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포와 경제영토

한국과 브라질

  • 입력 : 2017.07.31 20:43:46    수정 : 2017.07.31 21: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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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반공포로인 임관택 (1928년생)은 독립유공자 임평의 자손이다. 그는 평양에서 대학 재학 중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쟁 중 UN 군에 포로로 잡혔고, 전쟁 후 남과 북이 포로를 교환할 때 이념이 싫어서 남과 북을 모두 거부하고 중립국을 선택하여 인도에서 임시로 2년을 살다가 1956년 2월 브라질에 왔다. 1976년 브라질 국적을 취득하여 무국적 반공포로에서 이민자로 신분이 바뀌었다. 인도에 있을 때 인도정부의 지원으로 공과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브라질의 포드 자동차에서 공구 설계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려왔다. 그는 브라질에 귀화는 하였으나 아들과 손자들에게는 한국의 국적을 회복시켜주고 싶었다. 그의 후손들이 확인해 보니 그는 이미 사망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의 아들은 주 상파울루 한국 총영사관의 도움으로 2016년 사망에서 생존으로 호적을 정정하는 절차를 한 후에 한국 법무부에 국적 회복을 신청했다. 승인을 받으면 그와 자손은 독립유공자의 후손으로서의 국적과 명예가 회복된다.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브라질은 이렇게 반공포로를 계기로 한국에 알려졌다. 두 나라는 닮은 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다. 브라질의 근현대사는 한국이 1945년 해방 이후에 겪은 군사정부, 경제개발, 민주화의 역사와 비슷하다. 두 나라 국민들의 행복 도는 다르다. 브라질이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은 한국의 영향도 있다.

브라질은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전환된 1889년부터 1930년까지를 구공화제 시대로 불린다. 이 당시에는 여성과 문맹자는 투표권이 없었고, 비밀투표도 아니어서 실질적으로 투표권이나 정치적 영향력은 커피 자본가, 대농장주 등 돈이나 땅이 많은 지역 토호인 ‘코로네이스 (Coronels)’가 가졌다. 이들 지방 세력은 중앙정부보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우세하여 중앙정치를 좌우했다. 상파울루와 미나스제라이스의 2개 주의 코로네이스가 정권을 번갈아 장악했다.

① 1953년 6월 18일 석방된 반공포로 50명은 인도를 거쳐서 1956년 2월 6일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로(Rio de Janeiro)에 도착했다. 현재 브라질 9명, 아르헨티나 2명이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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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토호 ‘코로네이스’. 자료원: http://www.eunapolis.ifba.edu.br

1930-1945년은 바르가스 대통령의 독재시대이다. 1929년 세계 대공황으로 커피 자본가들이 타격을 받자 브라질 남부의 리우그란데 두 술주의 목축·공업자본을 대표하는 바르가스가 1930년 쿠데타를 일으켜 ‘코로네이스’ 시대를 종식시켰다. 독재시대에서 바르가스 대통령은 석유화학, 철강, 금융 분야 등에서 수입 대체를 위한 자국 산업을 육성했다. 오늘날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페트로브라스 (Petrobras, 석유), 발레 (Vale, 광물), 브라질 경제사회개발은행 (BNDES) 등이 이때 설립되었다. 초중등 교육을 강화시켰고 남미 최고의 상파울루 대학 (USP)을 설립하는 등의 교육개혁과, 노동자 보호, 여성참정권 인정을 도입하여 브라질 근대화에 큰 업적을 남겼다. 문화적으로도 삼바와 카니발을 브라질 문화의 상징으로 발전시켰다. 정치적 혼란을 겪은 후 1950년 브라질 최초의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제툴리우 바르가스는 다시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1951~54년까지 두 번째로 재임하다가 경제 위기에 따른 군부의 사임 강요로 권총 자살했다. 그가 정치적으로는 독재자이지만 산업화에 기여한 것은 인정받는다. 한국의 박정희 대통령에 비유할 수 있다.

② 재임기간은 1930년~1945년, 1951년~1954년 두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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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툴리우 바르가스 대통령

1956년 취임한 주셀리누 쿠비체키(Juscelino Kubitschek) 대통령은 “50년 발전을 5년에” 공약을 내걸고 개발 정책을 추진하여 브라질리아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막대한 건설비용이 발생해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등 심각한 재정위기를 겪었다. 이에 1964년 다시 쿠데타가 일어나서 군사독재가 시작되었다. 공업화, 외국자본 도입, 반공, 친미 등이 정책 기조였다. 성장하던 경제는 1973년 오일쇼크 이후에 추락하고 인권침해 등으로 국민의 불만은 쌓여 결국 군부는 1985년 정권을 민간에 이양했다. 1995년에 취임한 카르도주 대통령은 고질적인 경제 불안을 안정시켰고, 메르코수르 (남미공동시장)도 발족시켰다. 2003년에는 노동자 출신의 룰라 대통령이 취임했다. 세계 경제의 호조로 브라질 원자재 수출이 증가했고, 브라질 경제는 브릭스의 핵심 국가로 칭송받았다. 호세프 지우마가 룰라의 지지에 힘입어 2011년 대통령에 취임했다. 그러나 2016년 경제 악화와 뇌물 스캔들이 터지면서 탄핵되었다.

