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코치의 ‘육아’코칭

공감이 가져오는 변화

  • 입력 : 2018.03.14 10:51:09    수정 : 2018.03.14 18:5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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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의 사회적 기업가 메리고든이 쓴 <공감의 뿌리 – Roots of Empathy>라는 책을 읽고 있다. 그런데 영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재미없어서가 아니고 너무 재미있어서다. 한 장 읽고 나면 ‘이걸 직장 내 남성들에게 기업교육으로 진행하면 좋겠다’ 싶어 노트에 아이디어를 기록하고, 또 한 장 읽고 나면 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는 데가 없나 인터넷을 뒤지다 시간이 간다. 책을 집어든지 일주일이 지났건만 이제 겨우 50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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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픽사베이

<공감의 뿌리>는 1996년부터 캐나다의 유치원부터 초∙중등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 ‘공감능력을 높이는 심리교육’ 프로그램이다. 방식은 이러하다. 지역에 사는 생후 2~4개월된 아기를 초등학교 교실에 초청해서 1년간 아기의 성장을 관찰하게 한다. 아기가 방문하는 수업은 월 1회, 앞뒤로 아기 발달에 대해 배우고 아기 성장에 대해 토론하는 수업이 각각 1회씩 진행한다. 이 3번의 수업이 매달 1년간 진행된다. 이 프로그램 덕분에 10년 만에 캐나다 전역의 집단 괴롭힘이나 따돌림 현상이 90프로나 줄어들었고, 지금은 뉴질랜드,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등지에서도 진행되고 있다. 무엇이 이렇게 강력한 변화를 가져왔을까?

프로그램을 개발한 캐나다의 메리고든은 이렇게 말한다. “아기는 감정이나 요구를 감추기 위해 감정을 억제하지도 않고 책략을 쓰지도 않는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사람과 사람이 공감하면서 소통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즉, 아기는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얼굴이 잘 생겼건 못 생겼건 상관없이 누구나 똑같이 대하고, 누구에게나 똑 같은 사랑을 기대하기 대문에 사랑하는 법과 공감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최고의 교사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때묻지 않은 인간 본성의 순수함에 감탄했다.

한편 우연히 보기 시작한 드라마 <마더>는 가슴이 미어져서 보고 있기 힘들다. 주인공인 9살 혜나를 거칠게 대하는 미숙한 엄마와 그녀의 남자친구의 무심한 듯한 폭력을 보면 심장이 터질 것처럼 아파온다. 항상 신경질적이고 딸의 성장보다는 남자친구의 사랑이 중요한 엄마지만, 그럼에도 혜나는 엄마의 비위를 맞춘다. 엄마가 주는 대로 먹고 시키는 대로 움직인다. 엄마의 남자친구가 무섭고 싫지만 반항하지 않는다. 캐리어 가방에 들어가서 있는 듯 없는 듯 숨죽인다. 혜나는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 완벽히 적응했다.

이런 혜나가 임시담임인 수진 (이보영)의 눈에 들어온다. 수진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린 시절 고아원 앞에 버려졌고 그 후 유명영화배우에게 입양되어 사랑 받으며 키워졌지만, 끝내 엄마 곁을 떠나 자기 삶을 살아가려 애쓰는 인물이다. 그런 수진에게 혜나는 왠지 모르게 신경 쓰이는 존재다.

결국 집 앞 쓰레기 봉투에 피흘리는 얼굴로 버려진 혜나를 발견하고 이성을 잃은 수진은 혜나를 데리고 도망을 간다. 수진은 혜나에게 “(친)엄마를 떠나도 괜찮겠느냐”고 여러 번 묻는다. 혜나는 번번이 수진을 선택한다. 자신에게 더 좋은 선택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이다.

도대체 혜나의 엄마는 왜 그런 것일까? 그녀가 본래부터 무책임하고 그릇된 인간이었던 아닐 것이다. 그녀에게도 <공감의 뿌리>에 초대되어 많은 학생들과 어른들 안의 공감능력을 깨워낸 아기처럼 순수하고 따뜻한 아기였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 아이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무책임한 어른이 된 까닭은 무엇일까?

만약 그녀에게도 수진선생님처럼 자신의 마음을 보살펴주는 어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니면 <공감의 뿌리> 같은 프로그램을 접해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능력을 키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자신의 책임인 아이를 내팽개치는 무책임한 부모를, 우리가 그리고 사회가 예방할 수 있지 않았을까?

아동학대의 71%가 가정 내에서 일어난다는 끔찍한 사실. 공감능력이 있는 부모라면 자신의 아이를 학대하지 않는다. 늘어나고 있는 왕따와 학교폭력도 마찬가지다. 공감능력을 가진 아이라면 친구의 고통을 즐길 수도 방관할 수도 없다. 요즘 정치계, 문화계, 분야를 가리지 않고 폭로되고 있는 성폭력 역시 공감능력의 부재에서 온다. 자기 권력에 도취되어 상대의 아픔을 보지 못하는 저열한 자들의 짓이다.

사회 곳곳에서 공감의 부재 때문에 일어나는 폭력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상상이 전개된다. 모든 학교에 <공감의 뿌리> 같은 실재적이고 효과적인 공감수업이 진행되어, 아이들이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는 날을. 기업의 임원들이 <공감의 뿌리> 수업을 듣고, 그들 안의 말랑말랑한 감수성이 터지는 날을. 부모와 교사와 사회리더들이 <공감의 뿌리> 수업을 통해 자신의 영향력 안에 있는 약자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능력을 장착하는 날을. 그런 날을 꿈꿔본다.

[김지혜 지혜코칭센터대표 / 맘키즈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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