혹한 규율이 난무하던 19세기 영국이다. 뭐 서민들은 어느 나라나 다 힘들었겠지만 말이다. 개중엔 정말 억울한 사람들도 많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나 부모 형제 또는 자식과도 생이별을 해야 했으니 아비귀환이 따로 없었을 것이다. 누가 이런 무지막지한 결정을 기획했는지는 모르지만 시행과정에서 엄청난 소요가 났을 것은 너무나도 뻔하다. 유럽의 맞수인 프랑스가 식민지 경쟁 중에 유일하게 안걸고 넘어진 곳이 호주이기에 그야말로 영국 혼자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발버둥을 친 과정이라고 보아도 좋다. 본부장도 호주를 가면 항상 느끼는 것이 나라 전체가 신도시 같은 느낌이다. 죄인들이 수 천 킬로를 배로 끌려와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한 땅이니 본국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이참에 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으리라. 호주가 전세계에서 살기 좋은 나라 최고라는 말은 예전에는 최고 지옥이었다는 말이다. 오래된 곳에서 칭찬이 나오기 힘들고 오래 사귄 사람과는 정이 깊지 않은 것이 인생사의 진리다. 서로가 무슨 사연이든 힘든 과거를 안고 이 척박한 땅에 와서 함께 일하며 과거 캐묻지 않고 조심하고 산 것이다. 현대에 가장 살기 좋은 나라는 나를 가장 모르는 나라라고 하지 않던가. 이걸 가장 먼저 샘플로 보여준 나라가 호주다. 미국을 가능성의 나라라고는 하지만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지는 않는다. 자발적으로 온 사람들이니 서로 어디 출신이냐 종교는 뭐냐 하면서 틈만 나면 끼리끼리 이합집산했을 것이다. 영화 ‘대부’를 보면 이탈리아계들이 미국에 이민 와 어렵게 성공하면서 자기들끼리 모여 아웅다웅 살지 않는가 말이다. 하지만 호주는 그런 나라가 아니다. 서로 뭘 묻는다는 것 자체가 매우 부담스럽고 서로 원치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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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런 영화는 만들어 질 수 없다. ‘모든 걸 스스로 해야 했던 호주’

명심하자. 모든 일에는 다 원인이 있다. 하지만 지금 나쁜 것이 나중에도 나쁘란 법은 없다. 단 지금부터만 잘 한다면 말이다. 올바른 과정은 언제나 나를 깨끗하게 만들어준다. 스스로 공들인 시간과 행동만이 나를 바꾸어 주는 것이다. 한갖 말도 행동이 되려면 목적이 있어야 된다. 목적이 분명하지 않는 말은 그저 쓸데없는 말이다. 신은 말을 듣고 싶어하지 않고 기도를 듣고 싶어한다고 한다. 기도는 목적이 분명한 말로 하는 행동이다. 호주보다 멋진 곳이 없다는 호주관광청 광고 문구는 역사상 호주보다 실제 행동이 많이 이루어지는 나라도 없다는 이야기다. 그냥 이루어진 것이 지금껏 하나도 없는 나라다. 그저 자연경관만 좋고 모두가 얻어걸린 인생의 행운을 즐기는 것처럼 눈알이 개슴치래 하다면 관광객뿐 아니라 어느 내국인이라도 그런 말을 당당히 할 수 있겠는가. 설령 했다고해도 한번 가보면 들통날 거짓말이다. 영국의 석학 에릭 홉스본의 '세상은 저절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사무엘 스마일스가 그토록 외쳤고, 대영제국 영국 신사들의 기본 마음가짐이라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자조론(自助論)’을 이곳 호주에서 지난 300년동안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그래서 본부장은 호주를 보면서 스페인 치하의 남아메리카를 생각해보고 미국 초기개척시대 그라고 영국령 인도를 생각해 본다. 앞에서 말한 대륙들과는 호감도에서부터 뭔가 접근부터 다른 것이 호주 개척 역사다. 사람들에게 호주는 말 그대로 세상의 끝에 있는 유형지 즉 내가 좋아서 가는 곳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운명적으로 가야 하는 절대 가고 싶지 않은 땅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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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에서 바이킹은 빠질수 없다. 색깔로만 보면 영국은 완전히 민족들이 함께 사는 나라다. ‘11세기 바이킹의 영국 침입’

