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95) 시즌 3<본부장이 금융을 말한다>

빚이란 무엇인가 (1) 빚의 개념이동(槪念移動)

  • 입력 : 2018.02.12 13:53:36    수정 : 2018.02.12 20:4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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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중세 유럽의 기독교와 중동의 이슬람교까지 대부업을 죄악시했고 심지어 샤를 마뉴 대제는 아예 법으로 대부업을 금지시켰다. ‘대부(貸付)업의 해악(害惡)’ 사진출처:구글



지금은 금융업 자체가 최고의 돈벌이지만 500년전 대항해 시대가 시작될 때, 금융의 원래 목적은 금융업 자체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산업들이 스스로 돈을 벌게 도와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산업진흥이라는 거창한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단순히 개인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주는 데에 오로지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서민들의 구휼(救恤)말이다. 그래서 중세에서 금융업은 주로 수도사들이 담당을 했다. 그만큼 영리가 목적이 아니라 어려운 서민도 돕고 수도사들이 오로지 신앙에만 전념하며 수도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금융업의 시작이었다. 당시는 종교인을 제외한 그 밖의 계층{왕, 귀족(기사), 농민}이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행위를 매우 금기시하고 또한 천시했다. 하지만 사회가 원활히 돌아가려면 누구든 이 부분(오늘날 금융업 종사자들은 자신들이 사회 윤활유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을 담당해야 했고 그걸 담당할 계층이 당시에는 오로지 유태인뿐이었다. 본부장은 유태인이니 뭐니 하는 이야기에는 솔직히 관심 없다. 특정 민족이 원래 문제였던 게 아니라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이 문제의 시작인 것이다. 만약 충분한 시간을 두고 특정 인종이나 민족이 역사적으로 다른 인종이나 민족들에게 차별 받는 역사를 겪지 않았다면 세상은 지금보다 더 다채로운 내적 풍요로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유태인들도 모두가 천시하는 금융업에 뛰어들지 않았을 것이고 세상이 이야기하듯이 그다지 영악스러운 민족 또한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라비아인들 역시 대상(隊商)으로 성장하게 된 이유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북아프리카 대륙의 사막화 때문이었다. 먹고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편견은 공공의 적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에게도 가장 경계해야 할 적(敵)이다. 유연한 사고는 부자의 첩경이다. 피아(彼我)식별이 잘 된다는 것은 오히려 자기편의(便宜)적인 편견에 빠져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좀더 안전하고 신뢰 가는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옳고 그름'의 판단보다 '적절과 부적절'의 판단이 더 우선되어야 한다. 후진국과 선진국의 차이가 바로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한국을 예로 들면 옳고 그름 즉 정의의 문제를 그렇게 자주 이야기하는데도 왜 수 십 년째 국가의 청념도나 경쟁력은 항상 제가리 걸음을 하고 있을까. 금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능력이나 신용을 보지 않고 무조건 대출금에 상응하는 담보를 요구하는 것은 적절과 부적절에 대한 판단보다는 내부의 규범적 기준에 따른 판단에 기대고자 하는 편의주의적 편견이라는 측면이 더 강한 것이다. 안전성이라는 자기편의적 옳고 그름의 기준만으로 의도나 절차의 부적절한 판단에 대한 평가가 유보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로는 오늘날과 같은 열린 시대에서 국가나 개인 모두 부자의 길에 들어 설 수 없다. 자기 방어적인 의도(경직된 사회일수록 사기꾼이 판친다. 사기는 순진해서 당하는 것이 아니라 편향된 사고 때문이다)가 너무 지나친 자와는 누구도 진정성 있는 논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만이나 사기라는 방법을 쓸 가능성이 훨씬 높다. 지금 주변의 우리 사회 전체가 겪는 문제를 유심히 보면 아마 그 말뜻이 이해가 갈 것이다. 