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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자’, ‘군함도’, ‘택시운전사’로 본 대한민국의 탈출 욕구와 욜로의 발현

  • 입력 : 2017.10.12 09:53:09    수정 : 2017.10.12 21: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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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NAVER 영화>



2017년 연이어 대작들이 개봉했다. 봉준호의 ‘옥자’, 류승완의 ‘군함도’, 장훈의 ‘택시운전사’가 그것이다. 신기하게도 이 세 작품을 하나로 묶는 서사가 있다. 바로 ‘탈출(脫出)’이다. ‘옥자’에선 공장식 축산업장에서 죽을 뻔 했던 옥자가 탈출했고, ‘군함도’는 하시마 섬에 끌려갔던 조선 징용자들의 집단 탈출기를 그렸다. ‘택시운전사’는 5·18 광주 민주화항쟁을 취재하러 갔던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가 무사히 서울로 탈출하는 과정을 담았다. 모두 ‘생존’을 담보로 한 시도였고 성공했다는 점에서 영화는 극적 긴장과 카타르시스를 관객에 선사한다.

영향력 있는 영화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탈출’을 주제의식을 잡고, 이에 관객이 상업적 성공으로 화답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현 상황에 대한 ‘탈출 욕구’가 전국민적인 공감대로 자리 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욕구는 ‘옥자’의 공장식 축산업, ‘군함도’의 일제 강점기, ‘택시운전사’의 군사독재정권처럼 ‘고장난 구조’에서 기인한다. 현재 대한민국은 고용 불안과 저성장으로 자본주의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으며, 지난해엔 국정농단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위기까지 겪었다. 그 뒤에 개봉한 ‘탈출’ 영화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고장 난 구조에 대해 시민들이 겪는 막연함과 두려움, 불안이 ‘생존을 위한 탈출’을 꿈꾸게 만든 것이다.

최근 유행처럼 번졌던 ‘욜로(YOLO)’ 열풍은 고장난 구조에 대한 ‘저항’이자 ‘탈출 시도’다. 안정된 체제는 인간이 더 나은 삶(미래)을 꿈꾸며 투자하게 한다. 끊임없는 경쟁과 자기희생을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그러나 현 체재에 대한 불안, 불신은 ‘미래’를 기대하지 못하게 만든다. 미래의 더 나은 삶은 대한민국의 고장 난 구조에선 너무 요원한 일이기에, 삶의 방점을 미래에서 ‘현재’로 옮겨오는 것이다. 이러한 ‘욜로의 전복성’은 그러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을 탈출하고자 하는 욕구의 실현인 것이다.

현재에 대한 투자를 강조하는 ‘욜로’는 소비문화를 자연스럽게 장려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욜로는 ‘경제적 소비’에만 그친다. 투자를 돈으로만 환산하여 미래에 쓸 돈을 현재 소비한다는 것이 대한민국의 욜로다. 그러다보니 기업은 각종 욜로 마케팅을 내세워 고급 제품 소비를 유발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부조리에 염증을 느껴 시작된 ‘욜로 열풍’이 도리어 자본주의를 견고하게 만드는 격이다. 게다가 비싼 명품을 사는 것은 잠깐의 희열을 줄 순 있지만, 삶의 전반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욜로’문화가 불합리한 구조에서 탈출하려는 ‘시도’에서 그칠 뿐,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인 ‘탈출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욜로’의 본래 의미를 다시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욜로’는 현재의 희생이 미래의 풍요로운 삶을 보장하지 않는 지금, ‘현재 삶을 바꾸는 경험’에 투자하는 것이 본질이다. 이를 위해 경제적 소비는 부수적인 도구일 뿐이다. 미래가 아닌 지금, 나를 바꾸는 값진 경험을 다른 말로 하면 ‘도전’이다. 현재에 아낌없이 투자하되, 지금의 ‘나’를 최대한 즐길 수 있는 ‘도전’은 경험을 통해 ‘더 나은 나’를 꿈꾸게 한다. ‘욜로’로부터 시작된 ‘도전’은 그래서 미래지향적이고, 현재를 ‘탈(脫)’할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욜로’ 열풍의 특징은 소비문화에만 그친다는 것이다. 현재에 집중한다는 의미가 그저 경제적 소비로만 한정된다. 그러다 보니 각종 기업에서는 ‘욜로 마케팅’을 내세워 소비를 유발한다. 자본주의가 낳은 부조리에 염증을 느껴 시작된 욜로 열풍이 도리어 자본주의를 견고하게 만드는 격이다. 욜로가 경제적 소비에 천착할수록 결국엔 체제에 순응하게 된다. ‘욜로’가 불합리한 구조에 탈출하려는 ‘시도’에 그칠 뿐, 완벽하게 ‘탈출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김효숙 / 한양대학교 국어국문학과 12학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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