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4)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부자(富者)란 무엇인가(5) 희소성(稀少性)과 대중성(大衆性)을 겸비하라

  • 입력 : 2018.02.05 10:33:45    수정 : 2018.02.05 20: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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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적인 실수로 최고의 위치에서 아버지 보탄으로 부터 내쳐지는 발퀴리 중 아홉번째 딸 ‘브릔힐데’ 사진출처:구글



전세계적인 열광적 마니아층을 가지고 있는 독일의 근대 오페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인간은 권력과 사랑,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즉 사랑과 야망의 딜레마 말이다. 80년대 드라마 제목으로 쓰였을 법한 문구다. 사랑을 선택하면 권력을 내놓아야 하고 권력을 선택하면 사랑을 내놓아야 하는 딜레마 말이다. 하지만 ‘발퀴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등의 작품을 보면 대부분 그가 말한 것의 반대로 순차적 해피엔딩(한번은 야망으로 한번은 사랑으로) 끝을 낸다. 동시에 이루어지지는 않지만 결국 두 가지의 성공을 보고 싶었을 것이다. 오페라 ‘발퀴레’에선 무자비한 전쟁의 여신이자 최고의 신 보탄(북유럽의 제우스)의 막내 딸인 브릔휠데와 영웅 지크프리트와의 숙명적 사랑을 이야기하며 아버지의 총애를 받던 9번째 발퀴레가 사소한 실수로 버림받았다가 영웅 지크프리트를 만나 사랑의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는 지칠 줄 모르는 야망에 대한 저주로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바다를 떠돌아야 하는 운명에 빠졌다가 7년에 한번 뭍에 올라 자신을 사랑해주는 여자, 젠타의 헌신적 선택을 받아 사랑으로 구원받는다는 내용이다.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후에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유령선 '프라잉 더치맨'의 주요 모티브가 된다. 여러분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다. 사회적인 성공을 위해서는 개인적인 사랑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특히 부(富)를 이루기 위해서는 정략결혼을 하든 아니면 연애와는 담을 쌓고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것으로 말이다. 세계최초로 아카데미상과 노벨상을 모두 받은 19세기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는 성공은 냉혈한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만큼 여러분이 알고 있는 부자와 실제와는 많은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본부장이 보기에 가장 안타까운 말은 경제적 성공을 위해 결혼이나 사랑을 미룬다는 청년들의 말이다. 흔히들 하는 말이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결코 그 말을 지키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말을 한 사람의 결말은 보통 자신들의 소중한 청춘을 다 소진하고 나이든 중년의 시기를 홀로 맞이한다. 보통은 돈이 없이 말이다. 대부분 그토록 부을 거머쥐겠다고 사랑이나 결혼까지 포기해가며 무엇을 했나 후회를 한다. 요즘은 부모님들도 그런 자제들을 말리지 않는 추세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자식이기도 하겠지만 남들에게 보이기에 멋지게 결혼을 시키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마음은 이해하지만 절대 그래서는 안 된다. 세월은 완성된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또한 더 명심해야 할 것은 사랑과 결혼은 즐기거나 안식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운명적인 고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행위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에 문제시되는 결혼이나 출산 기피현상은 그러한 전형적인 접근방식의 오류에서 나오는 문제이다. 영화 ‘매트릭스’ 에서 인류가 빨간 알약을 먹고 리얼한 세상을 사는 것을 마다하고 파란 알약을 먹고 거짓된 삶을 선택하는 이유는 삶의 진정한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인생은 부자가 되거나 크나 큰 권력을 거머쥐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내게 주어진 삶을 감사히 살아 내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에는 저마다 가진 가치가 있다고 본부장은 굳게 믿고 있다. 여러분에게 그런 가치를 제대로 보게 하기 위해 지금껏 ‘본부장이 말한다’시리즈를 집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본 수많은 부자들을 종합해보면 그 모양새나 취향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그 중에서 무엇보다도 일관된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만의 사랑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밀고 나간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행운은 못생긴 얼굴로 찾아온 미녀라고 했다. 자신의 진실한 사랑의 감정을 믿고 눈에 콩깍지가 덮여 선택한, 남이 보기엔 못생긴 얼굴의 그녀도 나중에 보면 나의 인생 및 경제적 성공에 둘도 없는 역할을 하는 복덩이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런 인생의 선택에 감사해하며 남은 인생을 잘 살아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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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 역사마저 평면으로 담아내는 다차원적 눈을 가진 피카소의 ‘게르니카’ 사진출처:구글