물론 옳고 그름이라는 정의에 대한 담론 조차 없는 사회는 더 말할 가치도 없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목표는 우리가 속한 국가나 기업 또는 단체가 타인의 롤모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러분도 그러한 스스로의 눈높이에 대한 집착만은 절대적으로 유지하길 바란다. 오히려 자신의 편견에 대한 집착은 완전히 버리고 말이다. 자 이제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빚에 대한 편견도 함께 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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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자산(資産)을 가진 귀족계급의 상징 에슐리 윌키스(우)와 미래 자산인 신용(信用)을 추구하는 젠틀리의 상징 레트 버틀러(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사진출처:구글



일반인들에게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빚에 대한 생각을 묻는다면 10명중의 8명은 부정적일 것이다. 따라서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그러하다면 여러분은 현재 지극히 상식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금융권에 들어올 인재로서 면접을 보았다면 첫 번째 관문은 합격인 셈이다. 본부장이 지금껏 이야기했던 상식적인 인재란 10명 중 8명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10명중 1~2명이 할 수 있는 행동으로 옮기는 결단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빚을 내는 것에는 부정적인데 대부분은 과도한 빚을 지고 있다. 현실이 어려우니 그럴 것이겠지 라고 말하면 금융권적 상식으로는 오답이다. 일반적 기준을 먼저 말해주마. 개인의 경우 빚은 자산의 10%안에서 지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왜냐면 바로 갚을 수 있는 가장 용이한 비율(인류의 역사적 경험으로 10분의 1은 가장 편안하게 인정되는 비율)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넘을 경우는 계속 자산을 청산해서 빚을 줄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법인의 경우는 최대 자산의 50%를 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일반 룰이다. 여러분이 카지노를 가보면 알겠지만 동전던지기처럼 블랙잭이든 룰렛이든 모든 경우의 수의 기본은 성공 확률 50대 50 에서 시작한다. 사업의 성공 확률도 모두 거기에서 시작을 한다. 자 문제는 개인이 일반적 상식의 수준에 미달하는 정도의 자산에 비해 더 많은 부채를 지고 있을 경우는 어떻게 하느냐다. 본부장은 ‘금융을 말한다’의 서문에서 미리 말했듯이 이 글의 서술을 경험적 사실에 더 많은 비중을 둘 것을 예고했다. 금융은 결국 개개인의 인생에 결부된 이슈이고 학문이 아니라 사회현상이나 행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무나 많은 다양성과 특수성이 존재한다. 말하자면 수많은 개인적 사례에서 일반론을 찾아가야지 반대의 방법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본다. 한 사람의 인간 자체가 너무나 많은 변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인이 자신의 소득과 상관없이 10%의 부채 룰을 지킬 수 있는 자산은 한화로 17억원 정도이고 유로화로 100만 유로 정도가 적정 기준이다. 주의할 것은 이 룰은 자산 자체만 이야기할 때만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소득이라는 우호적 변수가 빠져있기 때문이다.(19세기 들어 영국에서 귀족계급이 젠틀리라는 신흥 계급에 밀린 것도 현재의 자산(資産)보다 일정한 미래 소득과 거기에 따른 신용(信用) 확보 때문이었다) 자산이 1000만원인데 부채가 1000만원이고 소득이 월 300만원이라면 비록 자산대비 100%의 부채라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일반 룰은 보통 6개월치의 월 소득의 합이 적절하고 최대로 1년치 월 소득의 합까지가 한계라고 보면 된다.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론을 말하는 것이다. 가령 월 소득이 1000만원인 사람은 자산과 상관없이 5000만원의 부채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으며 1억원까지도 적절하다고 본다. 물론 소득이 중간에 끊기지 않게 해야겠지만 말이다. 