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둥이 엄마의 좌충우돌 육아 에세이

삶의 지평을 넓혀주고 있는 입덧의 고통

  • 입력 : 2018.05.16 10:50:46    수정 : 2018.06.15 12: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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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태하는 고통 중에 있다. 잉태하다는 임신하다와 동의어로 ‘아이를 뱀’이라는 뜻이다. 아이를 배게 되면 태아의 성장발달을 돕는 방향으로 엄마의 몸은 바뀌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태반에서 분비되는 각종 호르몬의 영향으로 임신 초기에 입맛이 떨어지고 구역질이 나는 증세, 즉 입덧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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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구글



난 평소에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입버릇처럼 말해왔다. 내가 애 낳는 것은 순풍 순풍 정말 잘 하는데 입덧이 너무 심해서 정말 힘들다고. 입덧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고 무섭다고. 임신은 축복이지만 임신과 함께 찾아오는 입덧은 매번 내게 재앙이다. 네 번이나 하고 있는 이 끔찍한 입덧은 매번 낯설고 힘들다.

큰 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갔다. 며칠 전, 학교 보건실에서 연락이 왔다. 처음이었다. 불안한 마음으로 보건 선생님과 통화했다.

“민아가 힘이 없고 열이 나서요. 해열제를 먹여도 될까요?”

“제가 지금 데리러 갈게요.”라고 말씀드리고 서둘러 민아에게 달려갔다.

달려가는 중 이런 저런 생각들이 나 자신을 괴롭힌다. 민아는 분명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나 목이 아파. 엄마 나 어지러워. 엄마 나 머리 아파.”

그 수많은 말들은 토하기를 반복하며 쓰러져 있던 내 귀에 그냥 들어왔다 나가버렸다. 내 몸이 죽겠으니 딸자식 아픈 것에 이다지도 무딘 엄마가 되고 말았다.

아침 등굣길, 첫째, 둘째, 셋째 모두 건강 상태가 별로다. 한 아이는 목이 아프고, 한 아이는 콧물이 질질 나고, 또 한 아이는 기침을 한다. 세 명 모두 감기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고 있었다. 내 입덧 가라앉히겠다고 냉동실 가득 잔뜩 사놓은 아이스크림이 원인이었다. 밥을 할 수가 없으니 매일 배달 음식 아니면 오뎅이나 햄 볶음 같은 인스턴스 음식으로 아이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던 시간들도 머릿속을 스쳤다. 나는 또 다시 괴롭다.

‘있는 애들이나 잘 키우지. 깜냥도 안 되면서 무슨 한 명 더 낳겠다고…’

남편의 체력도 한계치에 부딪힌 듯 보인다. 매일 야근하고 들어와서도 우렁 각시처럼 집안일을 다 하고 나서야 겨우 잠을 청했다. 아침에 일어나 말끔해진 집안을 보고는 짠한 마음과 고마움이 내 마음을 덮치곤 했다.

분명 내 것이라 여기고 살던, 내 정신이, 내 몸둥아리가 결국 내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 내 삶이 내 것이라 주장할 수 없는 시간들 속에 내가 있다.

열 나는 민아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약을 먹이고 우리는 함께 누웠다. 감기로 아픈 딸과 입덧으로 아픈 엄마는 그렇게 나란히 누웠다.

“민아야, 엄마는 민아가 학교에서 공부하는 동안 이렇게 매일 토하고 누워있어.”

“엄마, 나는 엄마가 집에서 좋아하는 책도 마음껏 보고 글도 쓰고 자유롭게 잘 지내는 줄만 알았어.”

“민아야, 지금 엄마는 그런 일들은 못해. 엄만 그냥 있는 것도 너무 힘들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민아가 나를 안아주더니 토닥토닥 해준다.

“엄마 나 임신했을 때도 이렇게 힘들었어? 이 힘든 걸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하고 있는 거야? 엄마 진짜 고생한다.”

여덟 살 딸이 또 나를 울린다. 속 깊은 딸이 옆에 있어 행복하고 감사하다. 이 고통의 터널을 씩씩하게 건너보겠노라 다부진 결심도 하게 된다.

어제가 최고로 힘든 날인 줄 알았다. 오늘은 더 힘들다. 이제 토하는 건 일도 아니다. 저 마지막 쓴물까지 쏟아내는 토하기가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점점 더 먹고 싶은 것이 없어진다. 점점 더 하고 싶은 것도 없어진다.

점점 마음까지 우울해진다. 점점 나는 말라가고 얼굴은 파리해 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함을 잃지 않는다. 아는 병이기에 기약이 있는 고통이기에 끝도 없는 병마의 고통 속을 헤매는 많은 사람들도 떠올려 본다. 나는 진다. 감사치 않을 수 없는 인생이다. 나는 고통 중에 성장하고 있다. 네 아이 엄마로 살아갈 삶의 지평을 한 뼘씩 넓혀본다.

[이송이 공무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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