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윤숙의 ‘당신의 인상을 인상하라!’

지구에서 단 하나뿐인 내 얼굴

  • 입력 : 2018.02.13 11:14:49    수정 : 2018.02.13 18:12:10
  • 프린트
  • 이메일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스토리
  • 공유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사진출처:픽사베이



큰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다. “네 책이 나온 것을 축하한다. 그런데 미안하다. 못 읽었어. 눈이 잘 안 보이거든. 녹내장이 심해서... 한 달만 있으면 완전히 시력을 잃는단다. 앞으로는 네 얼굴을 볼 수가 없겠구나.”

전화기를 잡은 내 손등 위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렀다. ‘나를 예뻐하시던 큰 아버지가 이제 내 얼굴을 못 보신다니...’

큰 아버지는 우리 집안에서 큰 산 같은 존재셨다. 누구에게나 꼭 필요한 덕담과 조언을 하고 자식들도 훌륭히 키워내신 분이다. 그런데 이제 그분은 앞에 있는 사람을 알아보실 수가 없다. 내가 울면서 이 사실을 얘기를 하니 우리 남편이 이렇게 말한다. “그래도 당신이 누군지는 아실 수 있잖아. 우리 아버지는 조금 있으면 우리를 아예 못 알아보실 텐데...” 말을 흐리는 남편의 낯빛이 어둡다.

현재 아버님은 치매 초기 증상을 보이고 계신다. 집안의 내력인 것 같다. 몇 년 전부터 아버님 형제분들께서 차례대로 치매를 앓고 계신다. 아버님은 얼마 전부터 치매 증세를 보이시더니 우리들 얼굴을 자꾸 헷갈려하신다. 남편 말이 맞는 것 같다. 눈이 보이지 않더라도 우리가 누군지 알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사람을 알아본다는 것은 무엇을 말할까? 왜 ‘얼굴을 알아본다.’라고 하는 것일까? 얼굴도 손이나 어깨처럼 신체의 일부분일 뿐인데 말이다. 우리가 보통 ‘사람을 본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곳이 아닌 얼굴을 보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 얼굴에는 중요 감각기관과 그 사람이 가진 고유한 것들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구상에는 수십억 명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얼굴이 똑같은 사람도 단 한 명도 없다고 한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도 얼굴이 다르게 생겼다. 얼굴의 어원이 ‘얼이 드나드는 굴’이라는 말이 있다. 얼은 그 사람만이 가진 고유의 정신이므로 누구와도 같을 수 없을 것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뇌에는 얼굴 인식을 담당하는 부위가 따로 있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눈 한 번 깜박이는 시간 정도만으로도 얼굴의 차이를 인식하는 능력이 있는데, 얼굴의 미세한 차이를 본능적으로 알아챈다. 얼굴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 얼굴의 이목구비가 아니라, 얼굴을 100개의 구간으로 나누어 수많은 조합을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얼굴의 차이를 인식한다고 한다. 거의 무한대의 조합이 나오는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신비롭고 특별한 자연의 일부로 느껴지는 부분이다.

한 번은 부모가 이혼하고 아빠랑 단둘이 살던 학생이 나에게 자살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때 내가 해 준 말은 고작 “너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존재란다. 자살이란 말을 함부로 하면 못 써.”였다. 그랬더니 그 학생이, “나같이 키도 작고 못생긴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 학생은 아마 아이돌처럼 잘생겨야 특별하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키가 작고 햇빛에 그을려 새까맣던 그 아이도 이 지구상에는 단 하나밖에 없는 한정품이다. 명품샵에서 특별히 제작하는 한정품은 그 희소성 때문에 비싸지 않은가? 많이 만들어냈다면 비쌀 리가 없다.

각자의 얼굴이 유일한 데는 반드시 이유가 있지 않을까? 사람의 얼굴을 붕어빵 찍듯이 똑같이 만들어내지 않는 이유 말이다. 혹시 이 지구상에서 나만이 가진 소중한 임무가 있지 않았을까? 아마도 남들은 해내지 못할 어렵거나, 독특하거나, 재밌거나, 힘든 일들이 내가 해야 할 일일지 모른다. 나는 이 지구상에 단 하나뿐인 한 정품이니 말이다.

[허윤숙 작가/교사]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