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65)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16편 인도

2000년간 인류가 지향한 격이 다른 눈높이, 인도
(1)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는 것

  • 입력 : 2017.06.26 21:52:11    수정 : 2017.06.26 21:5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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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데이비드 린 감독의 1986년 영화 ‘인도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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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모건 포스터의 원작 ‘인도로 가는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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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럼버스가 꿈에서도 열망한 인도대륙인줄 알고 상륙한 캐러비안해의 서인도 제도 ‘West Indies’



지도를 한번 펼쳐보자. 유라시아 대륙의 끝에서 끝인 영국에서 일본열도를 중간에서 나누면 인도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사람 콜럼버스가 스페인 이사벨라 여왕에게 지원을 받아 출발해 천신만고 끝에 1492년 산살바도로 섬에 상륙하면서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마음 속으로 너무나도 인도이길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같은 이탈리아 출신인 베네치아 사람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을 감명 깊게 읽고 그가 오로지 가고 싶었던 곳. 실존 인물인지도 확인이 안되는 저자의 풍요로움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지나쳤기에 이미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부터 풍요로움에 중독된 유럽의 도시들은 더 큰 풍요를 찾기 시작했다. 1453년 동로마의 멸망으로 인도로 가는 육로는 아라비아 세력인 투르크가 독점하면서 유럽인들의 인도에 대한 집착은 끝없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원래 인간이란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이들이 인도에 대해 어느 정도 집착이 강했는지 좀 더 보자. 콜럼버스가 발견한 아메리카 대륙의 산살바도로 섬 지역을 이후 서인도 제도라고 한다. 오늘날 유명한 영국령 버진 아일랜드, 미국 헐리우드 영화 속 휴양지로 자주 나오는 바하마 제도도 이 지역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말년을 보낸 쿠바도,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환락의 도시 자마이카의 포트로열도, 이름마저 풍요로운 푸에르토리코(Puerto Rico/스페인어로 풍요로운 항구)도 이 곳이다. 풍요로움의 상징인 카리브 해 연안 7000개의 섬들로 이루어진 이 지역이 바로 서인도 제도(West Indies)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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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0년에 설립되어 1874년에 해체됨. 국가주의가 강했던 당시 동인도 회사는 선진적 비지니스 개념이었다. ‘영국 EIC 로고’

스페인의 인도에 대한 사무치는 동경은 이후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학대로 이어진다. 스페인이 원래 꿈꿨던 인도에서 얻고 싶었던 만큼의 금과 은을 얻기 위해서 말이다. 마르코 폴로가 기술한 인도의 금과 은을 가정하고 무리한 원정에 투자한 만큼 말이다. 기업이 아니라 국가가 직접 식민지를 개척하고 경작하면서 일어나는 문제는 실로 엄청나게 컸다. 인도란 환타지가 가져다준 국가 미래 청사진에 뒤따르는 수익성이 효율적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것은 스페인은 대항해 시대 초기 진입자의 이익(First mover's benefits)을 지속시키지 못하고 결국 식민지 개척 때문에 오히려 국가파산을 하고 만다. 이쯤에서 하나 명심하자. '부'라는 것은 철저하게 개인적인 산물이다. 개인이 부자가 되어야 국가가 부자가 되는 것이지 국가가 부자가 되어 개인이 부자가 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개인은 자신의 부는 원하지만 국가나 단체의 부에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은 개인이 하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경제적으로는 지극히 이기적인 것이 인간이다. 영국이 인도를 포르투갈, 동군연합 후 필리페 2세 치하 스페인, 네덜란드에 이어 마지막으로 접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국가가 아닌 회사라는 형태를 띤 동인도 회사를 통했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좋은 것은 역량 있는 개인이 사기업을 이루어 효율성을 극대화한 식민지 전략을 계속 추진했다면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 테지만. 영국은 세포이 항쟁 이후 겁먹고 균형감을 잃고 오히려 1858년부터 정부가 인도를 직접 통치하는 악수를 두고 만다. 뭐든 정부가 직접 개입하면 될 것도 안되게 되어있다. 결국 이에 대한 반발로 간디가 이끄는 독립세력들은 인도의 완전 독립을 요구하게 되고 1947년 8월 15일 독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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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8년 네덜란드가 스페인(합스부르크 에스파냐)에게 80년전쟁끝에 독립하고 포르투갈 세계 무역 거점을 대부분 빼앗아 전성기를 누린다. ‘Dutch Empire and Trade Route in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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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에 설립되어 1799년에 해체됨. 17세기 후반까지 영국 EIC보다 더 강력했었던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 ‘Dutch East Inia Company’

