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당신의 인상을 인상하라!’

영화 ‘오두막’에서 본 비극의 유용한 기능

  • 입력 : 2018.11.09 11:13:36    수정 : 2018.11.09 13:5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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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무릎 통증이 있다. 이 통증에는 ‘천연 체중계’라고 애칭까지 붙여 놓았다. 왜냐하면 내 체중이 일정 눈금 이상 넘어설 때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때문이다. 마치 경고등처럼 ‘삐오~삐오~ ’울린다. “주인님, 요즘 과식하시나 봐요? 하긴 가을에는 식욕이 늘긴 하죠. 하지만 선을 넘으셨어요. 조금만 자제해 주세요. 이 무릎도 생각해 주셔야죠.”

무릎의 엄살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거나 식사량을 줄이는 건 결과적으로 성인병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무릎 통증은 나에게 악일까, 선일까? 아님, 다른 말로 고난일까, 축복일까?

영화 ‘오두막’을 보았다. 어느 목사님이 쓴 소설을 영화로 만든 건데 종교적인 내용이라 비종교인에게 조금 난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흐르는 주제가 일반적인 선과 악에 대해 말하는 거라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령님이 주인공을 데리고 정글에 가서 나무 뿌리를 캐내는 장면이 있다. 거기서 성령으로 분한 하나님은 말한다. “이 독뿌리는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특정한 꽃의 향을 만나면 해독제가 되기에 유용한 것이다.” 흔히 악이라고 지칭하는 것들이 실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으로 승화될 수 있다니.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했을 때 상사가 호락호락하고 인간적인 게 좋을까? 아니면 깐깐하고 잔소릴 많이 하는 게 좋을까? 누구나 인간적인 상사가 좋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오래전에 디자인 회사에 다닐 때 이야기다. 그 회사에는 경리로 일하는 아가씨가 있었다. 그 여직원은 회사를 마치 자기 집처럼 생각했다. 조금만 힘들어도 울고 앙탈을 부렸다. 그러면 우리가 나서서 달래주어야 했다. 걸핏하면 아프다고 하면서 회사를 빠지기 일쑤였고 자기가 싫어하는 직원에게는 전화도 바꿔주지 않았다. 그러면 업무에 차질이 생기니 다들 그 직원에게 굽신거렸다. 그 여직원의 업무가 사무 보조였는데도 말이다. 결국 보다 못한 사장님이 그 직원을 내보내고 말았다.

그 직원이 하던 말이 기억난다. 자기는 이 회사가 두 번째인데 너무 힘들다고. 우리는 기가 막혔다. 우리가 그 직원을 떠받들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그 직원이 하는 말을 들어 보니 이해를 할 수 있었다. 전에는 작은 개인 회사에 다녔는데 사장님이 자기를 마치 딸처럼 대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본래 업무인 은행 일도 시키지 않고 간단한 전화 응대나 서류 정리만 시킨 것. 일을 배울 기회가 없었던 셈이다.

반면 후임으로 들어온 직원은 달랐다. 오히려 우리 회사 일이 너무 간단해서 월급을 받기가 미안할 정도라고 했다. 회사 분위기도 가족 같아서 좋다는 것이다. 그 전 직장은 일이 많고 엄격한 분위기라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고. 이렇게 배운 일은 나중에 회사생활을 편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반면에 우리 회사에서 나간 직원은 그 뒤로 직장생활을 그만두었다고 한다. 첫 사회생활이 너무 편했던지 그 뒤로는 적응을 하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행복에 대해 갖는 오해가 있다. 아무리 잘못 해도 모두들 나에게 잘 해주고, 아무리 무리를 해도 건강에 이상이 없는 것이 행복이라고. 알고 보면, 실수하면 꾸짖고 피곤함을 무시하고 일하면 몸살이 나고, 남의 신의를 저버리면 미움을 받아야 내가 선을 넘지 않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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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픽사베이



그렇다고 일부러 비극을 만들 필요까지는 없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이 세상에는 악과 부조리가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대신 그 비극에 맞는 특정한 꽃의 향이 될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되면 유용한 해독제가 되어 세상을 이롭게 하고 보람 있는 삶의 주인공이 된다.

영화 ‘오두막’에서 주인공은 사랑하던 막내딸을 잃고 비극에 잠겨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인 ‘파파’를 만나고 나서는 가족과의 사랑을 회복하고 자신의 불우했던 어린 시절까지 치유하게 된다. 그 후엔 어떻게 살았을까? 짐작컨대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모임을 만들어 봉사하지 않았을까 한다. 인간 해독제가 되어 이 세상을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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