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61)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12편 터키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후예, 터키 (1) 제국의 마지막 유산, 세계의 화약고 발칸과 아라비아 반도 그리고 터키요리

  • 입력 : 2017.06.02 15:44:01    수정 : 2017.06.02 16: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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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인으로 인도로 가는 무역로가 막혀, 스페인까지 찾아와 이사벨라 여왕앞에서 열변을 토하고 있는 <콜럼버스>

여러분이 상식을 알아둘 연도가 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1776년 미국 독립 선언, 1492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발견, 마지막으로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까지만 외워라. 그 밖에는 그때 그때 구글에서 찾아보면 된다. 오히려 너무 많이 알고 있으면 부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는 것에도 적절함을 유지해야 한다. 너무 많이 아는 척 절대 하지마라. 상류층일수록 아는 것 자랑 안한다. 하지만 위의 연도 정도를 모르면 무식한게 아니라 무성의한 거다. 인류가 현재의 시스템으로 살게 만든 전환점이 된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은 인간의 존엄성이란 개념을, 미국 독립은 자유 민주주의를, 아메리카의 발견은 상업자본의 시작을 마지막으로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은 유럽의 중심을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옮겨 놓았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시스템의 근원이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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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초 잠깐 번성하다 해금정책으로 바다길을 스스로 닫아버린 중국 <중국 명나라 정화 장군의 해상 진출>

물론 인류 역사는 끝없는 인과관계로 엮여있다. 하지만 유럽기준으로 보면, 중세를 끝맺고 근대로 가는 길목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오스만 투르크가 해주었던 것이다. 인도로 가는 길을 막고 지중해를 장악함으로서 말이다. 콜럼버스가 스페인 사람이 아니라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인 것도 인도로 가는 길이 막힌 이탈리아 상인들의 궁여지책을 보여준다. 그리스 로마시대 이후 근대까지 인류의 문명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경쟁하며 발전한다. 연대별로 보면 카르타고와 로마의 경쟁, 이슬람과 기독교의 경쟁, 그리고 유럽 도시 자본간의 경쟁이 대표적이다.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했듯이 인류 문명의 역사는 매우 짧다. 이 짧은 시간의 대부분이 지중해에서 만들어 진다. 본부장이 동양을 무시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동양은 바다에 대한 가치 자체를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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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후 아래 지도와 거의 비슷하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 시절 동로마 제국 영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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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절반과 아시아로 가는 무역로 독점으로 시대적 이니셔티브를 잡은 <오스만 투르크 제국>

오늘날의 터키는 예전 오스만 투르크의 영역에 비하면 매우 극소수 지역에 불과한다. 앞서 말한 지중해 연안의 절반을 차지했었고 지금의 발칸반도 국가인 루마니아, 불가리아, 세르비아뿐 아니라 헝가리까지 점령하고 서부유럽에서는 프랑스와 연합해서 신성로마제국을 위협했고 동쪽으로는 아리비아 반도 전역으로 걸프만을 경계로 이란을 마주보고 있었다. 하지만 계속 17세기 중후반을 정점으로 18세기 들어 서서히 쇠퇴하면서 지중해를 내주고 1830년 그리스를 시작으로 발칸반도와 1916년 사이크 피코 협정-영국과 프랑스의 아라비아반도 분할 비밀협정-으로 아라비아 반도도 내주었다. 오늘 상식 하나 이야기해주마. 여러분이 어릴적 학교에서 소아시아란 단어를 배웠을 것이다. 본부장도 이걸 들으면서 도대체 이게 어디 붙어있는 말인지 몰랐다. 그만큼 공교육에서 가르치는 역사나 지리공부가 너무 단편적인 낱말 위주였다는 이야기다. 바로 이 소아시아(Minor Asia)가 현재의 터키다. 지명은 아나톨리아 고원이라는데 따로 외울 필요없다. 소아시아라고 한 이유는 아시아 자체에 대한 개념을 지중해를 중심으로 생각했기때문이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가운데 두고 동쪽을 아시아 서쪽을 유럽으로 봤다. 다른 건 몰라도 다르다넬스 해협과 보스포러스 해협은 꼭 알아두어라. 아시아와 유럽을 나누는 경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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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도의 나라들을 유심히 보라. 화약고의 뇌관이 보인다. <발칸 반도의 국가들>