한국은 1910년부터 일본의 식민지로 있다가 1945년 해방되었다. 한국은 1948년 최초의 공화국이 출범하여 1960년 4·19혁명으로 끝났다. 제2공화국은 1961년 1년 지속되다가 1961년 5·16 쿠데타로 끝났다. 1961년 5·16 쿠데타를 통해서 정권을 잡은 박정희 대통령이 3공화국, 4공화국을 이끌면서 산업화 정책을 펼쳤다. 1988년에는 직선제로 대통령이 선출되고, 1993년 문민정부가 시작되면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정착했고, 2003년에는 노동. 인권 변호사 출신이 대통령이 되었다. 2017년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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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1945년의 바르가스 독재시대와 1964년 이후의 브라질 군사정부의 정책은 박정희 시대와 공업화, 외자도입, 반공 등에서 유사하다. 두 나라 모두 군정시대에 경제성장률은 높았다. 한국은 평균 8.5%의 성장했고, 브라질은 군정 기간의 일부인 1968년부터 1973년까지 높은 경제성장을 했다. 독재정권은 정권 획득의 명분으로 사회질서 회복이나 경제개발을 내세우는데 브라질과 한국이 독재정권은 경제개발에 내세웠다. 그러나 군사정권의 명분이 달성되면서 두나라의 독재정권은 위태로워졌다. 박정희 정권은 70년대 중반부터 오일쇼크와 물가폭등 등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중동 건설 붐에 힘입어 1977년에 수출 100억 달러를 돌파하는 등 경제가 호황을 누렸지만, 중동 건설경기의 급속한 냉각으로 기업 도산이 속출했다. 1973년 1차 보다 더 큰 2차 오일쇼크가 1979년에 닥치면서 수출이 급감했고 물가는 치솟았다. 결국 박정희 정권은 1979년 무너졌다. 브라질 군부는 석유파동과 경제 불황이 도래하자 경제운영에 능력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선거로 선출된 문민 대통령에게 1985년에 정권을 이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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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1961-1979년 (박정희), 1980-1988년 (전두환)

④1964-1967년 (웅베르투 알렌카르 카스텔루 브랑쿠), 1967-1969년 (아르투르 코스타 에시우바), 1969-1974년 (에밀리우 카라스타주 메디시), 1974-1979년(에르네스투 게이세우), 1979-1985년 (주앙 피게이레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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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브라질은 1981년 1인당 국민소득이 같이 2,070달러를 기록했으나 이후부터는 한국의 브라질을 추월했다. 2017년 (IMF 기준) 한국 2만 9천 달러, 브라질 1만 3백 달러로 차이가 더욱 벌어졌다. 한국은 ‘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 경제 개발하면서 일제시대나 민주화 과정에서 우리를 나쁘게 평가하는 말을 극복했다. 그러나 브라질은 '브라질은 계속 미래의 나라이다.', '자연이 만든 것은 좋은데 사람이 만든 것은 안 좋다.' 라는 말을 아직도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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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성공적인 경제발전이 브라질의 종속이론을 무너뜨렸다. 종속이론은 중심 (선진국)과 주변 (개도국)으로 구성된 세계 자본주의의 구조에서 주변국은 선진국의 다국적기업에 1차 산품을 저가에 공급하고, 다국적기업은 고부가가치 제품을 생산하여 개도국에 판매하기 때문에 개도국은 계속 빈곤 상태로 머문다는 이론이다. 유럽은 식민지 브라질에서 고무, 사탕수수, 커피, 금, 다이아몬드 등 1차 산품을 채취하여 유럽으로 가져간 후 공산품을 만들어 다시 브라질 등에 팔았다. 지금도 브라질은 농축산, 광물 등이 1차 산업이 주력이다. 종속이론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브라질 등 남미가 못 사는 이유를 설명하는 널리 알려진 이론이었다. 그런데 세계 2차 대전 이후에 한국, 타이완, 홍콩, 싱가포르 등 아시아의 네 마리용은 제조업을 육성하여 다국적기업에 원료가 아닌 공산품을 공급하는 수출지향형 개발 모델을 통해 성공했다. 네 마리 용이 종속이론이 맞지 않은 것을 증명한 셈이 되었다. 브라질 정치인이나 전문가들도 한국의 성공을 인정하고, 그 배경을 한국의 우수한 교육제도를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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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이론