부의 성취는 절대 2차원적 산술 공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반드시 3차원적 기하 공식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3차원적 기하공식이란 보이지 않는 면을 반드시 생각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을 계기로 인간의 머리는 3차원을 넘어 다차원에 가까워졌다. 하지만 아직 인간의 눈은 2차원적이다. 아무리 3차원 도형이라도 인간의 눈에 보이는 부분은 평면으로 보이게 된다. 우리가 지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방법은 인공위성에서 보는 우주만원경이 아니라 메르카토르 도법을 이용한 평면 지도뿐이다. 전체를 보고 가늠할 수 없는 지도는 실제적 사용에 있어서는 무의미하다. 그래서 영화에서 보면 지구본을 보고 항로를 결정하지 않는 것이다. 스티브잡스의 아이폰이 성공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잡스가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이 입체가 아니라 면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류의 머리를 다시 2차원적 평면으로 돌려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 장의 엷은 면으로도 우리는 지금 세계를 굽어보고 있는 것이다. 반대로 한쪽 면에서 보면 못 생겨 보이는 것이 입체로 보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가정을 보여주는 미술사조가 바로 파블로 피카소가 창시한 입체파다. 피카소의 그림이 인정을 받게 된 이유는 어찌 보면 아인슈타인 덕분이다. 19세기말 20세기초의 포스트 모더니즘의 핵심은 우리가 보는 현실세계가 과연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한 고찰이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다. 대중들이 느끼는 그 무엇인가의 불명확한 실체를 그저 간단한 용어로 명확하게 정의해준 대가(代價)로 그는 자신은 물론 누구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이론으로 세계적인 스타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이론에 예술적으로 부응한 대표적인 사람이 파블로 피카소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그런 시각에 대한 정확한 정의(定義)다. 야수파의 앙리 마티스 또한 그런 맥락에서는 같고 오히려 예술적 가치는 더 한층 깊음에도 이름을 입체파로 짓지 않았기에 영원한 라이벌이라고 하지만 마치 피카소에 버금가는 화가처럼 되어버렸다. 초현실주의의 살바토레 달리 또한 실력에 못지않은 자신만의 시각적 정의(定義)에 대한 선점으로 과분한 인기를 누렸다. 그만큼 이름 즉 캐치프레이즈의 선점은 매우 중요하다. 여러분들도 향후 이점을 꼭 가슴에 새기고 살기 바란다. 사조나 유행은 언제라도 변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먼저 선점하고 길러온 자신만의 캐치프레이즈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인생에서 한번은 성공한다. 인생은 원래 한번 이상 성공하기 쉽지 않다. 자신의 명운을 어디에 두느냐는 각자 개인적 선택의 몫이다. 본부장도 이 부분은 선뜻 정의하기가 힘들다. 다만 웬만하면 20대는 40대처럼 살고 40대는 20대처럼 살기를 당부한다. 20대에 성공한 사람도 40대에 와서는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을 수 있고 40대에 성공하더라도 60대까지 성공을 유지하고 있을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평생을 실패의 리스크가 없이 사는 방법이 바로 앞서 말한 ‘2040,4020’의 방식이다. 검성 미야모토 무사시의 말처럼 '내가 쥐고 있는 칼 때문에 이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움직이는 박자 때문에 이기는 것이다'라는 말은 실로 명언이다. 박자를 잡아내는 방법에는 스스로를 정의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스스로를 정의하기 싫은 사람은 결국 어떠한 시도도 할 수가 없다. 그를 움직이는 생의 박자가 없기 때문이다. 피카소가 입체파를 정의했을 때 사람들이 비록 처음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음은 자명하다. 8살짜리 그림을 그리기 위해 60세까지 그림을 그려왔다라는 그의 말처럼,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림을 그려놓고 걸작을 그려놓은 것처럼 그가 행동했던 이유는 자신이 선택한 캐치프레이즈, 즉 정의(定義)에 대한 지극한 예(禮)를 다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평생 5만점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그 중 대부분이 입체파라는 스스로의 기준에 따라 그린 그림들이다. 대충 계산해봐도 하루도 쉬지 않고 그려도 불가능해 보이는 작품의 수이다. 피카소가 자신이 선택한 시각의 정의(定義)에 대해 얼마나 진정성 있는 자세를 보였는지 느껴지는 부분이다. 그리고 그가 그런 확고한 자세를 보였기에 그는 남이 보지 못하는 또 다른 면을 생각하며 3차원의 입체(立體)를 2차원의 면(面)으로 하얀 도화지의 여백을 채워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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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과 대중성이라는 양 날개를 겸비하고 양손이 비어있는 자만이 갈 수 있는 길 ‘부자(富者)의 길’ 사진출처:구글



