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가 닳도록’ 여행하고 싶은 그대에게

[마르가 닳도록 스페인어] 모두에게 같고도 다른 또르띠야 이야기로 보는 스페인 음식 ③ 또르띠야

  • 입력 : 2018.02.14 11:35:46    수정 : 2018.02.14 19:40:05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스페인에서 함께 유학했던 언니들이 머물렀던 하숙집 주인 Alba아주머니께서 초대해주신 파티에서, 5인실 기숙사에서 각각 준비한 음식으로 웰컴 파티를 할 때, 방 룸메이트 Natalia의 초대를 받아 북쪽의 하까(Jaca)에 위치한 그녀의 부모님 댁에 놀러갔을 때, 독일인 친구 Flavia와 한국영화를 함께 보던 날 저녁파티에서 늘 빠지지 않았던 공통된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또르띠야(Tortilla)’이다.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출처: 픽사베이



‘스페인식 오믈렛’, ‘스페인식 계란 케이크’ 정도로 번역되곤 하는 또르띠야는 사실 특별한 파티에서만 맛보는 음식이 아니라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인 계란과 감자를 가지고 만드는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으로 소비되는 스페인의 전형적인 음식이다. 계란을 풀고, 얇게 또는 작게 썬 감자와 기호에 따라 양파를 넣은 후 후라이팬에 그대로 부어서 두껍게 부쳐내는데, 팬케이크나 부침개처럼 얇게 부치는 것이 아니라 후라이팬의 윗부분까지 거의 가득 차게 재료를 부어서 만들어 익힌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그래서 두께나 모양이 마치 케익에 데코레이션 하기 전, 기본 빵의 모습과 흡사하다. 또르띠야만을 식사로 먹기도 하고 타파스로 한 조각을 먹기도 하며 바게트빵에 끼워 보까디요(스페인식 샌드위치)로 만들어 먹기도 한다.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사진출처: 픽사베이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아마 본인이 알고 있는 또르띠야와 다른 ‘또르띠야’의 이야기에 고개를 갸우뚱 할 것이다. 이는 스페인에서의 또르띠야와 멕시코로 대표되는 중남미에서 지시하는 또르띠야가 다른 음식이기 때문이다. 스페인식 또르띠야는 또르띠야 데 빠따따스(Tortilla de patatas)로 감자와 계란을 가지고 만든다면 중남미 또르띠야는 옥수수(maíz) 반죽으로 만든 얇은 전병을 익힌 것으로 타코, 퀘사디야, 부리또스 등에서 속재료를 싸먹는 얇은 피를 말한다.

난이나 만두피와 비슷한 개념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렇게나 다른 두 개의 또르띠야가 서로 같은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음식의 동그란 모양 때문이다. ‘tortilla’는 동그란 케익, 파이를 뜻하는 스페인어 ‘torta’에 ‘-illa’라는 축소사가 붙어 ‘작고 둥근 덩어리’, ‘작은 케익’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그러므로 스페인과 중남미의 또르띠야는 동그란 모양과, 일상적이고 전형적인 음식으로 각 국가에서 대중들이 자주 먹는 음식이란 점은 같지만 재료와 맛에 있어서는 판이하게 다른 음식이란 점을 잠시 언급한다.

어쨌든, 책에서만 보던 스페인식 또르띠야를 스페인에서 처음으로 맛보았을 때 나는 ‘거대한 계란말이’같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먹는 계란과 감자, 양파 등을 넣고 만들기 때문에 먹어보지 않더라도 또르띠야의 맛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감자가 들어간 계란말이를 떠올리면 딱이다. 그러나 이 음식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이 있다면, 재료나 맛이라기 보다 만드는 방법과 그것에 얽힌 ‘나의 이야기’가 스며 들어갈 공간이 있다는 점이다.

