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떠나는 사색의 샛길

지금 가는 길이 너의 길!

  • 입력 : 2018.11.07 14:17:07    수정 : 2018.11.07 19:3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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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주는 아이’ 모모에게는 ‘말 없는 노인’과 ‘말 잘 하는 청년’이라는 가장 친한 친구들이 있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 속에서 조용히 내 마음에 들어와 오래도록 머문 도로 청소부 베포. 원형극장 근처 오두막집에 살고 있는 그는 유난히 작은 키를 지닌 구부정한 모습의 노인이다. 어찌나 과묵하고 신중한지 누군가 질문을 하면 곰곰이 생각하다 하루가 흐른 후에 대답을 하기도 한다.

“한꺼번에 도로 전체를 생각해서는 안 돼, 알겠니?

다음에 딛게 될 걸음, 다음에 쉬게 될 호흡,

다음에 하게 될 비질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계속해서 바로 다음 일만 생각해야 하는 거야.”



“한 걸음 한 걸음 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긴 길을 다 쓸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모르겠고, 숨이 차지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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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lexjones, 출처 Unsplash



인간의 모든 불행은 의도적인, 혹은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거짓말에 의해 생겨나는데, 그것은 급하게 서두르며 철저하지 못함이라고 믿고 있는 도로 위의 철학자. 자신만의 소신으로 단단한 그는 시간을 빼앗아 가는 회색신사들에게 아이들만큼 무척이나 해결하기 어려운 대상이었다. 결국 그를 자신들의 잿빛 세상으로 끌어 들이기 위해 회색신사들은 사랑하는 친구 모모의 몸값으로 10만 시간의 저축을 요구한다. 시간을 벌기 위해 성급한 비질을 하기 시작한 베포. 사라진 친구를 되찾기 위해 자신의 신념조차 괴로움과 맞바꾸는 그의 모습은 그 누구보다 아름답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로지 현재의 할 일을 향해 묵묵한 발걸음을 딛지만, 타인을 위해서는 자신의 철학을 잠시 접어 둘 수 있는 베포에게서 현자의 모습을 본다. 내가 가야 할 먼 길의 끝을 자꾸 바라보면 지금 해야 할 일이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것을 이미 그는 무수한 비질을 통해 몸소 깨닫게 되지 않았을까.

도대체 이 버거운 일상이 언제 끝날지 무거운 한숨만 내쉰다면 끝없이 이어지는 우울한 현재는 결국 불행한 삶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버티기 힘든 시간을 겪고 있더라도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 비록 작은 것이나마 그것에 몰두해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숨을 쉴 수 있다. 그렇게 모인 작은 걸음이 어느 순간 커다란 언덕을 넘게 했음을, 그리하여 자신의 삶이 조금은 단단하게 성장했음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어제와 다를 것 없이 무료하고 찌든 일상에서도 자신만의 빛을 비출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을 베포의 도로 위에서 배운다. 언제나 과묵한 그가 충분히 잘 해내고 있다고, ‘지금 가는 길이 너의 길’이라고 말없는 눈길로 토닥여 주는 듯하다.

[유재은 작가/글쓰기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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