사회의 고용구조가 매우 경직되어 있어 이직이나 창업이 용이하지 못한 국가일 수록 일반롤에 의한 기준을 이야기하기가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본부장이 앞서 금융이 그 국가의 시스템적 경쟁력을 볼 수 있는 바로미터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매년 스위스 다보스 포럼에서 발표하는 국가 경쟁력 항목 중에서 가장 관심 있게 보는 항목이 바로 국가 청렴도와 금융 경쟁력인 것이다. 이 둘은 상관관계가 거의 100%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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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는 돈은 새끼를 낳지 못한다고 했다. 금융업에서 누군가의 과도한 소득은 현재 또는 미래 누군가의 손실이다. ‘금융자본주의의 위기’ 사진출처:구글



앞에서 말했듯이 금융경색이라는 것은 돈의 문제이고 신용경색이라는 것은 신뢰의 문제이다. 경험적으로 보면 선진국에서 주로 일어나는 것이 전자요 후진국이 후자일 것이다. 금융위기라는 것도 특별한 경우(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대표적)를 제외하고는 후진국에서 일어나는 경우보다는 선진국에서 주로 일어난다. 고혈압이라는 성인병이 영양과다에서 오는 것과 같다. 금융업이 발달을 해야 금융위기도 오는 것이고 금융업의 발달은 사회 시스템의 투명성 즉 옳고 그름의 문제에 앞서 적절 부적절의 문제를 중요시하는 사회적 공감대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니얼 퍼거슨이 ‘위대한 퇴보’에서 말했듯이 자본주의가 기본기가 망각된 채로 1989년 냉전해체 이후 근 30년간 승리감에 도취된 결과, 부적절함은 물론, 옳고 그름이라는 기초적인 규범적 기준에도 부합되지 못하여 지금의 금융위기를 초래한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모든 금융위기는 사실 빚 때문에 생기는 문제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도 과도한 빚에 의한 모기지 상품이 재앙의 단초가 되었고 1997년 외환위기도 국내로 유입된 외환이 쉽게 빠져나가게 만들어놓은 부분(일명 선진국 자본의 ATM기가 되었다고 할 정도)이 매우 큰데 기축 통화국이 아닌 국가들의 경우는 적정 외환보유고 유지 자체가 빚을 지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다.(사실 개도국은 국경을 벗어나면 아무 쓸모가 없는 자국 통화 때문에 매우 불공정한 게임을 하고 있다) 조지 소로스 같은 사람들이 환투기로 돈을 버는 주 대상이 바로 비(非)기축 통화국들이다. 소로스가 달러는 물론이고 엔화를 가지고 환투기한다는 얘기는 없으니 말이다. 국제 사회도 일반 사회처럼 불쌍한 사람들의 약점 잡아서 사익을 챙기려는 사람(토마스 홉스가 ‘리바이던’에서 이런 기생충 같은 짓 못하게 하려고 정부가 필요하다고 한 것이 아닌가)들이 너무나 많다. 선진국 특히 미국(1997년 외환위때 선진국들은 엄청난 호황이었다)을 예로 보면 90년대의 호황을 지나고 성장 여력이 떨어지니 빚을 내서 소비를 하거나 집을 사서 실물자산을 늘리라는 사회분위기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2000년대 들어서이다. 한마디로 잠재성장률을 넘어선 성장을 독려하다 보니 결국 거품이 발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거품이라는 것에 주로 일조(一助)를 하는 것이 금융권이다.(거품이란 것도 금융이 발전한 선진국에나 있는 것이다). 금융권은 최대한 모기지 같은 대출 상품을 많이 팔아 수수료를 통해 이익을 내면 그만이기 때문에 나중에 고객이 돈을 갚는다는 전제하에선 장부상에선 일단 엄청난 이익을 내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수익은 나중에 들어올 돈이 다 들어온다는 것이 전제(前提)조건인데도 나중 일은 나중에 맡겨버린 것이다.(다윗이 말한 '이 또한 지나가리라'처럼 세상의 좋은 말을 왜곡해서 자기 편의(便宜)로 합리화하는 곳이 금융권임을 본부장은 줄곧 보아 왔다). 전 세계적으로 IFRS4(국제보험회계기준)같이 금융권에 대한 회계기준의 엄격한 개선을 요구하고 나서는 이유도 바로 금융의 자기 편의적 성향에 대한 심각한 우려에 있다. 따지고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말인데도 말이다. 보험사로 예를 들어 말하자면 지금처럼 계속 생산인구가 줄어들어 신규 보험가입이 줄어들 것이 예상됨에도 당장 장부상으로 영업이익을 내는 것에만 신경을 쓸 뿐 장래에 기가입자에게 적립금을 나눠주어야 하는 시점에 가서 과연 그 돈을 모두 줄 수 있느냐는 것은 누구도 진정한 관심을 갖지 않는다는 것이다. 보험계약은 보험사가 미래고객을 담보로 기고객에게 빚을 진 것이다. 그때는 그때의 사장과 임원들이 알아서 하겠지라는 마인드가 완전히 없다고 할 수 있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물론 본부장은 그들이 내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대략 알고 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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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인간의 노동력보다 신용 그리고 신뢰가 중요해진다. 3대 SF 거장 아이작 아시모프 원작 ‘아이 로봇’ 사진출처:구글