역사적으로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와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1세가 다 이 해협을 건너다니면서 서로 상대편을 엄청 고생시켰다. 알렉산더는 이 해협을 건너 페르시아를 정복하고 인도까지 진격한다. 지금으로부터 3100년 전으로 추정되는 트로이 전쟁도 다르다넬스 해협의 아시아쪽 해안에 붙어있다. 상식으로 알아둬라. 하긴 이 정도만 알아도 지리적 핵심은 다 아는거다. 쓸데없는 지명이니 어느 민족이니 무슨 어족이니 하는 것을 외우지마라.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은 터키의 핵심은 15세기 오스만 제국의 융성이 아니라 20세기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분쟁의 씨앗이다. 분쟁이란 항상 이해관계를 동반한다. 본부장이 누차 이야기하는 물밑의 이해관계 말이다. 영화 터치 오브 스파이스에 나오는 터키요리도 훌륭하지만 여러분이 터키에 대해 알아야 할 최우선 순위는 지구상에서 가장 군사적 충돌이 잦은 발칸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이다. 대부분은 이곳이 터키 영토였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터키 사람들이 괜히 역사를 자랑하고 다니는 게 아니다. 아주 먼 역사가 아니라 가장 근래까지 잘 나가던 이슬람 국가였다. 발칸반도 쪽에서 그리스 정교를 믿던 사람들은 터키에게 많은 박해를 받았다. 개종을 안하는 댓가로 많은 불이익을 받았던 것이다. 1990년대 피비린내 났던 유고 내전에서 인종 종교간 전쟁이 살벌했던 것도 다 오스만 제국의 흔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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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한 친목 단체같지만 모두가 번영하고자는 공감대로 뭉쳐진 신뢰가는 결속력 (아일랜드는 빼고) <영연방 국가들>

오스만 제국 400년은 대영 제국 400년과 다른 게 하나 있다. 모든 제국의 공통점은 모든 단위의 통일과 그것을 위한 기반시설 정비다. 제국 안에 있는 단위란 단위는 다 통일을 해야 한다. 기원전 있었던 제국인 페르시아도 유명한 다리우스 1세가 가장 먼저 한 것이 화폐와 도로의 정비였다. 예전 중학교시절 영어 수업시간에 '학문에는 왕도(王道)가 없다'라는 말을 들어 보았을 것이다. 그 왕도가 페르시아 다리우스 대왕이 만든 도로에서 나온 말이다. 4두 마차 두 대가 나란히 지날 수 있는 넓이와 완벽한 포장이 되어 있었다고 하니 9세기 스페인 코르도바의 가로등 아야기만큼 엄청나다. 정말 길 하나는 기가 막히게 닦아 놓아서 제국 내 어디를 가든 7일이면 갈 수 있게 했다고 한다. 나중에 로마제국 도로의 전형이 된다. 로마는 아예 도로에 마차의 너비의 홈을 파놓아 마차 바퀴의 규격까지 통일시켰다고 한다. 규격이 틀리면 아예 운행자체가 불가다. 잘 나가던 대영제국시절 연방국가들이 바다로 가로막혀 멀리 떨어져 있는 있던, 영국은 21세기인 현재도 영국 여왕을 국왕으로 모시는 16개국(UK포함)은 물론이고 전체 53개 영연방국가들이 모두 같은 언어는 물론이고 동일한 법체제와 제반 사회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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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식이란 것만큼 흔하지 않은 것도 없다.

여기에 비해 오스만 제국은 매우 느슨한 형태의 통치시스템을 운영하여 국가 안에 오늘날로 말하면 행정기구가 있고 또 따로 사회적 발언권이 있는 위원회나 혈연, 지연, 학연에 얽힌 각종 단체가 실질적인 법적 영향력과 동일한 기능을 하여왔다. 따라서 모든 사회의 제반 결정이 공동체 영역 안의 모든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양각색으로 그때 재량으로 처리되는 것이 다반사가 되어온 것이다. 역사라는 것도 결국 공동체 안 누군가의 시대에 대한 정의다. 그런데 그런 역사에 대한 기술을 스스로 할 수 있었던 자신감은 역사 기술자 자신이 이미 보편타당한 객관성을 가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헤로도 토스의 <역사>나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이런 사회 제도적 기준에 대한 상식적 합의가 존재하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사에서 국민이 책을 많이 보는 나라는 사회 면면히 보편적 상식이 강하게 뿌리내린 나라이고 반대로 그렇지 않은 나라는 그런 상식보다는 소단위 집단이나 개인의 재량에 좌지 우지 되는 경향이 매우 강하다. 따라서 본부장은 여러분이 책을 많이 안 읽는 이유를 정확히 알고 있다. 개인 및 공동체가 보편적 상식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아직 서있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개인을 탓할 수도 있겠지만 사회 공동체 전체의 책임이 매우 크다. 특히 공동체의 리더계층의 책임이 대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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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사이크 피코 조약'으로 영국대표 사이크와 프랑스 대표 피코가 자기들끼리 그어놔서 국경선이 반듯하다. 시끄럽기는 발칸 반도 못지 않은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

