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가정은 우리의 이웃

우리가 사는 세상엔 슈퍼 영웅이 필요한 게 아니다

  • 입력 : 2018.08.09 09:52:40    수정 : 2018.08.09 19:4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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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초반 베트남 출신의 결혼 이주여성인 미진(가명) 씨와 은희(가명) 씨가 겪은 이야기다. 어느 날 센터에 나온 미진 씨가 전화기를 내밀며 말했다,‘선생님, 전화해 주세요.’ 나는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었다.

미진 씨는 지역에 있는 오리가공 공장에서 알바로 일했는데 임금을 아직 못 받아서 속상해하고 있었다. 그래서 공장 사장님께 전화도 하고 문자로 사정 이야기도 했지만 그 뜻이 잘 전달되지 않았다. 그들의 한국어 의사표현이 아직 서툴러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미진 씨가 내민 전화기를 받아들고 물었다.‘남편한테 말 안 해봤어요?’그러자 미진 씨가 대답했다. ‘우리 남편 안 도와줘요. 전화 안 해요.’나는 미진 씨 전화에 문자를 썼다. ‘사장님, 밀린 임금 좀 보내주세요.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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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이런 일로 문자를 보낼 때 나는 가급적 기한을 함께 적어 보낸다. 어쨌든, 미진 씨의 서툰 표현이 아니고 나의 정확한 우리말 표현으로 내용을 전달했기에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었으리라 생각하고 미진 씨의 일을 잊었다. 그런데 얼마 시간이 지난 후 미진 씨가 다시 와서 전화기를 내밀었다. 전화를 해달라고. 그래서 나는 또 물었다. 왜? 미진 씨는 사장님이 돈을 아직 안 보냈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냈다. 동일한 내용으로, 이번에는 좀 더 간곡히 호소하는 마음을 담아서. 이렇게 해서 일이 해결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미진 씨는 며칠 후 다시 와서 전화기를 내밀었고, 이번에 나는 전화를 걸었다. 미진 씨의 전화로 걸려오는 전화는 받지 않는 걸 알기 때문에 내 전화기로 건 것이다.‘여보세요?’

수화기 너머에선 우리가 흔히 만나는 평범한 아저씨 목소리가 들려왔다.‘안녕하세요? 미진 씨가 도와달라고 해서 전화를 드려요.’

‘누구세요?’ ‘옆집 아줌마에요. 미진 씨 형편이 어려워서 그러니 입금해 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려요.’ 나는 이런저런 너스레를 더 떨고는 전화를 끊었다. 미진 씨는 두 달 만에 사흘 동안 일한 24만 원을 받았다. 미진 씨는 아침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하루 8시간(점심시간 1시간 제외) 일당 6만 원을 받고 일을 했었다.미진 씨가 두 달 만에 밀린 임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같은 공장에서 일했던 은희 씨가 나한테 도움을 청했다. 은희 씨는 하루 출근하고 더 이상 출근을 못했다. 은희 씨가 받아야 할 금액도 하루 일당 6만 원이었다. 은희 씨는 하루 밖에 일을 못하고 액수도 6만 원 밖에 안 되니까 그 돈을 포기하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불쑥불쑥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고, 그 와중에 친구인 미진 씨가 돈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게 도움을 청한 것이다. 나는 다시 옆집 아줌마 모드로 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그러자 사장이 말했다. 당신이 왜 나서냐, 왜 그 여자 말만 듣고 그러느냐.

나는 말했다. ‘은희 씨는 5만 원으로 일주일을 사는 사람이에요. 6만 원이 사장님한테는 하루 저녁 술값도 안되는 돈이지만 은희 씨에게는 생명유지 비용입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 거예요.’ 그러자 사장이 말했다,‘그 여잔 일을 너무 못했어요. 그 돈 줄 수가 없어요. 3만 원만 주겠습니다!나는 말했다.‘사장님, 사장님은 직원한테 그런 식으로 임금을 지불하세요? 그럼 일 잘하는 직원한테는 돈을 더 얹어주시나요? 사장님께서 임금을 지급하는 기준은 뭔가요? 그때그때 달라요?’ 그러자 사장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말했다.‘6만 원 보내 주세요. 어쨌든 은희 씨가 하루 나가서 일했잖아요.’그러자 사장은 푸념하듯 말했다,‘그런 걸 옆집 아줌마한테 말하고 말이야!’‘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나는 한 마디 덧붙였다.다음 날 사장은 은희 씨에게 4만 원을 입금했다. 4만 원을 받고 은희 씨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는 말로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면 센터 여성들은 센터가 자신들에게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생각을 하고 나도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생각에 한 편으로 마음이 뿌듯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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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미진 씨와 은희 씨, 그리고 고기 공장 사장님은 다 한 동네 사람들이다.

하남시는 2018년 5월 현재 인구 24만 명의 소도시다. 만일 지역에 있는 어떤 모임에라도 나가면, 나와 임금 문제로 통화를 했던 그 사장님은 한두 다리 건너 알게 될 수도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일에 나서기가 사실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미진 씨와 은희 씨 일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그 액수가 너무 소박해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이 생기면 가급적 치우치지 않고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왜냐면 그들은 모두 나의 이웃이기 때문이다. 나와 같은 일을 하는 활동가들은 슈퍼 영웅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영화에서처럼 우주를 구하고 멸망에 처한 지구를 구하는 슈퍼 영웅이 필요한가?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나는 우리 곁으로 들어와 이미 이웃이 되어버린 이주 여성들이 이 사회에서 덜 소외되고 덜 차별받기를 바랄 뿐이다.

[윤영미 글로벌다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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