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박사의 영어 이야기

[정채관 박사의 우딸영어(24)] 영어를 잘하고 싶은가, 그대?

  • 입력 : 2018.06.12 09:55:19    수정 : 2018.06.12 19: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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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응천공원에 다녀왔다. 음성군과 음성행복교육지구 도토리숲 작은도서관이 주최한 여름 축제에서 열린 사람책 재능 기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책이란 자신의 지식, 경험, 지혜를 이야기로 나누어 주는 사람을 말한다.

내 주제는 ‘나의 영어 울렁증 극복기’였고, 내 오두막을 찾은 중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던 차에 형제가 몇이냐는 얘기가 나왔다. 한 아이가 자기는 동생이랑 둘인데, 자기만 가족들과 다르게 생긴 것 같다며 뾰로통했다. 그랬더니 다른 아이들이 모두 입을 모아 “너는 생긴 건 둘째 치고, 말하는 것도 너네 엄마랑 똑같아~!”라고 놀렸다.

말하는 것도 너네 엄마랑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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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유학할 때 어떤 모임에서 덴마크 학생을 만났다. 그 친구는 신기하게도 말하는 스타일이 미국 유명 배우 알 파치노와 거의 똑같았다. 말하는 톤(tone), 피치(pitch), 인토네이션(intonation) 등 눈을 감고 들으면 거의 알 파치노였다.

처음에는 일부러 우리를 웃기려고 알 파치노 성대모사 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알 파치노를 좋아했다고 한다. 너무 좋아하다 보니 알 파치노가 출연한 모든 영화 대사를 거의 다 외우다시피 한 건 물론이고, 영화를 보며 알 파치노가 말하는 것을 자기도 따라 똑같이 했다고 한다.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서 했다고 한다. 지금도 알 파치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며 그런다고 했다. 자기는 영어를 배우려고 한 게 아니라, 알 파치노 따라 하다가 영어는 덤으로 그냥 하게 된 거라나.

나도 영어를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다. 한국에서 동네 영어학원도 다녀봤고, 영국에서 영어연수도 해봤고, 영국 유학 10년 넘게 하며 영국 대학원에서 학생들 가르쳐보기도 했고, 한국에 돌아와 국내 최상위 대학에서 학생들 가르쳐봤고, 영어 관련 전문 학술서와 논문도 써봤다. 그런데 30년을 돌아 다시 돌이켜보면 드는 생각이 있다.

영국에 있을 때나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가끔 듣는 말이, 나의 한국어 말하기(구어)가 직설적이고 거칠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유학 생활하며 월간조선 영국 통신원으로서 2002년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칼럼을 썼다. 전 세계에 공개되는 칼럼을 일부러 썼다. 그래야 긴장하고 쓴 글을 또 보고, 다시 보고, 계속 보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마찬가지다. 아무도 읽지 않는 글은 퇴고를 잘 하지 않는다.

영국으로 유학 가기 전이나 유학 중일 때 내 대화의 주 상대는 어머니였다. 학교 근처에도 못 가본 경상남도 억양이 억센 여장부다. 옛날에 태어났으면 말을 타고 다녔을 거라나. 건강 때문에 일찍 명퇴한 아버지 덕분에 우리 4남매 키우기 위해 시장에 좌판 깔고 생선 장사하는 것도 마다치 않은 분이시다. 경상남도 말투에 세상 억세게 사신 게 더해져서 그런지 말투 자체가 직설적이고 거칠다. 그런 분하고 주로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내 구어체도 당연히 직설적이고 거친 편이다. 특히 어휘 사용에 있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자못 거부감을 줄 수 있는 경상도 스타일의 어휘가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앞서 내 오두막에 왔던 아이들이 입을 모아 ‘말하는 게 너네 엄마랑 똑같다.’는 말이 남의 말이 아니라는 얘기다.

아마도 이런 얘기를 듣는 게 처음은 아닐 것이다. 우리 딸은 어릴 때부터 태블릿을 통해 다양한 국내외 애니메이션을 섭력해왔다. 지금은 영국 애니메이션인 페퍼피그를 보지만, 그 전까지는 뽀로로에 빠져 살았다. 그러다 보니 우리 딸이 말하는 투가 뽀로로에 나오는 특정 동물과 비슷해져 갔다. 그 말투를 계속 들으며 따라 하다 보니, 자기 말투도 그렇게 된 거다.

지난 6월 2일 충북혁신도시교육문화발전협의회(www.ceca.kr)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과 공동으로 ‘영어 습득의 이해’ 특강을 개최했다. 서강대 유원호 교수는 파닉스는 알파벳 발음과 문자를 연관 지어 영어를 배우게 하는 방식으로 영어 원어민에게 최적화된 것이지 영어를 외국어로 배우는 우리 아이들에게 어릴 때부터 파닉스를 적용하는 게 좋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처음부터 음성을 문자로 배우게 하기 보다는 자연스러운 영어 듣기를 우선적으로 많이 하게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영국 유학할 때 싱가포르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다. 40대 아저씨도 있었는데, 내가 한자로 이름 쓰는 것을 보며 대단하다고 했다. 자기는 중국말은 하는데, 쓸 줄은 모른다며 부끄러워했다. 멀쩡히 중국말을 잘 하기에 당연히 쓸 줄도 알았다. 음성과 문자는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전쟁을 거치며, 또 개인적인 사정으로 학교에 가지 못해 글을 읽거나 쓰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점을 상기하면 사실 이상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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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관 박사(교육학) 매일경제 우버人사이트 칼럼니스트/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영어를 잘하고 싶은가, 그대?

누구처럼 영어를 하고 싶은가? 간혹 미국 클린턴 (전)대통령이나 오바마 (전)대통령이 말하는 걸 보며 저렇게 말하고 싶다는 사람이 있다. 방법은 간단하다. 누구처럼 영어로 말하고 싶으면, 그 사람이 말하는 것을 계속 들으며 똑같이 따라 말하면 된다. 나중에는 눈을 감고 외워서도 할 수 있게 말하면 된다. 누구처럼 영어로 쓰고 싶으면, 그 사람이 쓴 것을 계속 따라 쓰며 똑같이 외워서 쓰면 된다. 안 보고도 쓸 수 있게.

이 때 주의할 점이 있다. 롤 모델을 누구로 삼느냐에 따라 자기의 스타일이 굳어질 수 있다. 내 경우는 공대 영어 원서를 주로 써버릇하다 보니 내가 쓴 글은 매우 딱딱하다. 영국에서 박사과정을 할 때 지도교수가 내가 쓴 글을 보며 무슨 법조문 같다는 얘길 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 내가 영어로 쓴 논문을 봐도 별로 마음에 안 든다. 한글로 쓴 논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어쩌겠나, 그게 내 스타일인걸. <본 칼럼은 칼럼니스트 개인의 견해임을 밝힙니다.>

[정채관 박사(교육학) 매일경제 우버人사이트 칼럼니스트 /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부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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