본부장이 당시 영국 수상 또는 영국 황제였었다면 인도를 절대 정부가 직접 통치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인도회사가 인도와 영국 모두의 번영을 가져올 수 있게 혁신하게 하여 효율적인 조직으로 탈바꿈 시켰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인도는 한번도 누군가의 통치를 받았다는 부끄러운 기억을 가지게 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영국의 문화와 리더십을 공유하고 인도의 그것과 융합을 통해 다양성과 균형감을 모두를 충족시켜 나가도록 했을 것이다. 지구상의 어떤 국가나 개인도 이익보다 더 중요시 여기는 것이 존재에 대한 가치정립(Valuation)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만은 존재감보다 이익을 더 중요시 여긴다. 따라서 국가나 개인에 대한 존재감에 대한 멸시 없이 오로지 회사를 통한 합리적 이익을 통해 서로가 결연하게 연합했다면 좀 더 멋진 형태의 공동 성장이 가능하지 않았겠나라고 본부장은 확신한다. 문화력나 경제력이 앞설 수는 있어도 존재적 가치가 앞설 수는 없기 때문이다. 즉 정치적 타협이나 음모로 만들어진 모든 차별적인 결정은 반드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은 과거 역사는 물론 현재의 본부장이 몸담고 있는 국가나 회사 조직에서도 비일비재함을 여러분들은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영국이 뒤늦게라도 자의든 타의든 인도독립에 전향적인 자세로 임했기에 오늘날에도 인도는 영연방국가로서 지위를 스스로 포기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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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적 리더십은 정복욕이 아니라 경외감이다. ‘2차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진출 영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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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력은 대국적 리더십의 필수 요소다. ‘Tolerance’

포용적인 정책이 어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다 주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만약 여기서 조금이라도 미련을 더 가졌다면 인도차이나에서 대망신을 당한 프랑스보다 더 큰 망신을 인도에서 당했을 것이라고 본부장은 확신하다. 마찬가지 연장선상에서 일본군이 2차 세계대전 중 중국 본토에 행했던 어리석은 반인륜적 전쟁범죄도 당시 일본의 리더십이 조금 더 멀리 보고 절제하며 현명하게 처신했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명심하자. 어떤 국가나 사람에게라도 절대 모멸감을 주어서는 안된다. 그걸 참고 넘어갈 인류는 절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부장이 누차 스스로의 룰(rule), 즉 금기사항을 지키고 인간이 지향해야 할 최고의 가치(Crown Jewel)를 가질 것을 당부하는 것이다. 그것이 있다면 절대 균형감을 잃지 않을테고 그렇다면 그런 판단 하에 행한 모든 행동은 스스로 참기 어려운 근원적인 비난을 받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본부장이 말한다. 만약 여러분이 정치적 리더가 되어 다른 나라를 통합하거나 더 큰 규모의 연방국가를 만들고자 한다면 본국이 가장 큰 희생을 치를 각오를 해야 한다. 누군가를 내편으로 만들려면 내 가장 귀한 것을 그에게 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나의 상전으로까지 모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그래야 완벽하게 통합할 수 있다. 작은 나라가 큰 제국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는 전 국민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속임수가 없는 건전한 주인의식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기희생을 통한 타국이나 타국민의 감동이나 감탄 그게 어렵다면 공감이라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글로벌 시대 최후의 승자는 바로 자기 희생을 감행할 수 있는 대담한 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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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서인도 제도(West Indies)는 영국령. 동인도 제도(East indies)라고 하면 네덜란드령 동인도이다. ‘Map of East In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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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9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파산하고 이 지역은 네덜란드령 식민지로 바뀐다. 1942년 일본군 점령 직전의 네덜란드 동인도 제도 ‘Netherlands In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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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식민지적 향수가 다분히 느껴지는 낭만적이지만 조금은 불순한 영화 ‘인도차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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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령 미얀마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연방(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그리고 완충국 기능으로 독립을 유지한 태국(Thailand)으로 구성된 ‘인도 차이나 반도’



