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락 교수의 음악 인문학

음악인들이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 클리셰 (Cliche)와 파스티셰(Pastiche)

  • 입력 : 2018.09.11 14:46:35    수정 : 2018.09.11 17:5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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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각자의 분야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가다보면 꼭 한번 씩은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까다로운 사람들과 소통하고 일해야만 하는 상황이 생긴다. 다양한 성격의 사람들과 의견을 조율하거나 무엇인가를 이해시키며 일하고 살다보면 ‘아 이래서 소통능력이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순간이 온다. 주변에 일을 잘한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보통은 나보다 의사소통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느낀다. 한국고용정보원의 한 연구에 의하면 대졸취업자들에게 ‘대학 때 배웠다면 현재 업무에 도움이 되었을 능력’을 물었더니, 설문으로 제시한 10가지 능력 중 ‘의사소통능력’이라는 답이 전체의 19.1%로 가장 높았다 (대졸자 직업이동경로조사 기초분석보고서, 한국고용정보원, 2016). 즉, 사회생활을 막상 해보니 업무능력도 중요하지만 상대방과의 소통능력에 대한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다는 말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의사소통 능력을 기르기 위해서 관련 서적을 읽거나 강의영상을 보는 등 작은 노력들을 해보았을 것이다. 소통에 대한 서적들과 강연들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이해하라는 점을 강조한다. 하버드대 로스쿨의 뉴스레터 “Negotiation”에서는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 위한 전략의 첫 번째로, ‘상대방의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단순히 상대방의 말뜻을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서 말에 담긴 뉘앙스, 관점까지 이해하려고 애쓰라는 의미이다. 상대방이 잘 사용하는 표현을 나도 사용한다던지, 상대방이 익숙해하는 방식의 표현을 사용해주는 등의 노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음악가들도 음악을 통하여 대중들과 소통하려는 경우가 있다. 자기만의 세계에 몰두해 있는 예술가적인 포스를 보여주는 것만으로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사람들에게 음악으로 다가가 말을 걸고 소통하는 부분도 음악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음악인들은 대중의 언어를 이해하고 구사하는데 능숙해져야 한다. 이번 칼럼에서는 음악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매개체인 클리세(Cliche), 그리고 상대방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해내는 방식인 파스티슈(Pastiche)를 살펴보며 이를 통해 소통능력을 기르는데 인사이트를 얻어 보고자 한다.

먼저, 음악의 클리셰(Cliche)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클리셰는 ‘관습적 표현’ 혹은 ‘상투적 표현’ 등의 뜻으로 인쇄에서 쓰는 ‘연판’이라는 어원에서 유래했는데, 판에 박은 듯한 문구나 표현방식을 이야기 한다. 영화로 비유하면 서부영화의 주인공은 항상 백인의 총잡이 캐릭터이고, 멜로 영화의 결말은 대개 행복한 결혼으로 끝나는 등 흔한 표현법을 말한다. 대중음악으로 비유하면 흔히 가요에서 사용되는 리듬, 화성진행, 보편적인 멜로디라인을 말한다. 언뜻 들으면 진부하다는 식의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히는 경우가 있지만 대중예술에서 적절한 클리셰를 구사하는 것은 대중과의 소통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대중가요로 예를 들어보면, 대개의 작곡가들은 멜로디를 쓰거나 반주트랙을 만들 때 대략 전체의 60~70% 정도를 클리셰 패턴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 즉, 멜로디나 반주가 지나치게 독창적이거나 개성이 강하면 멋있는 음악이 될 수는 있지만 대중들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기가 어려워진다. 특히 음악에서는 장르(Genre)마다 흔히 사용되는 어법이 존재한다. 대중들도 어떤 음악의 멜로디만으로도 그 음악이 발라드인지 아이돌 풍 댄스음악인지 재즈음악인지 정도는 알 수가 있다. 장르에 따라 관습적으로 사용되는 멜로디 라인이 있기 때문이다. 혹시 취미로 통기타나 피아노를 배웠던 사람들은 쉬운 코드진행(Chord Progression)정도는 몇 개 알고 있을 텐데, 대중음악에서 흔히 사용되는 코드진행들은 이미 1930~40년대 무렵 미국 뉴욕의 스탠더드 팝뮤직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수 많은 대중음악의 명곡들에 반복 사용되어 왔다. 그리고 각 코드진행에 어울리는, 관습적으로 즐겨 불리우는 비슷한 멜로디 라인들이 있으며 작곡가들은 대중과의 소통을 위하여 이러한 클리셰 멜로디를 포함시켜 작곡해왔다. 결국 훌륭한 대중음악가가 되려면 다른 음악에는 없는 자기만의 독창적인 부분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들이 좋아하고 이해할 수 있는 음악의 언어를 갖추고 그것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기술이 더욱 중요하다. 특히, 연령대 별로 일상에서 평소 사용하는 언어가 약간씩 다르듯이 음악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감각도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십대들이 클리셰라고 생각하는 음악과 사십대가 클리셰라고 생각하는 음악은 그 양상이 매우 다르다. 음악인들은 자신의 음악이 누구에게 전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방향을 가져야 하며 그러기 위하여 그 세대의 언어적, 정서적 클리셰를 이해해야 한다. 필자는 종종 음악 작업을 의뢰받아 나름대로 최선의 결과물을 만들어 들려주었는데도 좋은 평을 받지 못하거나 재작업을 요구받는 경험을 한다. 아니, 자주 경험하고 있다고 해야 정직한 일일 것이다, 그러한 재작업 요구에 직면하면 나의 소통과 공감능력의 부족을 느끼게 된다. 내가 십대들의 음악을 듣는 귀에 둔감했구나! 이러한 탄식이 나온다. 그때는, 나의 생각을 온전히 버리고 그 음악을 소비하는 연령층의 사고방식, 그들의 언어, 그들의 문화와 정서의 클리셰를 이해하고 정리해보려 애쓰게 된다. 클리셰는 일종의 패턴인데, 어떤 사람이나 계층의 삶의 패턴을 이해해보려 애쓰는 과정, 어떠한 언어를 즐겨 쓰는지, 어떠한 멜로디 라인을 좋아하는지, 어떠한 사운드에 반응하는지를 조사하고 동감해보려 애쓰는 시간들을 통하여 서서히 그들의 클리셰를 알게 되고 음악에 그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대중가요를 만드는 일은 매우 시간이 촉박한 경우가 많다. 짧은 시간 안에 상대방의 클리셰를 파악해서 그것을 사용하여 소통해야만 하는 상황의 음악인들이 많다. 우리가 일을 하다 까다로운 사람들을 상대해야만 할 때, 오히려 상대방의 언어와 정서의 관습인 클리셰를 이해하려 애쓰고, 그것을 사용해서 먼저 소통하려 하면 소통의 어려움은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음악의 클리셰를 통하여 당대의 대중들과 소통했던 음악가 중, 80년대 이후 팝음악의 어법을 완성해나간 프로듀서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의 음반, 한국어가 가진 우리만의 정서를 아름답게 음악에 녹여낸 가수 이문세의 음반, 재즈 보컬음악의 교과서와 같은 엘라 핏제랄드(Ella Fitzgerald)의 음반을 청취해 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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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Foster”, David Foster, Atlantic Record,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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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위한 시“, 이문세5집, 킹레코드,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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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la in Berlin”, Ella Fitzerald, Verve, 1960>