호주는 영국을 다시 한번 새로운 대륙에 만들어 본 또 다른 창조의 역사라는 결론내리고 싶다. 실전형 악당으로 유럽을 전율케 한 바이킹의 후예인 노르만 족 정복자 윌리암이 영국을 점령하며 시작된 개척의 역사를 시작으로 그저 처량하고 볼품없었던 나라 영국을 대영제국이라는 신사들이 산다는 희망과 영광의 나라( Land of Hope and Glory/ 엘가가 작곡한 잉글랜드 국가)로 탈바뀜하는 과정을 호주라는 허허벌판에서 다시 만든 것이다. 한번 하면 백번도 하는 것이다. 본부장은 영국인이 아니고 개인적으로는 독일이 훨씬 좋다. 하지만 나의 개인적 취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성공의 과정은 반드시 알고 넘어가야 한다. 일처리는 그냥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좋아하는 책 중에 중국 근대작가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 The Importance of Living)’이란 책이 있다. 다른 나라 편에서도 언급을 한 바가 있지만 이 책의 제목대로 임어당은 생활을 강조했다. 생활은 말 그대로 일을 포함한 삶을 영위해가는 모든 과정이다. 인간은 결국 무슨 목적을 위해 살아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삶을 살아내는 것이다. 그게 목적이다. 잘 살아내는 삶 말이다. 잘 살아내는 삶은 자연스러운 삶이고 자연스러운 삶은 삶 자체가 목적인 삶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삶은 반드시 개인적으로 예술적이어야 한다. 결국 인간이 원하는 삶은 자신이 삶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그게 예술적인 삶이다. 예술가의 삶을 산다고 예술적인 삶은 아닐 것이다. 예술가의 생활이 예술적이라면 모를까. 예술적이라는 것은 자기가 봐도 아름다운 것이다. 인간은 최종적으로 자기만족을 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기 위해 지금의 행복도 포기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존재이다. 우리가 호주에 가서 행복한 이유는 이곳에 처음 온 사람들이 느낀 그 주체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한 번 느껴볼 수 있는 자기 만족감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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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것은 없지만 당당하게 본인의 일을 수행하며 꿈을 키워가는 청년 제임스 딘, 영화 ‘자이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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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성공했지만 꿈을 잃고 방황하는 노년의 제임스 딘, 영화 ‘자이안트’

본부장은 3년전 겨울 뉴욕 링컨센타에서 칼바람을 맞으며 낭만도 생각했지만 이곳에 처음 발을 디딘 개척자들의 그 당시 마음을 떠올려보았다. 살을 에이는 추위에 고향을 등지고 비좁은 배를타고 얼음같은 바다를 건너 언 땅에 오른 그들의 머리 속에 떠오른 것은 그저 먹고 살자가 아닐 것이다. 이왕 고생하러 온 거 꼭 스스로가 만족할 수 있을 만큼 성공하자고 다짐했을 것이다. 그 상황에서 그저 밥만 먹고 살만큼만 일하자고 생각한 사람이 과연 있을까 말이다. 인간은 절박한 상황에 놓이면 생존을 위해 위축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사의 상념을 넘는 더 큰 꿈을 꾸게 된다. 영화 ‘자이언트’에 나오는 성공하기 전 젊은 시절 제임스 딘처럼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자는 외롭지 않다. 미래에 꿈꾸는 또 다른 나와 언제나 함께 있기 때문이다. 2014년 오스카 시상식에서 매튜 메커너히가 어려운 무명시절 미래의 나를 만나기 위해 언제나 노력했다는 말이나 호주 배우 러셀 크로우가 2015년 영화 ‘워터 디바이드’ 개봉기념 기자회견에서 무명시절 자신의 성공을 기원하며 새벽 5시에 시드니 공원에 가서 나뭇잎에 자신의 소원을 적고 묻으며 '세상에 나보다 열정적인 사람은 없다'는 자부심을 가졌다는 말은 인간이 절박한 상황에 오히려 진실로 외롭지 않음을 보여주는 말이다. 본부장도 호주를 가면 항상 느끼는 감정이 글로벌 비지니스에 대한 강한 열망이다. 뮌헨이나 런던 그리고 뉴욕에서는 느끼는 감정과는 조금 다른 자신의 내면에 대한 지독한 다독거림이 느껴진다. 본부장은 가끔 스스로 나태해졌다는 느낌이 들 때면 일부러 비행기로 호주로 날아가 시드니 새벽거리를 걸으며 나의 인생에 대한 다짐을 하곤 했다. 그만큼 시드니는 내게 잠재된 열정을 일깨워주는 곳이었다. 웬만한 유럽 국가 오페라 하우스는 다 돌아보았지만 시드니 오페라하우스를 가보지 않은 것도 아마 내게는 예술보다는 비지니스적 열정이 먼저인 도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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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천일의 앤’의 비운의 주인공 앤 볼룸이 바로 엘리자베스 1세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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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영웅들이 격는 통과의례적 시련들을 모두 갖춘 어린시절을 보내며 자신을 스스로 담금질해 나간 ‘엘리자베스 1세’