이것이 오스만 제국 치하에 있던, 앞서 말한 발칸반도와 아리비아 반도에 있던 나라들이 20세기 들어 세계의 화약고가 된 가장 큰 요인된다. 제국 통치기간에 통일된 가치판단 기준과 사회시스템 구축이 되었더라면 그 나라들은 아마 왠만한 선진국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과거 대영제국에 속해있던 나라들을 한번 보자. 캐나다, 호주, 인도와 같이 호의적이거나 아이랜드처럼 극도로 적대적이라도 지금은 세계 경제나 정치 또는 문화적 수준에서 대부분 상위권에 속해있다. 본부장은 개인적으로 터키와 터키 사람들을 매우 좋아한다. 특히 그들의 사람 냄새나는 관습이 참 푸근하다. 한마디로 화끈하게 도와주고 안아준다. 너무나도 멋진 나라다. 하지만 터키는 폴란드처럼 뛰어난 재능을 가진 국민이 주변 강대국의 규모가 워낙 비교우위라 어렵게시리 나라 하나 유지하기도 힘든 나라가 아니었다. 스스로 제국의 종주국으로서 책임을 가졌어야 했다는 것이다. 남의 나라였다면 모르지만 자신의 영역에 수많은 나라를 섭렵한 제국의 형태를 띠었다면 당연히 가져야할 책임감 말이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누군가를 리드해야 할 입장에 섰을 때는 그 책임에 맞게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개선시켜나가야 한다. 그리고 합쳐진 전체를 개선시키기 위한 시너지를 추구해야 한다. 그게 바로 종교나 인종과 상관없이 모두가 바라는 리더쉽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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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 벗겨내는 아픔을 스스로 겪어낼 자신이 있어야 리더다. <리더쉽과 팔로워십>

본부장이 말하는 '그룹핑 능력'이 실전형 인재의 첫 덕목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어야 전체 공공의 이익이 증진되는 것이다. 이 단어를 영국에서는 'Commonwealth'라고 하여 올리버 크롬웰이 영국 최초로 공화정이란 의미로 사용하였다. 이 단어는 나중에는 결국 영연방의 의미로 쓰여진다. 말 그대로 전체가 다 번영하기 위해 모인 집단이라는 것이다. 전체가 번영하기 위해서는 개인이나 작은 단체의 의견이 원활하게 발휘되면서도 결국 서로를 위한 타협이 아니라 전체를 위한 타협이 이루어져 최종적 합의까지 도출이 되는 공동체라야 한다. 여기서 전자인 서로를 위한 타협을 해온 공동체는 언제나 역사의 주도권을 잡을 수 없었다. 개별 구성원이 당장은 편리하지만 궁극적으로 각자를 약하게 만드는 타협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런 타협의 역사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면 제아무리 훌륭한 인격의 리더에 의해 창설된 공동체라도 개별 구성원과 함께 추락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후자를 바로 '혁신'라고 하는 것이다. 말뜻 그대로 껍데기를 벗기는 고통을 이겨내며 내일 더 발전하려는 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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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모델의 양성과 반복 재생산은 가장 확실한 승리 공식

