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성장, 좋은 건 함께

감정노동자, 엄마가 살아남는 법

  • 입력 : 2018.04.17 11:45:00    수정 : 2018.04.17 20: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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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지난 30일, ‘감정노동자 보호법(산업안전보건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감정노동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보건조치 대상 항목에 추가하고, 사업자의 적극적인 예방 조치와 안전 보건 조치 강화, 더불어 안전 보건 교육에 대한 지도와 지원 강화 등의 전반적 내용을 담은 ‘산업안전보건법’이 통과된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1983년 미국 버클리대의 러셀 혹스차일드 교수는 직업상 필요한 모든 감정을 다 표현해 내지 않고 표정이나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을 ‘감정노동’이라는 단어로 처음 개념화 시켰다. 즉, 자신의 감정을 억누른 채 자신의 직무에 맞게 정형화된 행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감정적 부조화를 경험하게 된다. 감정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우울증 지수가 상대적으로 높게 나오고 스트레스 지수가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타인의 감정만을 존중하고 수용해야하는 환경에서 내 감정을 건강하게 보듬어주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감정노동을 오래 수행한 근로자의 상당수는 이른바 스마일마스크 증후군(smile mask syndrome)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증후군은 밝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얼굴은 웃고 있지만 마음은 우울한 상태가 이어지거나 불안함, 또는 건강 이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 ‘감정노동’은 엄마들의 하루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부분이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생활은 그야말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서 벌어지는 실시간 감정노동 그 자체이다.

아이에게 맞춰져 하루를 보내다 보면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또 놀아주며 극한의 피곤함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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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아이를 양육하면서 당연하게 뒤따르게 되는 이러한 ‘돌봄 노동’으로 인해 몸이 피곤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정신적으로 더 피로할 때가 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고 상대방을 위해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상대방을 위해 내 감정을 조절하는 순간만큼은 내가 철저하게 ‘을’이 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다시 생각해 본다면 엄마와 아이 관계에서 엄마는 ‘을’이 되는 순간이 비일비재하다. 아이를 대하면서 대치하게 되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수시로 노출되면서 엄마는 때로는 멈추지 않는 울음 앞에서. 때로는 심술과 투정 앞에서 아이의 감정을 읽고 반응해주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운다. 아이의 감정 선에 따라 함께 감정을 공감하며 하루 수십 번 아이의 감정을 완화시켜 나가는 과정은 기본적으로 이루어지는 일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힘들고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고 내가 경험한 양육은 엄마이기 때문에 당연하고 묵묵하게 해내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하고 사회 속에서 여성들이 서있을 자리가 넓어졌다 할지라도 변한 것 하나 없어 보이던 것이 양육을 행하는 ‘엄마’의 자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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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이 당연한 자리에서 아이에게 화를 내고, 힘들다고 말하고, 서운함을 드러내고 때로는 억울함을 표현하는 것은 ‘어른답지 못한’ 엄마의 모습으로 냉정히 치부된다. 그래서 불가피하게 엄마는 아이에게 감정을 속이고 좋은 엄마, 어른스러운 엄마, 행복한 엄마, 여유로운 엄마로 종종 스마일 마스크 증후군처럼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다.

엄마의 하루는 ‘감정 노동’이다. 타인의 감정을 돌보느라 나의 감정을 억누르며 생활하는 감정노동자 군에 나는 엄마라는 자리도 포함된다고 생각한다. 엄마가 경험하게 되는 낯선 경험, ‘감정노동’을 엄마이니 무던하게 경험해나가야 하는 것이라고 치부하지말자. 너의 감정이 많이 지치고 힘들었겠다고 인정해주자.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인정을 굳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스스로 토닥여주며 인정해주면 된다.

‘다른 사람을 돌보느라 나의 감정에는 귀 기울일 시간도 없던 나야 참 고생했다.’ 내 자신에게 건네는 따뜻한 인정, 넉넉한 칭찬, 끊임없는 용기야말로 엄마라는 직업을 건강하게 이어나기 위해 꼭 필요한 영양분이다.

코리아나 미술관은 개관 15주년을 맞아 ‘히든 워커스(Hidden Workers)’라는 이름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예술 기획전을 개최했다. 육아와 가사노동, 감성노동의 주제가 포함되어 있어 흥미롭다.

여성주의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행위미술가인 유켈리스는 “결혼하고 임신하다니, 너는 더 이상 좋은 아티스트는 못 되겠다”는 스승의 말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실제 엄마가 되면서 예술 활동을 도저히 할 수 없는 현실에 맞닥트리게 됐다. 유켈리스는 자신이 늘 하던 가사노동이 곧 예술노동이라는 선언문 (메인터넌스 예술을 위한 선언문 1969!)을 발표하고 미술관 실내외 바닥을 걸레질 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엄마라는 역할에 의미를 부여하고, 더 나아가 엄마라는 이름을 직업적 공적영역으로 가시화 한 것이다. 우리, 엄마들 에게는 유켈리스와 같은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엄마라는 자리를 독보적인 ‘직업’으로 인정하는 마음가짐. 감정노동자, 엄마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독보적인 감정노동자로서 엄마라는 직업을 수행하고 있다는 긍지의 마음가짐이 필수 아닐까.

[최지은 스피치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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