두 번째로, 프랑스어로 ‘모방작품’을 의미하는 파스티슈(Pastiche)에 대해 알아보자. 파스티슈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유명 작품 속의 스타일이나 아이디어를 가져와서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방법을 말한다. 작곡이나 편곡 일을 하는 음악인들은 음악작업을 의뢰하는 회사나 가수로부터 소위 레퍼런스(Reference)음악을 제시받는 경우가 있다. 즉, 어떤 레퍼런스 음악과 비슷한 느낌의 음악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레퍼런스가 특정 곡이 아닌 특정 아티스트로 제시되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가수의 제작자가 작곡가에게 찾아와 “우리 가수의 이번 음반을 위하여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같은 곡을 만들어주세요”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스티비 원더라는 전설적인 팝가수가 얼마나 많은 곡을 발표해 온 거장인데 이런 뜬 구름 잡는 요구가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런데 작곡가들은 그것을 해내야만 한다. 이 때, 작곡가들은 어떠한 과정을 거치게 될까? 마치 미술가가 모방작품을 그릴 때 붓 터치의 스타일, 구도, 색감 등을 상세히 관찰하여 어떤 미술가의 작법을 모방해내듯, 어떤 음악가의 음악들을 충분히 관찰하면서 음악의 표현법, 악기구성, 음색, 화성, 리듬 등 전체적인 특징을 발견하고 그것들을 사용해서 음악을 만들게 된다. 듣기만 해도 추상적이고 어려운 일인데 과연 해낼 수 있을까? 대개의 숙련된 프로 음악인들은 짧은 시간 내에 어떤 음악을 파스티슈 해내는 스킬이 매우 뛰어나다. 음악을 파스티슈 하는 과정은 단지 머리로 이해하는 것만이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고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신비한 부분이 있다. 어찌 보면 모방하고 새로운 결과물을 창출해내는 과정인 파스티슈야말로 대중음악인의 성공을 좌우하는 능력인 것이다.

최근 파스티슈는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과 맥을 같이 하면서, 어떤 음악인의 음악적 특징을 컴퓨터가 정교하게 알고리즘화 해내고 그 음악인의 어법을 활용해 새로운 음악을 출력해내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인공지능으로 만들어진 음악이 음원 챠트에 진출하는 경우를 종종 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해내기가 어려운 복합적 파스티슈, 즉 두 명 이상의 음악인을 복합적으로 파스티슈 하여 만들어진 음악이 가능해졌다. 각각의 음악인의 어법이 온전히 살아있으면서 두 명의 위대한 음악가의 어법을 혼합하여 파스티슈 해내는 작업은 인공지능 음악이 해낼 수 있는 새로운 영역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고 배워야할 사람 혹은 어떤 조직의 전체적인 특징을 빠르게 관찰하고 그것을 도입하여 나만의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파스티슈 능력, 지금과 같이 산업의 경계가 빠르게 허물어지며 끊임없이 새로운 역량을 길러야만 하는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능력이 아닐까? 파스티슈를 생각해보면서, 피아니스트 빌 에반스(Bill Evans)를 항상 마음속에 담고 연주 시 그를 파스티슈 하기를 추구했다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는 전설적인 재즈피아니스트 미셸 페트루치아니(Michel Petrucciani)의 음악을 들어볼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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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ayground”, Michel Petrucciani, Blue note records, 1991>



음악인들의 삶을 통해서 살펴본 두 가지, 상대방의 클리셰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소통하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나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파스티슈 능력을 길러보는 것을 통해 우리의 삶에 질 높은 소통이 이루어지길 소망해본다.

[최성락 KC대학교 음악콘텐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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