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노믹스 특강 - “사람 중심 경제”에 관하여

J노믹스 특강 - 사람중심경제에 관하여 [제12강 인간적 사회와 문화]

  • 입력 : 2017.12.07 09:28:05    수정 : 2017.12.07 11: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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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픽사베이



보다 인간적인 시장과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요소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그 근거는 다음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시장은 신뢰나 법적 계약과 같은 규범과 규칙에 따라 움직이는데, 이는 생각하는 방식이나 관습에 의해 다양한 양태를 보인다. 따라서 경제주체의 행동양식의 변화를 통해 시장은 보다 인간적이고, 민주적이며, 효율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문화를 보존하고 보다 풍부한 문화를 이룩하는 것은 현대사회의 매우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이제 개발이나 사회발전이 더 이상 단순한 물질적 생활수준의 향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관습, 종교, 예술, 기타 양식은 그 사회의 인간성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대변해 준다. 문화를 통해 개인은 인간적인 인간이 되고, 사회도 인간적인 사회가 된다.

셋째, 세계화의 진전과 모든 교역의 장벽들이 제거되어 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부와 영향력, 권력이라는 측면에서 계층간 단절은 여전하다. 부자와 빈자,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포용된 계층과 소외된 계층, 정보를 제공받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연결된 계층과 고립된 계층 간의 차이는 여전히 크다. 또한 그들 사이에는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념적 갈등이 있다. 상호 의존성이 증가하면서도 극심한 불평등이 따라서 증가할 뿐 아니라 권력집단에 대한 분노가 증가한다면 규범과, 가치, 발전의 개념 등에 대한 토론이 반드시 필요하다. 인간성과 열정을 위한 공간

요즘 시대에는 용기란 거친 것을 의미하는 경향이 있고, 효율적인 것은 단순한 것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윤리적인 면모나 정열적인 태도와 같은 덕목은 이상주의와 낭만주의처럼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되어 정부나 다른 공공기구, 사적 기구 어디서도 중요하게 취급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겸손함과 정열적인 능력은 인간 역사상 많은 문화에 ‘진지함’과 결부되어 왔다.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많은 개인들과 기관들이 역사와 사회의 인본주의적 가치관을 실현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거의 권력의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즐겁지만 한계적 영역에 자리잡고 있으며, 심각한 정책 결정자들은 단지 시장의 필요나 국제사회의 현실 때문에 필요한 심각한 결정을 내리고 난 후 시간이 있으면 이곳을 방문할 뿐이다. 이성과 양심, 자유와 이타심을 속박하려는 계몽주의 철학에서 시작되어, 서구를 포함한 세계는 점차 계산된 이기심, 물질적 진보에 대한 개념, 개인의 권리에 대한 자각들로 대표되는 도구적 합리성으로 나아 가고 있다.

이윤추구와 경쟁정책으로 꽉 찬 사상적 경향을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경제적 영역에서의 사회적 관계가 덜 인간적이고, 덜 직접적이며 보다 추상적이고 소원해졌을 때, 그리고 시장에서의 인간관계가 점점 줄어들었을 때 도덕성에 관한 황금률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 즉, 사리사욕을 추구하라는 경구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남에게 주는 것, 그리고 공유하는 것의 즐거움을 알아야 느낄 수 있는 자비로움의 한 단면이다. 문화적 풍부함의 소중함

인종, 종교, 성, 지역 그리고 신앙 등과 같은 고전적 가치에 대한 관심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이들은 문화적 동질성을 창출하는 강력함 힘을 가지고 있다. 자신의 뿌리를 찾고자 하는 욕망은 어느 지역이나 마찬가지이다. 좋게 말하면,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자신과 남 그리고 세상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능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문화적 다양성은 본래 역사와 사회에 대한 인본주의적 관점과 명확하게 양립하지 못한다. 여성의 권리와 문화적 다양성이 양립 가능한가의 문제는 하나의 좋은 예이다. 아동 노동 역시 비슷한 예가 될 것이다. 세계주의자적인 관점에서 볼 때, 그리고 인간은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가정할 때, 인권과 문화적 다양성을 동시에 진흥 시킨다는 것은 때때로 불가능 하다. 그리고 비슷한 관점에서 볼 때, 근원적인 인권을 보호하고 진흥하는 것은 가치이고, 모든 개인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고려를 뛰어 넘는 윤리적 요구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문화적 획일화는 인간성을 황폐화 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보편주의”(경제통합에서 인권시장까지)와 “문화적 다양성”(언어의 다양성, 사고양식, 도덕관념 등 개인과 사회로 하여금 동질적인 정신 물질적 근원에 대한 소속감을 유지시켜 줄 수 있는) 이 양립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

인간적 경제와 사회를 구축하고 유지하는데 교육의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사회적 관계의 기본적 품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회적 규칙과 행동규범에 대한 교육은 초등학교나 중등학교, 대학교 모두 막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과거 모든 문화권에서는 교육은 상업의 방법 뿐아니라 도덕률과 예의 범절을 함께 가르쳤다. 두 영역이 구분된 것은 근대의 일이다. 그러나 어떤 사회도 기본적인 의무의식과 책임감이 사회구성원 간에 공유되지 않으면 번영하거나 살아남을 수 조차 없다. 개인주의가 공동체정신으로 통합될 때, 인간적인 사회가 만들어진다.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은 “선을 추구하고 악을 배격하라”는 모든 종교, 모든 철학의 핵심교리를 경제거래, 정치적 협상, 개인적 사회적 관계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하는 것을 말한다. 윤리적 상대주의가 주장하는 바와는 달리, “선”과 “악”의 개념은 시간이나 공간에 따라 그리 다르지 않다. 인간이 되기 위한 교육은 자아실현을 위한 이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은 인간이라 자아실현 자아개발을 위한 무한의 가능성을 갖고 태어났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며, 이러한 지적 영적 탐구가 결국은 경제거래에서나 공공기관의 운영에서나 타당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또한 그것은 인간은 단지 이윤만을 추구하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또 인간이 되는 교육은, 개인의 진정한 정체성과 보다 넓고 창의적인 자아에 대한 추구가 개인주의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개인의 능력에 전적으로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개인, 사회, 그리고 전세계를 위해 문명과 문화에 대한 단순한 기반만 제공해주는 경제적 인간을 뛰어넘도록 도와주는 인간이 되는 교육이 필요하다.

[이선 경희대학교 경제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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