자, 더 이야기해보자. 반대로 동인도 제도(East Indies)라는 것도 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파푸아뉴기니 지역이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령 인도를 가르켜 말했다. 이미 1700년대에 들어오며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통해 인도에서 네덜란드 세력과 경쟁하여 입지를 강화시켜 갔지만 동인도제도에서는 반대로 영국이 네덜란드에 패해 이 지역에서 물러난다. 1648년 네덜란드가 스페인에게 독립하면서 그 여세를 몰아 포르투갈에게서 빼앗고 다시 영국까지 몰아낸 것이다. 대영제국도 기를 못 필 정도로 강했던 네덜란드의 시대다. 인도네시아란 이름도 인도(인디아)와 네시아(섬들)로 구성된 합성어이다. 한마디로 여기도 그들이 보기엔 인도였다. 아니 인도이길 바랬다. 유럽인들에게 동양은 중국이 아니라 인도였고 중국, 일본, 한국은 극동이라고 불렀다.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마르코 폴로는 오히려 중국 원나라 쿠빌라이칸 시대의 생활상을 주로 책 ‘동방견문록’에 묘사했는데도 말이다. 그만큼 유럽은 인도에 꽂혀있었다. 인도에서 영국에게 패한 프랑스가 대신 식민지로 취한 오늘날 베트남, 캄모디아, 라오스로 구성된 19세기 인도차이나 연방이 위치한 인도차이나 반도도 마찬가지다. 유럽제국들은 자신들이 인도를 차지했다고 서로들 주장했던 것이다. 실제 인도를 차지한 경쟁국 영국을 의식한 본국 비판 여론들을 무마하기 위한 홍보용 이름들이다. 그 만큼 인도라는 이름은 그들에게는 포기할 수 없는 풍요로움과 이니셔티브(주도권)의 상징이었다. 영국이 대영제국이 된 이유도 인도가 주는 이러한 환타제틱한 상징성 때문이었다. 실제 그만한 부를 얻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주변국이 보기엔 그래 보였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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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관념의 기본을 세우기에 매우 유익하니 꼭 읽어보기 바란다.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본부장이 인생의 비밀을 말해주마. 회사의 수익이나 규모는 모두 수치로 계산 가능하지만 국가나 개인의 역량은 수치로 계산이 불가능하다. 불과 40년 전 베트남전에서 압도적 화력의 프랑스나 미국이 무릎을 꿇고 손사래를 치며 도망쳐 나온 것을 보라. 절대로 회사적 기준으로 개인이나 국가를 보아서는 안된다. 하지만 반대로 기업을 개인이나 국가처럼 운용해서도 안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철저하게 계산적이어야 하고 비수익적인 것을 악으로 여겨야 한다. 그래야 기업은 하루 하루 살 수 있다. 물론 대규모 프로젝트를 위해 당장의 수익성을 유보하더라도 이는 더 큰 이익을 위한 유보일 따름이지 이익 자체를 부인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은 망해야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기업이 그 자리를 대신해 더욱 건강한 조직으로 소속 개인들의 역량을 신장시켜주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이런 개인의 존재적 가치증진과 기업의 이익증진에 부합되는 시스템을 계속적으로 개발해 공공서비스로 내놓아야 한다. 결국 목적은 각 개인의 존재가치의 증진이다. 기업이나 국가도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개인이기 때문이다. 추가로 본부장이 여기서 21세기에 더욱 조심해야 하는 대상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이 기업의 실체적 범위를 초월하는 법인이다. 국가는 기업뿐 아니라 이러한 초기업적 법인에 대한 감시와 혁신을 동시에 효과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초기업적 법인은 일부 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만 또 다른 개인의 존재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비인간적 존재가 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늘 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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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축의 시대(Axial Age)'란 제목으로 출판된, 카렌 암스트롱의 ‘The Great Transformation’