한국은 평등 속에서 불만족하고 브라질은 불평등 속에서 행복하다.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경제개발을 시작한 우리는 노동 보다 자본이 더 많이 이익을 가져가야 자본이 축적되는 상황에서 모험적인 기업인의 노력과 함께 교육수준이나 사회적 지위가 낮은 노동자의 기여가 컸다. 그런데 한국은 외국인 저임금 노동자나 노예가 아닌 우리 자체의 노동에만 의존했다. 우리 경제가 성장하면서도 노동과 자본 간의 경제적 격차가 줄지 않았다. 한국인은 1894년 신분제가 철폐된 이후에 외모가 비슷하고 같은 말을 쓰는 단일문화를 공유하는 단일민족으로서 평등 의식이 강하다. 이미 고려 시대 때부터 왕후장상 (王侯將相)의 씨가 따로 없다는 말이 있었다. 상대와의 경제적인 격차를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2017년 세계행복지수에서 한국은 155개국 중 56위로 세계 12위 경제규모에 비해 낮다. ⑤ 유엔지속가능개발연대(SDSN)는 매년 전 세계 155개국의 행복지수를 평가한다. 국별 3,000명의 삶에 대해 ‘행복감’과 ‘만족감’으로 측정한다. ‘행복감’은 ‘어제 얼마나 행복을 느꼈는지’에 대한 긍정.부정적인 감정을 측정한다. ‘만족감’은 ‘전체 삶의 고려할 때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를 ‘1인당 GDP’, ‘사회적 지지’, ‘건강.기대수명’, ‘관대함’, ‘자유로운 삶의 선택’, ‘부패 인식’ 등 6가지로 측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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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브라질은 1888년에 법적으로 노예제가 폐지되었지만 아직도 경제적으로는 불평등하다. 2013년 지니계수를 기준으로 브라질은 전 세계에서 13번째로 불평등한 국가다. 그러나 브라질은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이민자의 나라이고 민족.인종별로 브라질에 도착한 시기도 다르기 때문에 민족.인종간 부의 축적이나 사회적 지위가 차이가 난다. 크게 인종을 기준으로 보면 백인과 혼혈.흑인간의 차이가 크다. 원래 브라질 백인은 커피.사탕수수 농장에 아프리카 흑인 노예를 데려와 노동력을 착취하여 자본을 축적했고 오늘날에도 부유하다. 혼혈.흑인의 하위계층은 주로 소득수준이 낮은 3D 업종에 종사하는데 복장도 유모.가정부는 흰색, 청소부는 파랑·주황색, 보안요원은 검은색으로 입혀진다. 두 계층의 차이가 커서 혼혈.흑인의 하위계층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노력보다는 현재에 만족하며 산다. 백인의 상위계층은 하위계층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없다. 국민들이 불평등 속에서 나름 만족하며 산다. 브라질의 세계행복지수는 전 세계 155개국 중 22위로 높은 편이다. 특징적인 것은 행복지수는 국가경쟁력과 비례해서 높아지는데 브라질의 경우는 국가경쟁력이 낮은데도 행복지수는 높다. 브라질이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경제 운용성과, 정부 행정 효율, 기업 경영효율, 발전 인프라의 4개를 부문에서 크게 낮은 평가를 받은 것이 원인이다. ⑥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은 1989년부터 매년 전 세계 60여개국의 국가경쟁력을 평가한다. 평가항목은 경제운용성과, 정부행정효율, 기업경영효율, 발전인프라 등 4개 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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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한국과 브라질의 경제성과의 차이는 정책 수립과 실행 체계의 효율성이 달랐기 때문이다. 작은 영토에 5천만의 인구가 집중된 한국은 작지만 단단한 반면, 브라질은 광대한 영토에 2억 명의 인구가 분산되어 느슨하게 운영되어 왔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매야 보배라는 말이 있다. 2억의 내수시장, 다양하고 풍부한 천연자원, 저가 노동력, 남미공동시장 (메르쿠수르) 진출의 교두보, 아마존과 긴 해안선의 생물학적 다양성 등의 장점을 갖고 있다. 지금 브라질이 필요한 이들을 꿰매는 깨끗하고 강한 리더십이다. 두 나라는 닮은 듯 다르기 때문에 서로를 필요로 한다. ⑦ 브라질에 오는 페루, 파라과이,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출신의 노동자는 2년 단기 비자를 신청 후 만료 이전에 영구비자를 신청하면 영주권이 주어진다.

[이영선 코트라 상파울루 무역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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