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당신의 인상을 인상하라!’

경험이 주는 선물,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똑똑해진다

  • 입력 : 2018.06.12 11:09:43    수정 : 2018.06.12 16: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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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픽사베이



알파고가 이세돌을 바둑으로 이기는 장면을 뉴스로 볼 때였다. 다들 이제 로봇이 고도의 지능 게임에서도 우리 인간을 이기는구나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다른 생각을 했다. 평소 궁금하던 것이 풀렸던 것이다. 우리의 뇌는 중년까지 수 십 년 분량의 기억을 저장한다. 그 양이 엄청나서 나중에 뇌가 폭발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해소되었던 것이다.

비결은 단순히 기억을 축적하는게 아니라 정보를 열심히 한데 섞고, 그걸 분석하고 융합한다는데 있다. 그리고 재창조해낸다. 그 전에 담았던 것보다 훨씬 유용하고 차원이 높은 것들로 말이다. 그러니 무조건 차곡차곡 쌓아둘 일이 없는 것이다. 알파고가 바둑을 두는 원리는 이와 같이 중년 이후, 인간의 뇌 활동을 닮았다.

중년 이후의 뇌는 점점 쇠퇴하는 게 아닌지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중년만 해도 깜빡깜빡하는데 노년 이후에는 아예 뇌가 닳아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전화번호를 기억하거나 사람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은 약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신 다른 쪽의 뇌가 활성화되고 작동 방식도 다르게 진행된다고 한다.

이에 대해 바버라 스트로치 기자는 자신의 책인 <가장 뛰어난 중년의 뇌>에서 MRI로 촬영하여 밝혀낸 중년 이후 뇌의 비밀을 밝히고 있다. 즉 중년은 ‘두개의 뇌’를 소유한다고 한다. 중년이 되면 뇌의 한쪽만 쓰는 대신 양쪽 모두를 사용하는 능력이 발달하기 시작한다.

이는 무거운 의자를 들기 위해 한 팔 대신 양 팔을 사용하는 것과도 같다. 또한 은행에 예금을 들듯이 평소 뇌를 부지런히 쓰면 나이가 들어서도 뇌와 관련한 질병에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진다. 예를 들어 치매가 생겨도 뇌에 ‘비축분’이 많으면 두뇌 활동에 지장이 없는 것이다.

실제로 고령으로 사망할 때까지 지능을 고도로 발휘한 한 수녀의 뇌를 부검해 보니 알츠하이머 말기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뇌 활동에 지장을 받지 않았던 것이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뇌세포가 죽거나 활동이 멈추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어떤 부분이 약해지고 어떤 부분은 더 좋아져서 전과 다른 방식의 두뇌 활동을 할 뿐이다.

얼마 전 은행에 갔을 때 일이다. 현금 인출기 앞으로 다가가려는데 예순을 조금 넘은 여자 분이 내게 부탁을 했다. 송금을 하려고 하는데 계좌번호를 잘못 눌렀으니 수정하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기계조작 문제로 남을 가르쳐주게 되다니 으쓱해하면서 빨리 수정해 드렸다.

그러자 다른 글자도 좀 입력해 달라고 하신다. 눈이 침침한데 돋보기를 안 가져왔단다. 글자도 입력해 드리고 송금까지 무사하게 마치고 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입금이 됐는지 확인 전화 안 하세요?”

그러자, “지금은 어차피 전화 못 받는 시간이에요. 이따가 한 시간쯤 뒤에 해 보죠.” 돈을 받는 사람의 상황 내지는 스케줄까지 꿰차고 있으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혹시 학교 선생님이세요?”라고 물어보셨다. 내가 놀라서 어떻게 아셨느냐고 하니 말투나 느낌이 그렇단다.

젊을 때와 달리 눈이 침침해지고 손도 느리고 기계를 대할 때 한없이 움츠러드는 나이. 그러나 처음 본 사람의 직업을 알아맞히고 다른 사람의 속사정이나 스케줄, 생활 패턴까지 알아내는 능력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이는 바로 시간과 경험이 주는 선물이다. 데이터의 축적, 그것이 간혹 뒤섞여서 순서가 엉망일 때도 있지만 그 묘한 융합 (종합이 아니다) 과정은 또 다른 기대감을 주기도 한다. 이 독서는 나를 어디로 데려다 줄까? 이런 지식은 어디에 쓰일까? 글씨를 좀 느리게 쓰면 어떤가? 그런 일은 기계도 할 수 있다. 이 런 단순한 능력 말고, 세상에 필요한 추측과 융합, 창조는 많다.

알파고가 바둑을 이길 때 누군가가 자신은 알파고를 이길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비결은 아무렇게나 두는 데 있다. 알파고는 바둑에 무지한 일반인의 바둑 두는 수를 데이터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바둑 문외한이 두는 수를 이길 수가 있을까? 아무런 질서 없이 막 두는 수를 말이다. 아마 당황할 것이다. 그 사람 말처럼 알파고가 지게 될지, 아니면 더 쉽게 이길지는 모르지만 나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자랑스럽게도 사람은 할 수 있다. 그냥 바둑을 그만두든가 기초를 가르쳐 주면서 두게 하던가 말이다. 이런 대처 능력은 경험과 직관력에서 나온다. 그런 능력에 있어서 중년의 뇌는 뛰어나다. 유명한 석학들의 연구 이론도 중년 이후에나 완성된다.

마치 부부가 결혼생활이 오래될수록 입 모양만 봐도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아내는 것처럼 모든 것이 편해진다. 사소한 건망증 때문에 기죽지 말자. 더 이상 남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버벅거리는 것을 창피해 하지 말자. 자신감이 상실되면 어둡고 자신감 없는 얼굴이 된다. 얼굴이 완성되는 나이에 그건 너무 가혹한 일이다. 나이가 들수록 멋진 얼굴을 갖고 싶다면 말이다.

나이가 들수록 사람 이름을 외우거나 전화번호를 외우는 것 등은 힘들어질지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 시무룩할 때 금방 알아채고 적절한 위로를 할 수 있다. 진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느끼자.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똑똑해진다는 것을 믿는 것이다.

[허윤숙 작가/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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