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그립거나 다행이다'

장독대에는 별이 있고 이야기가 있었다.

  • 입력 : 2018.12.05 13:06:24    수정 : 2018.12.05 1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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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경주에 가서 첨성대를 보았다. 가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높이도 낮고 그저 굴뚝같이 생긴 탑이었다. 그런 데서 무슨 별을 관찰했는지 의아하다. 게다가 별을 관찰하려면 깜깜한 산중에, 그것도 높은 산꼭대기에 세워놓아야 하지 않을까? 왜 평지에다 만들어놓았을까?

그 당시 환경을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되었다. 이 첨성대에서 별을 관찰하던 시기에는 전기가 없었다. 밤에는 네온사인이나 가로등 불빛이 없었으니 어디에 세워놓아도 다 같은 조건으로 깜깜했던 것이다. 게다가 산꼭대기나 평지나 별과의 거리를 생각하면 별 차이가 없다.

몇 년 전 방영되었던 ‘응답하라 1988’에서 인상 깊은 장면이 있었다. 남자 주인공이 형과 장독대에서 밤하늘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머리 위의 밤하늘에는 별이 총총 빛나고 있었다.

드라마를 보며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그 당시 여름밤이면 식구들과 장독대에 돗자리를 깔고 누워서 밤이슬을 맞아가며 대화를 나누곤 했다. 그 때 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빛나곤 했다. 무척 아름다웠다. 망원경 하나 없이도 자신의 자태를 아낌없이 드러내던 별들. 그 당시 장독대는 가정 보급형 천문대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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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장독대와 마당 높이는 별 차이가 없었다. 대신 마당에는 등나무에서 이어진 덩굴과 나뭇잎 차양이 뒤 덮고 있었다. 마당에는 하늘을 볼 공간이 없었던 셈이다. 사실 우리 집에서 가장 높은 곳은 지붕이었다. 하지만 오르기 힘드니 장독대에 올라서 별을 본 것이다.

장독대에 올라 별을 보던 습관 때문인가? 어린 내게 장독대에 오르는 계단은 마치 천국으로 오르는 계단 같았다. 하늘을 하나 가득 품을 수 있고 별을 바라보던 공간.

그 장독대는 계단 하나가 꽤 높았던 걸로 기억된다. 바로 밑의 여동생은 남자 아이 못지않은 개구쟁이였다. 동생은 장독대 계단을 일찌감치 오르내렸는데 심지어 두 계단을 한꺼번에 뛰어내리기도 했다. 보기만 해도 아찔했다. 나에게는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어릴 적 장독대 계단에 대한 공포에서 시작된 게 아닌가 한다.

그 동생은 나중에 이층집으로 이사 가게 되었을 땐 이층 옥상 가장자리를 양팔 벌리고 걷기도 했다. 나는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그렇게 높은 곳을 곧잘 오르던 동생은 진짜로 높은 곳에 가고 싶었다보다. 젊은 나이에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어릴 때 이가 빠지면 그 이를 지붕으로 던지던 곳도 장독대이다. 빠진 이를 그 이빨의 주인이 들고 장독대에 올라간다. 그리고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다. 헌 이빨은 갖고 새 이빨을 달라고.

요즘은 장독대의 주인공인 장독이 사라졌다. 장도 직접 담가먹는 사람이 드물다. 장독대의 사라짐은 이렇듯 과거 물건의 연쇄적 퇴장으로 인한 결과이다.

가끔은 그 장독대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버리고 싶은 것들을 지붕 위로 휙 던져버리게 말이다. 그리고 밤에는 하늘의 별을 보며 소원을 비는 것이다. 나에게 튼튼한 것들이 새로 돋아나기를. 그 장독대에서 빌면 진짜로 이루어질 것 같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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