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그립거나 다행이다'

환한 미소를 내 안에-마치 자전거처럼!

  • 입력 : 2018.10.11 11:15:44    수정 : 2018.10.11 17:5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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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픽사베이



상해에서 사업을 할 때 자전거를 처음 배웠다. 중국 사람들은 가까운 거리를 자전거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다들 어릴 때부터 자전거를 탈 줄 알았다. 하지만 어릴 때 자전거를 배워 본 적이 없고 운동 신경이 없는 나는 자전거를 배우는데 한참 걸렸다. 남편이 부인에게 운전을 가르쳐주다가 이혼하는 부부가 많다더니 자전거도 마찬가지였다. 남편이 나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면서 부부싸움을 하게 되었다.

결국 한족직원과 조선족 직원들이 번갈아가면서 가르쳐 주게 되었다. 나는 가르치는 대로 따라하지 못하고 겁도 많아서 진도가 나가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러나 다들 참을성이 많아서 나를 붙잡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 중에서도 가장 잘 가르쳐준 건 한족 남자 직원이었다. 그 직원은 나에게 엄격한 교사처럼 굴었다. 다들 친절하게 대해주니 내가 어린애처럼 엄살을 부렸는데 이 직원은 나를 막 나무라는 것이었다. 무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제법 혼을 내기도 했다. 발을 페달에서 자꾸 놓아버리면 어떡하느냐? 왜 정지할 때 핸들을 사용하지 않느냐? 핸들을 왜 자꾸 꺾느냐? 하면서. 다른 직원이 가르쳐준다고 해도 자기가 나서서 나를 가르쳐주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실력이 늘었나보다.

그가 자전거를 뒤에서 붙잡아 주어야 겨우 앞으로 조금씩 나가곤 했는데, 어느 순간 제법 속력이 붙는 것이었다. 한참 신나게 달리다가 우연히 뒤를 바라보았는데, 그가 저 멀리서 활짝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는 게 아닌가? 아무도 붙잡아주지 않고 나 혼자서 달렸다니.

그렇다. 어느새 나는 자전거를 혼자 탈수 있게 된 것이었다.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까지는 그 직원의 꼼꼼한 지도와 과학적인 설명이 있었고 엄격한 훈련을 거듭했다. 그러자 어느 순간 자전거가 내 몸 안으로 들어왔다.

그 후로는 따로 배우지 않아도 자전거를 탈 수가 있었다. 몸으로 익힌 것은 완전히 내 것이 되는가 보다. 수영이나 자전거 같은 기술은 한번 배워놓으면 평생 써먹는다고 한다.

인생에 있어서 좋은 기술들도 이렇게 몸에 배게 하면 어떨까? 가령 미소 짓는 표정 말이다.

평생 제대로 된 미소한 번 짓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 췌장암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내 동생도 그랬다. 동생은 평생 스트레스 속에 살았다. 내 기억 속에는 적어도 동생의 환한 웃음이 남아있지 않다. 평소 인상 쓰는 습관이 암과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도 해 본다.

내 마음대로 되는 게 별로 없는 인생이다. 그 중 적어도 내 얼굴만은 나만의 영역이다. 이 영역은 그 누구도 함부로 침범하거나 명령을 내릴 수가 없다. 그 누구도 내 얼굴이 맘에 안 든다고 성형을 강요할 수도 없다.

자유가 허락된 내 얼굴이지만 내가 그 자유를 방치하곤 한다. 즉 내 얼굴을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지 못한다. 잔디밭도 그냥 방치하면 잡초가 우거지듯이 우리 얼굴도 그렇다. 의식하지 않으면 그저 그런 나쁜 인상의 주인공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의 인상도 마치 자전거를 배우듯 하면 어떨까? 내 마음을 공부하고 미소 짓는 습관을 들이는 것, 이는 처음엔 어색하고 귀찮지만 한 번 몸에 배고 나면 평생 써먹을 수가 있다. 마치 자전거처럼.

그러면 나는 물론이고 누구나 내 얼굴을 보고 행복해 할 것이다. 꼭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 나만의 행복을 가꿀 수만 있다면. 무엇보다 길거리에서 눈이 마주치는 사람을 보고 방긋 미소 짓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가 더욱 아름다워지지 않을까? 돈이 많지 않아도, 화려한 스펙이 없어도, 누구나 존중받고 누구나 행복한 나라, ‘스마일, 코리아!’를 조용히 외쳐본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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