시대가 발전하면서 빚의 개념도 달라졌다. 과거의 빚을 현재의 노동으로 갚으려는 개념에서 현재의 빚을 미래의 노동을 넘어 빚으로 갚으려는 개념으로의 이동 말이다. 디지털 혁명 이전의 닫힌 사회의 개념에서는 현재의 노동은 가치가 있지만 미래의 노동은 무가치한 것이다. 반대로 디지털 혁명 이후의 열린 사회의 개념에서는 미래의 노동은 물론이고 빚도 가치가 있다. 연결과 유대만으로도 가치창출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대항해 시대 이후 지금까지의 발전이 현생 일류인 호모사피엔스가 누리는 것의 대부분인 것처럼 디지털 혁명 이후의 발전은 그 외연이 어디까지일지 가늠하기조차 힘들다. 먼 미래엔 인류가 육체노동에서 해방(저주가 될 수도 있수도 있지만) 됨으로써 인류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될 것으로 예측한 3대 SF 거장(로버트 A. 하인라인, 아서 C. 클라크와 함께)인 아이작 아시모프가 그의 소설 ‘파운데이션’에서 말한 내용이 이제는 현실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술적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의 출현 때문이다. 금융권적 시각으로 보면 인간의 육체노동이 곧 의미가 없어지는 세상이 온다는 또 다른 증거가 마이너스 금리다.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돈이 추구의 대상이 아닌 오로지 소비나 거래의 수단(돈은 새끼를 낳지 않는다고 말한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적한 돈의 진정한 기능)이 됨을 말한다. 생산물이 너무나 많아 돈이 일일이 그것들을 다 가치 매길 수 없는 상태(반대로 고대나 중세처럼 생산물이 아예 없어도 돈은 무가치하다) 말이다. 인간이 가상현실로 더욱 빠져들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 심해질 수 있다. 리얼 세상에서 생산물이 남아도는 것이다. 이쯤 되면 빚이 우리가 아는 그 빚이 아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본부장이 신용을 강조한 것이다. 신용관리가 좋으면 향후 이러한 미래의 빚을 아주 쉽게 유치할 수 있게 되고 미래는 노동력의 우위가 아니라 신용의 우위로 부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신용은 신뢰가 받쳐줘야 하는 것이고 말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여러분은 빚 관리(스스로 신변관리부터 평판관리까지 다 신경 써야 한다. 미래는 기성세대들처럼 '개처럼 벌어서 정승처럼 쓴다'는 것이 용납되는 사회가 아니다)를 매우 잘해야 함을 명심해라. 소탐대실(小貪大失)이란 말이 있다. 당장의 작은 빚을 가급적 잘 관리하여 미래의 큰 빚에 있어서 우선권을 가지라는 것이다. 본부장이 앞서 빚의 일반 룰에 대해 장황하게 말해준 이유가 바로 '과거의 빚'에서 '미래의 빚'으로의 '개념 이동(槪念 移動)'이라는 포석을 깔고 한 말임을 여러분은 빨리 눈치채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시장이 만약 향후 지속적 고금리를 대세로 예측했다면 어디선가 이상한 사기꾼들이 찾아와 가급적 많은 빚을 지고 자산을 왕창 사서 명의를 변경 후 갚지 않고 개인회생을 하거나 파산신고(이미 이러고 있는 자들이 셀 수 없이 많다. 여러분은 절대 그래서는 안된다)를 할 것을 여러분에게 권할 것이다. 고금리로 간다는 것은 자본이 귀해진 만큼 자산도 귀해진다는 의미이다. 있어서는 안되는 큰 물리적 재앙이 있지 않고서는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진다. 일부러 지구상 주요 국가의 생산수단을 모두 폭파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앞으로는 빚을 지지 못하는 사람이 가장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얘기다. 빚을 안지는 것은 개인의 자유겠지만 그럴 필요가 없는 시대가 지금 오고 있다.(사회적 지위상 더 이상 자세히 말해줄 수 없음을 이해해주기 바라고 여러분들이 더 잘 예측하리라고 믿는다) 여러분에게 주는 인생의 꿀팁이니 꼭 명심하기 바란다. 빚의 개념 이동(槪念 移動)으로 신용(信用)관리가 자산(資産)관리보다 중요한 시대다. 이제 문제는 빚 많다는 것이 아니라 신용이 없다는 것이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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