본부장이 지난 독일 편에서 말했다. 독일 제3 제국이 설령 군사력의 우위로 유럽을 석권했다고 하더라도 유지는 못한다고 말이다. 시대에 맞는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본부장이 이토록 시대를 말하려고 하는 이유도 결국은 여러분들이 사는 이 3차원 리얼 세상의 공감대를 파악하게 만들기 위함이다. 독일이 만약 유럽을 제패해서 만의 하나의 가능성으로 어렵사리 제 3제국을 유지했다면 유럽 주요 국가들은 지금 발칸반도와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들처럼 되었을 것이다. 정말 이런 얘기를 하면 터키에게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역사는 결과로 책임지는 것이다. 현재 그 국가들의 모습이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리더쉽은 수학처럼 매우 클리어한 게임이다. 결과물이 명확하다. 항상 자신과 공동체의 혁신을 시도하는 것이 리더쉽이다. 예외는 전혀 없다. 재미있게도 비슷한 시기인 15세기 중후반에 서쪽 끝 이베리아 반도에는 스페인의 마지막 이슬람 왕조인 나스르 왕조가 스페인 리콩키스타(스페인국토수복운동)운동에 밀려 지브롤타를 건너 아프리카로 쫓겨갔고, 또 한편인 동쪽 끝 콘스탄티노플에서는 동로마가 멸망하고 또 다른 이슬람 왕조인 오스만 투르크가 들어서게 된 것은 모두 각기 다른 리더쉽의 우열에서 판가름 난 것이다. 하지만 이 각각의 기독교와 이슬람 제국은 그들이 거머쥔 시대적 이니셔티브를 그들이 통합한 전체 공동체 이익으로 끝내 만들지 못하고 말았다. 이 두 국가들이 스쳐간 남미, 발칸 그리고 아라비아 국가들은 한 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리더 국가로서 팔로워 국가들에게 일찍이 좀 더 합리적이고 모범적인 리더쉽의 롤모델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다. 스스로 확인 또 확인 하자. 'Common wealth'인가 'My wealth'인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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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스위스 로잔 협정으로 터키와 그리스사이 있었던 인구 교환이라는 역사적 헤프닝과 터키 요리를 소재로한 영화

본부장은 아까도 말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의 터키에 매우 호감을 느끼고 있다. 매년 가는 유럽 오페라 여행 중에 재작년에 갔던 독일 바이로이트 여행에서 나에게 푸근한 인간적 정을 느끼게 해준 터키 식당 주인이 지금도 생생하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내에는 식당이나 택시기사를 하는 터키인들이 정말 많다. 제 2차대전 때 많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내가 느낀 터키인들은 자존심이 매우 강하고 우직하다. 하지만 정이 정말 많아 음식을 정말 많이 퍼준다. 음식 퍼주는거 보면 그 나라를 알 수 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북부는 음식을 무슨 참새 모이만큼 준다. 야박하기 이를 때 없다. 반면에 독일이나 영국 그리고 러시아도 정말 넉넉하게 준다. 그들의 통 크기에 감동이다. 그런데 터키가 최고다. 거의 빅사이즈 미국보다 더 많이 준다.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이 있다. 한때는 제국이었다. 크게 한번 놀아봐서 그런지 손이 크다. 터키도 최근까지 제국을 경험한 나라였던 거다. 그리스 영화지만 터키의 음식문화를 면면히 보여주는 <터치 오브 스파이스>를 추천한다. 정말 터키에 가보고 싶게 만드는 영화다. 참고로 1922년 그리스 터키 전쟁 종결(국가 패망의 위기를 겪고 어렵게 터키 승리)로 스위스 로잔에서 협정을 체결하고 자국인구를 교환하는 해프닝이 영화의 역사적 모티브다. 주변에서 터키를 다녀오신 분들은 모두 대만족을 했다고 하니 인심 하나는 끝내주는 나라가 터키가 아닌가 싶다. 하지만 아직도 그리스와는 그다지 좋은 관계가 아니니 그리스 우호적인 이야기는 되도록 삼가하기 바란다. 최근까지 키프러스 섬이 이슈로 터키령인 북사이프러스 섬과 그리스 독립 세력이 점령중인 남키프러스 공화국으로 나뉘어 여전히 분쟁 지역이다. 서로 얘기 들어보면 모두 납득이 가지만 휘말지 말라는 거다. 본부장이 늘 얘기하듯이 이제는 국가가 아니라 도시의 시대다. 참고로 터키의 수도는 이스탄불이 아님을 알아둬라. 앙카라다. 1922년 제국이 무너지고 공화국이 되면서 바뀐거다. 그래도 이스탄불이 제일 큰 도시라고 하니 꼭 가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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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 음식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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