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의 아트칼럼

[예술 읽어주는 여자, 황정빈]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장 뒤뷔페(Jean Dubuffet)의 앵포르멜(Informel)과 미국 색면 추상 회화의 차이점에 대해

  • 입력 : 2017.11.13 10:38:06    수정 : 2017.11.13 21: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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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 마르크 로스코(Mark Rothko), (Yellow, Orange, Yellow, Light Orange), 1955, 출처-© MarkRothko.org 1999-2014

앵포르멜(Informel)은 아르브뤼(Artgrut)로 해석할 수 있는데 생경한 예술로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한 형태의 원생미술을 일컫는다.

2차 세계 대전 이후 전후 십년 동안, 두 세계 대전 사이에 제작했던 다양한 예술적 실험이 지속되었다. 보통 이 시기는 다양한 화풍과 여러 유파의 협동 관계가 지배적이었던 시대로 소개된다. 풍부한 기법의 공유에서 유래하는 기술적 유연성, 양식, 문화적 제안은 예술가들을 언어적, 지리적 장벽을 극복한 새로운 시대로 이끌었다. 그 결과 ‘앵포르멜’, ‘아르브뤼’는 파리의 국제 양식으로 면모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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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king and Red – 알베르토 부리(Alberto Burri), 1954 출처-© Fondazione Palazzo Albizzini Collezione Burri, Città di Castello (Perugia) / DACS 2017



그러나 이 같은 작품 안에는 전쟁 속에서 경험한 감정이 포함되어 있다. 당시 앵포르멜 작가의 작품들은 대부분 자유롭고 사려 깊은 사고, 비평적 관점을 통해 스스로를 반성하는 작품들을 제작하였으며, 이러한 작품들은 대부분 전쟁의 트라우마, 즉 상처 받은 삶, 권력과 폭력의 상관관계를 소재로 다룬다. 그 결과 전후 비극적 상황과 자유로운 사고, 감정을 담은 새롭게 고안된 기호의 저장소라 불릴 만한 여러 예술작품이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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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 Bedecked –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43 출처-© Jean Dubuffet



알베르토 부리는 이탈리아의 앵포르멜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전쟁의 종군 의사였던 부리는 2차세계대전중 미군의 포로가 되었었다. 그는 전쟁의 트라우마로 의사의 직업을 포기하고 그림에 자신의 삶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자신의 작업 속에 전쟁에 참여하며 외과의사로 가지고 갔던 배낭을 활용해서 [배낭]의 연작들을 제작했다. 그는 의사였기 때문에 전쟁이라는 특수한 조건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수술하며 얻은 트라우마를 넘어서기 위해서, 자신이 그 상황을 기억하고 대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작품은 곧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왜냐하면 이들은 같은 트라우마, 전쟁에 대한 파괴적인 경험을 공유하였기 때문에 당시 많은 유럽의 시민들의 공감을 불렀다. 색면 추상 회화와 마르크 로스코(Mark Rothko)의 미술

미국의 1930년대 초에서 중반은 파리의 문화적 흡수로부터 방어할 대안을 찾는 예술적 작업으로 점철되었던 시기였다. 1930년대부터 한스 호프만(Hans Hofmann)을 비롯한 유럽 이주자들이 미국에 도착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은 1945년 이후 심화되었으며, 이들은 미국에서 아카데미의 교수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서 후학들을 생산했다. 결과적으로 유럽에서 이민 온 화가들은 유럽의 추상연구를 통해 발전한 표현주의적이고 ‘정신적인’ 유산을 미국에 옮길 수 있었다.

마르크 로스코(Mark Rothko)는 1930년경에 뉴욕의 대도시에 관심을 가지고, 회화와 사진의 함축적 비교 속에서 작업을 진행했다. 로스코의 관점에서 회화는 감각적인 한계, 감정, 뉘앙스와 같은 수수께끼 같고 파악하기 힘든 일면을 다루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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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매트릭스 검사, 출처-ⓒ Life of Riley



그러나 1945년 이후, 즉 로르샤하 테스트(Rorschach test)와 같은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심리 테스트가 2차 세계 대전이후 등장했던 시기에 그는 색상을 겹쳐서 추상적인 느낌을 지닌 작품 연작을 제시했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업을 해석하고자 했다. 작가는 스스로 구상 작가라고 주장했지만,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다양한 방식을 동원해서 관조적, 명상적 기능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당시의 시민들이 유럽 사회의 맥락에서 구성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시민들은 충분히 이해했을 표현주의적이고 정신적인 표현들에 대해서 낯설었다는 점은 당시 평론을 발전시켰다. 이 과정에서 작품의 의미가 점차 다양한 구성원의 관점을 투영하고 재생산하기 시작했다.

알베르토 부리의 그림과 장 뒤뷔페의 엥포르멜은 추상화이지만 사회적인 감정을 다룬 그림이었기 때문에 동일한 아픔을 겪은 사람들에게는 쉽게 이해되는 작품이었다. 반면 앞의 추상화와 비교하여 미국의 색면 추상회화는 자신만의 감정에 좀 더 집중하여 그리는 방식이라 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차이점이다.

미국의 색면 추상회화는 유럽에서 표현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미국 미술에 영향을 끼쳤다. 따라서 보는 사람의 문화적 맥락에서 구성된 표현이 아니었기 때문에 표현의 의미를 미국의 현실을 통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볼 수 있다. 이점이 미국 색면 추상을 이해하기 위한 평론이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주관적 표현에 의한 소통의 난관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차이에 의한 작품의 의미를 고민하게 만들었고, 이런 점은 이후 “미술이란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들로 돌아오게 된다.

[황정빈 파르트 문화예술전문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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