즉, 내가 만난 또르띠야 요리사들은 각자마다 ‘나의 또르띠야 도전기’, ‘나만의 레시피’ 등 또르띠야에 얽힌 이야기를 음식과 함께 곁들여주는데, 가령 이런 식이다. Alba 아주머니는 감자를 조금 크게 써는 대신에 올리브유와 소금으로 간을 해서 미리 전자레인지에 돌려 감자를 살짝 익힌 후 계란과 섞는데 그래야 감자가 속 안까지 다 익어 더 부드럽다고 한다. 독일인 Flavia는 처음 또르띠야 만들기에 도전한 날, 후라이팬 속 또르띠야의 한쪽 면을 익히고 반대쪽 면을 익히기 위해 뒤집을 때 보통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접시를 후라이팬에 대고 뒤집었는데 너무 힘을 준 나머지 또르띠야가 접시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착지했다고 깔깔 거리며 말한다.

나로서는 그녀의 또르띠야 실패담이 웃기지 않았지만 독일식 유머인가 싶어 함께 웃어줬다. 기숙사 룸메이트 중 한명이었던 Carla는 몸매 관리에 엄청 신경을 쓰던 친구였는데 자신은 늘 견과류를 또르띠야에 넣어 먹는다며 우리에게 호두를 넣은 또르띠야를 만들어 선보였고 담백하고 깔끔한 맛에 모두가 반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또르띠야 만들기에 동참해보고 싶어진다. 나 역시 나만의 또르띠야에 얽힌 이야기를 “¿Sabes qué?[사베스 께?]”(너 그거 아니?)와 같은 문장을 시작으로 늘어놓고 싶어진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것을 실행에 옮기며 살고 있다. 여러 친구들로부터 보고 들은 또르띠야 만드는 방법을 바탕으로, 또 내가 맛본 또르띠야 맛을 떠올리며 한국에서 또르띠야를 만들어 위의 경험담들과 함께 스페인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나누곤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또르띠야는,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던 2013년 가을새벽에 만들었던 또르띠야 10판이다. 스페인 문화 시간에 학생들에게 스페인 음식을 맛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벌인 일이었는데 새벽 3시부터 일어나 엄청난 양의 감자와 눈물의 양파 썰기, 기름 범벅이 된 주방은 둘째치더라도 다 만든 또르띠야의 모양을 유지시키며 학교로 가져가는 것이 관건이었다. 어떤 용기도 또르띠야 10판을 다 담아낼 수 없어, 피자집을 운영하는 지인으로부터 피자 배달 때 쓰는 종이 상자를 공수해와 또르띠야를 무사히 학교까지 배달할 수 있었다. 아침부터 다크서클이 발밑까지 내려오는 것 같았지만 학생들이 “선생님 진짜 맛있어요.”를 연발하는 순간의 기쁨이 고생스러움을 다 잊어버리게 만들어 매년 또르띠야 만들기를 반복하게 한다.

이름은 같지만 스페인과 중남미에서의 또르띠야가 다르다. 같은 또르띠야이지만 그 안의 재료가, 또 그것을 만드는 사람들이 더하는 이야기라는 양념이 또르띠야의 맛을 다양하게 한다. 그리고 이 또르띠야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더욱 풍성해지고 있다. 인기리에 방영중인 <윤식당2>에서 외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던 한국의 김치전을 ‘또르띠야 데 김치(Tortilla de Kimchi)’ 라고 번역하여 소개한 것을 보았다. 물론 동그란 모양 때문에 부침개를 언제나처럼 Tortilla로 번역한 것일테지만 또르띠야의 본토에서 완전히 다른 한국의 또르띠야가, 그것도 한국을 대표하는 김치가 들어간 또르띠야가 인기를 얻는 광경이 재미있게 다가왔다. 어느 것이라도 좋다. 당신만의 같고도 다른 또르띠야 이야기를 듣고, 맛보고, 구경하고 싶다. 더불어 설 명절, 한국의 전통 ‘또르띠야’를 가족들과 함께 만들어 먹으며 즐거운 또르띠야의 추억을 만드시길 기원해본다. ¡Feliz año nuevo! [펠리스 아뇨 누에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곽은미/마르가 스페인어 강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