유럽기준으로 극동에서의 인도에 대한 집착도 만만치 않다. 7세기 당나라(중국) 현장법사가 손오공 일행들과 인도로 불경을 가지러 가는 내용을 담고 있는 ‘서유기’나 8세기 신라(대한민국)의 혜초 스님이 인도의 5국을 여행한 기행문인 ‘왕오천축국전’도 모두 인도에서 지혜를 찾겠다는 취지의 역사적 증거물들이었다. 인도는 동양의 예루살렘 같은 곳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잠깐 여기서 종교들의 기원을 살짝 만 살펴보자. 예루살렘이 유대교, 기독교, 이스람교의 성지인 것처럼 인도는 힌두교와 불교의 성지이다. 유대교와 힌두교가 모두 기원전 2000년 이상된 고대 종교이고 불교가 기독교와 비슷한 시기인 기원전 500년에 나온다. 니체가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입을 빌린 페르시아의 예언자 짜라투스트라가 창시한 조로아스터교나 중국의 유교도 이 때쯤이다. 이슬람교가 가장 최신 종교로 기원후 610년에 만들어 진다. 이 시기를 지구상에 여러 선지자들이 출현해 도덕적 기준과 궁극적 선을 이야기하는 ‘축의 시대(Axial Age)’라고도 한다. 야만적인 힘이 모든 것을 결정하던 시기를 도덕이란 것이 대체하는 시대적 전환점인 것이다. 일본은 동양에서 철학적 구도가 아닌 유럽처럼 풍요로움으로 인도를 접근한 나라이다. 19세기에 이미 아시아가 아니라 유럽으로 스스로 들어간 이유가 다 있다. 재미있는 것은 앞에 이야기한 유대인, 아랍인, 페르시아인(이란), 중국인 그리고 인도인은 종교도 만들었지만 상술로도 유명한 사람들이다. 한마디로 기(氣)가 무지 센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과 흥정하면 못 이긴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 것이다. 이중 유대인이 가장 파워풀한 건은 아마 최근 20세기 들어 현대 무신론적 실험 종교인 공산주의까지 만든 것을 봐도 납득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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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이 생각하는 깨끗함은 일반적인 것과는 조금 다르다. 힌두교의 최고 가치 ‘깨끗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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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인들이 개인적인 영혼과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갠지스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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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기반을 깨끗함에 두고 있는 것은 이슬람도 마찬가지. ‘Islamic cleanliness’

흔히들 인도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나라라고들 한다. 어딘들 한마디로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만은 인도가 가진 난해함은 좀 심하다. 본부장은 여러분에게 인도를 이해시킬 자신은 없다. 그러고 싶지도 않다. 본부장에게 인도는 도무지 물밑에 이해관계가 보이지 않기 나라이기 때문이다. 인과관계로 설명되지 않는 정의(定義) 또는 정의(正義)가 존재하는 나라라고 말하고 싶다. 흔히들 인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말하는 그들은 매우 관념적이면서도 현실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슬람교와 함께 힌두교를 품고 무한한 깨끗함을 지향하는 나라다. 이슬람교나 힌두교는 모두 더러움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을 안고 있는 종교이다. 냉전시대 정치가들이 세계를 제 1세계(서방), 제 2세계(러시아 및 공산주의), 제 3세계(비동맹주의)로 나눈 적이 있다. 자세히 보면 제 1세계는 유대및 기독교 그리고 자유 민주주의세계이다. 이는 원죄와 죄사함 그리고 심판이라는 종말적 세계관이나 인간이 개인적으로 완벽하지는 않아도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세계이다. 제 2세계는 무신론적 유물론 세계이다.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부터 꿈꾸어 온 인간의 치밀한 계산으로 만들고자 한 현실에 없는 이상적인 평등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세상이다. 지금은 제 1세계 보다 훨씬 불평등한 세계로 바뀌어 있지만 말이다. 제 3세계는 합리적 개인이나 완벽한 공동체 같은 게 아닌 지극히 개인적 깨끗함을 지향하는 세계이다. 이들은 극단적 행동이 주는 프로세스적 윤리관에 대해서는 큰 양심적 죄책감이 없으나 정신적이나 육체적으로 깨끗함을 저해하는 것에 대해서는 극도의 혐오감을 느낀다. 매우 금욕적이며 소탈하지만 자아의 깨끗함에 대한 도전을 받았다고 믿었을 때는 매우 호전적으로 변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몸에 안 좋은 모든 것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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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까지 3구역으로 나뉜 세계. 이슬람교와 힌두교 그리고 중남미는 ‘제 3 세계’

