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의 아트칼럼

[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 上 예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 : 영국 대처정부 전과 후

  • 입력 : 2018.09.13 10:51:07    수정 : 2018.09.13 17:5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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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Wikipedia / [Oberon, Titania and Puck with Fairies Dancing -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86



국가 차원에서 예술을 지원하고 발전시킨 대표적 사례로 영국정부를 필자는 꼽고 싶다.

20세기 영국의 예술 분야에 대한 국가 정책과 지원은 1979년 마거릿 대처(Magaret Thatcher)정부의 등장과 함께 크게 변모하였다. 정부가 복지국가 설립이라는 이념 아래 대처 정부 이전과 이후, 예술 분야에 대한 국가의 관여의 근본적인 차이가 만들어진다. 대중의 복리 증진을 위한 공공 서비스 분야와 산업의 국영화를 진행하면서 교육과 문화 분야 또한 경제적으로 지원하게 된 것이다.

영국은 국가를 위한 교육기관으로써 국립 미술기관을 설립하는데, 1759년 런던의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이 그것이다. 대영박물관은 현재까지도 고등 교육을 받고, 예술에 관심이 있는 국민뿐만 아니라 모든 이들이 영국의 국가 문화유산을 향유할 수 있는 장소로 남아있다. 이러한 국립 미술관·박물관은 국민들의 도덕과 애국심을 높이고, 다른 나라로 하여금 존경과 경의를 받으며, 국민들은 지적이고 덕망 높은 감각을 기르는 역할을 톡톡히 하였다.

영국에서 국가가 미술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전통은 대영박물관의 건립을 통해서 시작되었고, 국가의 재산으로 국민의 교육이라는 공공의 목적을 이룬다. 대영박물관의 건립 목적은 생겨나는 다른 국립미술관들에게도 적용됐으며 예술에 대한 국가의 재정적 지원을 합리화했다.

이후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1830년대, 낮은 계층의 국민의 교육에 대한 논의가 가장 뜨거워졌다. 18세기 초반까지 산업가들이 미술을 비경제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후원을 기피하였다. 미술에 대한 대중의 다소 냉소적인 태도는 이때의 자본주의 발전과 함께 자란 듯하다.

산업혁명 이후 사업가들은 노동의 효율을 올리고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기 위해 생산적인 것 외에 예술과 같은 것은 시간을 낭비한다고 경멸하였고, 힘든 노동과 원칙을 강조하면서 노동자들로 하여금 자연히 미술에 대해 적의를 가지도록 하였다. 이는 국가의 예술에 대한 지원을 어렵게 하였고, 대중도 미술에 있어 보편적인 것이라 보기보다는 어렵고 엘리트주의적인 산물이라 여기게 되었다.

그러나 18세기 중반부터 과학과 기술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 ‘유용한 지식’에 대한 요구가 증가하기 시작한다. 특히 제조업자들이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아름다운 디자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위해선 미술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유럽국가들 간의 시장경쟁에서 여실히 느끼게 된다.

정치가들도 미술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게 되면서 공공 교육의 목표를 노동자 계급의 취향을 높이고, 제조업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의 미적·기술적 수준을 향상시키려는 제조업자들의 상업적 관심을 반영하였다. 이러한 미술에 대한 인식이 변화함에 따라 미술교육을 위한 학교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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