‘부자의 길’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신의 저주를 받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나 발퀴레가 겪은 고난의 근원은 보이는 대로 행했기 때문이다. 본부장은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실전형 인재의 첫번째 스탭으로 미리 보는 사람이 될 것을 당부했다. 미리 보는 사람은 지금 보는 사람이 겪어야 할 혼란을 겪지 않기 때문이다.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만든 해양지도는 이미 수많은 탐험가들이 미리 본 세계의 모습이다. 그 지도가 있었기에 오늘날 세계는 실로 하나가 될 수 있었고 60억 인구가 조금이나마 부의 평균을 향해 달려갈 수 있었다. 물론 세계화의 공과(功過)에 대한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말이다. '디지털화'와 '글로벌화' 그리고 '도시화'로 요즘은 필수적으로 느껴지는 '실시간'이라는 본능적 유혹은 우리에게 분별력의 부재라는 저주를 남겼다. 19세기 빅토리아 시절 영국 신사들이 무언클럽에 혼자 앉아 미지근한 위스키에 시원한 얼음을 넣어주려는 노집사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한 이유는 조금이라도 현실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분별력을 흐트리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다고 실시간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는 없다. 부자의 길은 한쪽으로는 '희소성'이란 날개를 그리고 또 한쪽으로는 '대중성'란 날개를 펴고 양손이 비어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길이다. 여기서 ‘희소성’이 바로 자신만이 선택한 사랑에 대한 정의(定義)고 ‘대중성’이 바로 세상에 대한 야망의 표출이다. 한 쪽의 날개만 가지고는 절대 정확한 방향을 유지할 수 없다. 자신만의 사랑의 대상이 절대 돈이나 권력 같은 야망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한쪽 날개가 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반드시 사랑을 선택하고 그 사랑을 위해 시간과 돈 그리고 정열을 쏟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라.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나중에 인생을 후회하는 자의 대부분은 자신의 시간을 헛되게 쓴 것에 대한 부분이 가장 크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더 크다. 그 시간의 낭비나 시도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는 대부분 자신만의 사랑이 없었던 것에 대한 한탄이다. 본부장은 이 사랑의 대상이 꼭 이성(異性)이라고는 말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도 않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는 부자는 불행하다. 본인 스스로 뿐 아니라 주의의 사람들 누구도 그러한 상태를 높게 평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행복하고 불행하고는 모두 함께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결정 난다. 부자가 되고 싶은 이유도 ‘스스로의 만족’ 그리고 ‘관계의 만족’ 이 둘을 모두 얻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여러분이 진정 부자의 길로 들어서서 삶의 끝까지 그 길을 통해 나오고 싶다면 희소성과 대중성의 날개를 절대 명심하길 바란다. 성공이 냉혈한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한 버나드 쇼는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상의 명예와 부를 거머쥐고90세가 넘게 살다 죽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묘비명에 써달라고 한 말이 지금도 세상에 회자된다. '우울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라는 쇼의 비명(碑銘)은 사실 그의 진실된 비명(悲鳴)일 것이다. 인생은 먼저 잡는 자가 임자라는 말은 그래서 나오는 것이다. 본부장이 말한 ‘2040,4020’은 젊은 여러분이 사랑과 야망을 모두 거머쥐고 진정 후회 없는 부자의 길을 가길 바라는 본부장이 여러분을 위해 드리는 '승자(勝者)의 화수분(河水盆)(원래는 진시황 설화에 나오는 하수분(河水盆)의 변형이다)'임을 꼭 명심하길 바란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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