이들 제 3세계 국가들의 리더가 바로 인도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제 2세계와 3세계를 넘나들고 있지만 제 2세계로 보는 것이 현재까지는 맞다. 제 3세계는 비동맹국가들로서 지역 패권을 다투는 것에는 최우선 가치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제 1세계가 제 2세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는 것에 근원은 인간이 사회 시스템적으로 통일된 완벽함을 추구하려는 것에 대한 불신에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미 인류가 가진 불완정성을 인정하고 시작하는 체제인데 제 1세계에서는 공산주의나 파시즘이 이것에 어긋나는 부자연스러운 주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제 2세계가 제 3세계에 대해 약간 호의적인 것은 둘 다 완벽함에 대한 지향이 있다는 것이다. 다만 제 2세계는 공동체에 대한 것이 강하고 제 3세계는 다분이 개인적인 지향이 강한 것이 다르다. 따라서 1세계는 제 3세계도 그다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개인적인 깨끗함이라는 것이 실제 가능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더럽고 부족한 존재로 종교적으로는 유일신을 통해서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개인적으로는 프로세스적인 윤리관을 통한 분별력을 가짐으로써 깨끗해 질 수 있는 것인데 이것을 지극히 상징적이며 자의적인 프로세스에 의해 추구한다는 것에 논리적 타당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물론 제 3세계 종교인 이슬람교도 힌두교 또는 불교를 우상 숭배교로서 배격하고 있지만 제 1세계적 관점에서 보면 둘 다 마찬가지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정도만 하자. 종교는 서로 욕하자면 끝도 없다. 그래서 본부장은 종교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매우 조심스럽고 여러분들도 주의를 기울이길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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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쥘베른이 제시한 달 여행을 실행에 옮기는 JFK. 존 F 케네디가 1962년 라이스 대학 연설에서 제시한 ‘아폴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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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가상현실이 아닌 격이 다른 눈높이를 제시한 프랑스 작가 ‘쥘 베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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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예측되는 것이 아니다.

제목에 나오는 것처럼 21세기의 인도는 훌륭한 나라이지만 과거처럼 동서양을 막론하고 추구했던 풍요로움과 지혜를 의미하는 나라는 더 이상 아닐 것이다. 이미 그 옛날 인도를 동경하거나 추구했던 국가들은 오히려 풍요롭다. 아마 인도가 그들에게 주었던 것은 인도가 가진 풍요로움 자체가 아니라 풍요로움에 대한 지향점 또는 눈높이일지도 모른다. 인류 문명의 역사가 기껏 5000년이고 그중 지금 우리가 현재 동질감을 느끼는 문명이 2000년정도 되었다. 그 2000년 동안 항상 우리 인류에게 최근까지 지향점으로 남아주었던 존재가 바로 인도이다. 유럽인 최초로 인도를 지향한 알렉산더 대왕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인류의 정치, 경제적 리더들이 자신들의 지지자들에 제시했던 궁극의 모티베이션 말이다. 존 F 케네디가 1961년 아폴로 계획을 제시하기 전까지 인간에게 모티베이션은 언제나 지구 안에 있었고 그 대부분은 언제나 인도가 담당했었다. 인도가 인류에게 현실의 문제로 벗겨지면서 인류에게는 가장 큰 문제는 다음의 지향점이 어디냐는 것이었다. 인도가 인류의 모티베이션으로 그 자리를 내줄 때 쥘베른은 ‘해저 2만리’, ‘80일간의 세계일주’, ‘달나라 여행’, ‘지구속 여행’ 등으로 대안을 찾는 인류에게 또 다른 지향점을 문학 작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 인류는 베른이 제시한 모든 걸 살짝 훑어보고 이루나 싶더니 홀연 가상의 디지털 세상 안으로 들어가 육체를 넘어선 감각의 즐거움을 누릴 준비를 하고 있다. 본부장이 인도편에서 느끼는 열망, 진정한 바램은 우리 인류에게 또 다시 인도와 같은 모티베이션이 디지털 가상현실이 아닌 인류가 진짜 인간으로서 존재가치를 느낄 수 있는 이 3차원 리얼 세상에서 펼쳐지는 것이다. 인간은 절대 3차원을 넘어서는 안된다. 육체의 한계, 즉 시공의 한계를 초월해 다른 차원을 넘나들어가며 시도하는 모티베이션의 무가치함은 이미 2800년전 호머의 작품 ‘오딧세이’에 나오는 율리시스라는 그리이스인의 입을 빌려 인류의 조상들이 경고하고 있음을 우리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본부장은 우리 인류에게 새천년의 또 다른 인도가 하루 빨리 돌아오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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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기둥에 묶고 사이렌의 유혹을 버텨내는 율리시스는 감각의 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인류의 롤모델. 영국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율리시스와 사이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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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생명을 주겠다는 바다의 여신 칼립소의 제안을 뿌리치고 죽음으로 영원히 이름을 남기길 것을 결정하는 율리시스. 스위스 상징주의 화가 아르놀트 뵈클린의 ‘율리시스와 칼립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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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주제로 네개의 그림을 그린 아르놀트 뵈클린의 ‘망자(亡者)의 섬’. 후에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가 이 그림을 보고 작곡한 ‘The Isle of the Dead’ 음악이 눈에 보이는 듯 생생하다. 들어보기 바란다. Sergay Rachmaninov ‘The Isle of the D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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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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