시작부터 누구도 기대하지 않은 나라 호주. 하지만 지금은 누구나 살고 싶은 나라. 앞서 이야기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는 어린시절 어머니가 정신병을 앓고 아버지는 바람둥이로 살다가 일찍 죽어 조부인 선황제인 막시밀리안 1세가 이를 못마땅해 하여 계속 황위계승을 미루었다고 한다. 결국 합스부르그 왕가의 적통임에도 불구하고 유럽 각지를 떠돌며 결국 스페인이라는 변방의 일개 대공으로 보내지는 서러움을 겪었다. 하지만 이런 서러운 환경적 경험을 이겨내는 과정을 통해 칼 5세는 영웅적 풍모에 걸맞는 활달한 기질과 5개국에 능통하는 언어능력을 얻었고 결국 최초의 스페인 국왕이면서 고생 끝에 최종적으로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는 영애를 얻는다. 그의 이런 드라마틱한 역사를 담은 베르디 오페라가 바로 ‘에르나니’다. 그가 어린 시절 서럽게 돌아다녔던 지역은 그대로 그의 우군이 되었고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손으로 독일 오스트리아 연방은 물론 스페인, 포르투갈 및 그들이 개척한 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식민지 그리고 이탈리아 반도까지 그의 발 아래두는 그야말로 스페인 최전성 시대를 여는 왕이 된다. 이후 왕가의 인생 역전의 드라마는 바다건너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가 쓰는데 아버지인 헨리 8세의 미움을 받아 목이 잘려 죽는 ‘천일의 엔’으로 유명한 엔 볼린의 딸로서 어린시절 온갖 핍박을 받아오다가 이복 언니인 메리 여왕시절에는 반역의 수괴로 몰려 런던탑에 갖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을 의미 없이 이어간다. 이때 런던탑에 갖힌 엘리자베스 여왕은 자신의 신세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나중엔 엄청난 문장력을 과시했다고 한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가상의 인물이고 실제 엘리자베스 여왕이라는 설이 있다.

잠시 막간에 그녀의 시를 한번 음미해보자.

이 시는 엘리자베스가 남긴 작품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임은 떠나는데(On Monsieur's Departure)’라는 시의 첫 번째 연이다.

나는 애통해하지만 감히 불평을 드러내지는 못합니다.

(I grieve and dare not show my discontent,)

나는 사랑하지만 아직도 미워하는 척하려고 합니다.

(I love, and yet am forced to seem to hate,)

나는 아직도 내 마음을 감히 말하지 못합니다.

(I do, yet dare not say I ever meant,)

나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지만 속으로는 끝없이 재잘거립니다.

(I seem stark mute but inwardly do prate.)

나는 나면서도 아니고, 얼어붙었으면서도 아직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I am and not, I freeze and yet am burned,)

내 자신으로부터 또 다른 자신에게로 돌아서기 때문입니다.

(Since from myself another self I turned.)



다음은 스페인 무적함대와의 결전을 앞두고 해군 장병들에게 한 연설이다.

나는 내가 연약하고 가냘픈 여인의 몸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나는 왕의 심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잉글랜드 국왕의 심장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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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세계대전 터키 갈리폴리 상륙작전 중 전사한 아들들에 대한 아버지의 비애를 담은 호주영화 ‘워터 디바이너’

호주를 처음 발견한 네덜란드인들은 호주를 뉴 네덜란드라고 명명했지만 앞서 말했듯이 투자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개척에 손을 떼게 되었고 이후 1699년 영국의 해적이면서 항해사, 탐험가, 작가이자 요즘 나오는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의 모티브가 된 윌리엄 뎀피어가 호주를 영국인으로서 처음 조사하지만 100년전 네덜란드인들과 마찬가지로 비관적인 보고를 하게 된다. 이후 오랜 시간이 흐른 1769년 여러 방면에서 해박한 과학적 지식을 겸비한 탐험가 제임스 쿡 선장이 호주를 탐험하고 그 가능성에 깊이 감명받아 ‘국왕의 이름과 국왕의 깃발 아래 이 땅을 점령한다'라는 극적 표현을 사용해가며 뉴사우스웨일즈라고 다시 명명했다. 그리고 곧바로 호주 개척에 대한 긍정적 검토를 요청하는 보고를 하게 되면서 호주는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다. 처음 발견된지 160년이나 지나서 말이다. 1492년 그토록 열망하던 인도를 찾기 위한 유럽인들의 염원으로 아메리카와 태평양 그리고 인도로 가는 항로를 발견하고 나서 300년 정도 지나서야 가치 있는 신대륙으로 대접받게 된 것이다. 더구나 앞에서 러셀 크로우도 한 얘기지만 호주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처칠이 해군성 장군재직시 졸속으로 기획했다가 적아군 도합 50만명의 사상자를 내며 대패한 갈리폴리 상륙작전에서 호주군 수 만 명의 사상자를 낸 아픔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이 트라우마가 상당하다. 2차세계 대전에서도 연합국인 모국 영국을 위해 많은 호주 젊은이들이 죽었다. 19세기 신사의 나라 대영제국에서 제대로 행세 한번 못해보고 죄인으로 유형지에 끌려와 죽을 고생을 해서 자리를 잡았더니 나중에는 그 자식들대까지 희생을 강요당한 나라가 호주다. 이처럼 호주는 시작은 고달팠고 과정도 애처로왔지만 끝이 아름다운 나라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나라로 치면 호주를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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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서 바라본 정말 아름다운 ‘호주 대륙’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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