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관지 (一以貫之)

편향된 이념에 멍든 교육

  • 입력 : 2017.02.07 21:44:50    수정 : 2017.02.07 21:57:21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최근 우연히 중고등학생용 참고서에서 ‘대량생산의 문제점’이라는 제목의 단원을 보았다. 대량생산을 하는 초국가적 대기업이 소기업을 착취하여 영세 상인이나 서민이 희생된다는 논리였다. 문제점을 배운다면 당연히 ‘대량생산의 장점’도 기술되어 있어야 하는데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모든 역사적, 사회적, 경제적 현상은 다양한 장단점을 같이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단점 혹은 문제점만을 강조하며 편향된 교육을 한다면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요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유행어가 한창이지만, 인류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사건을 꼽으라면 나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이라고 하겠다. 인류가 누리는 모든 경제적인 풍요는 이 산업혁명으로부터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업혁명 이전과 이후는 인류 삶의 질적 혁신을 구분 짓는 분수령이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우리가 지금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의식주의 풍요를 전 세계 인구의 0.01%도 채 안 되는 특권층만이 누릴 수 있었다. 산업혁명으로 말미암아 비로소 사회의 대다수 평범한 대중이 경제적인 풍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산업혁명의 가장 중요한 기본 원리는 노동의 분화와 새로운 에너지인 증기기관의 활용이다. 이 둘의 결합은 규모의 경제를 통해 인류 역사상 최초로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하였고, 인류 삶의 질은 급속도로 향상되었다.

그러나 인류의 삶에 풍요를 가져다 준 산업혁명 또한 심각한 문제점을 일으켰다. 노동의 분화는 인간의 노동이 지니는 신성함을 훼손하게 되었고, 인간이 거대한 공장이나 기계의 일부로 전락하여 고독한 존재로 소외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는 결국 공산주의 이념의 태동에 단초를 제공하였다. 그러나, 인류는 인간의 소외와 경제적인 풍요를 맞바꿀 수 없었다. 인류는 경제적인 효율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노동의 신성함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였고, 그 결과 현대 경영학은 인간 존중과 원활한 의사소통이 기업 경쟁력의 원천이라는 이론적이고 실증적인 원리를 발전시켰다.

대량생산의 문제점을 지적하려면, 대량생산이 인류 발전에 어떠한 공헌을 하였는지를 먼저 논의하고 이해해야만 한다. 무조건 대량생산과 대기업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불어넣어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인가? 올바른 길은 규모의 경제를 통한 대량생산이 인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동시에 인간 중심의 기업문화가 발전할 수 있도록 이론적 연구와 실천을 병행하는 것이다.

혹자는 4차 산업혁명에 의해 대량생산은 무의미해지고 대량고객화(mass customization)가 도래할 것이라 한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가 지니는 한계와 단점 또한 명확하다. 예를 들어, 3D 프린터로 스마트폰을 만들 수 있겠지만, 제조 비용은 삼성전자나 애플과 같은 대기업 원가의 수십 내지 수백 배에 달할 수 있다. 어떠한 경우에도, 4차 산업혁명이 대량생산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 둘은 서로에게 중요한 보완적 역할을 해야만 한다.

누군가가 대량생산의 본질을 왜곡하여, 대기업에 대한 부정적인 선입견을 심어주고자 한다면 이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서로를 죽여야 하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이 있고, 마찬가지로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것과 대기업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 동시에 존재한다. 핵심은 대기업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살리고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더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존중의 상호 발전이다. 이것이 대한민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유일한 길이다.

자신의 불완전한 지식을 편향된 이념과 결합하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증오의 선입견을 심어 넣으려고 하는 세력이 있다고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혹시라도 그러한 의도를 지닌 자가 있다면, 세상을 넓게 보고 자신의 편협한 지식의 한계를 극복하기 바란다.

[김보원 카이스트 교수]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