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63)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14편 베트남

절대 정복되지 않는 매력적인 나라 베트남(1) 약자가 승자가 되는 처절한 마음가짐, 절대 긍정

  • 입력 : 2017.06.16 13:43:34    수정 : 2017.06.16 13:5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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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베트남 전쟁에서 전사한 역사상 최고의 종군 기자 ‘로버트 카파’

지금도 지난 폴란드 편에서 방긋 웃던 폴란드 여자 시민군의 미소가 눈에 아른거린다. 예쁘기도 하지만 미소가 참 일품이었다. 어둠이 짙으면 빛도 밝다고 했던가. 처절한 인생사의 수레바퀴 속에 시달리다 이제 마지막 극도의 허무 끝에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인간의 마지막 긴 웃음만큼 인간적인 게 또 있을까. 어릴 적 역사적 주요 장면을 담은 라이프지 사진을 애독한 적이 있다. 요제프 카쉬 같은 멋진 인물 사진 작가나 헤밍웨이나 로버트 카파 같은 종군 기자를 꿈꾸며 말이다. 그럴 때 어김없이 등장하는 전쟁 속 미소 사진들. 아마 작가의 요청으로 웃진 않았을 거다. 스페인 내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죽음의 전장을 따라다니면서도 살아남았던 로버트 카파는 프랑스와 베트남간 치뤄진 인도차이나 전쟁 때 사망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움켜쥐고 있었다는 흙 뭍은 니콘 카메라 때문에 니콘은 엄청난 매출을 올렸지만 말이다. 해밍웨이도 스페인 내전에서 겪은 이야기를 가지고 ‘무기여 잘있거라’, ‘킬리만자로의 눈’을 썼고 그 밖의 주요 작품들에서도 그가 전쟁터에서 겪은 감정들이 그대로 녹아 있다. 결국 그는 모히토 한잔 쭉 들이키고 자살도 총으로 한다. 역시 상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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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카파가 죽을 때까지 손에 놓지 않았다는 카메라 ‘니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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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여배우 잉그리드 버그만에게 청혼을 받았으나 죽은 옛 연인을 기리며 거절한 ‘상남자 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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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해변, 노르망디 상륙작전 상황을 생생히 찍은 카파의 명작 ‘D DAY’

반면에 요제프 카쉬는 주로 성공한 유명 인사를 촬영했다. 물론 오래 살았다. 재미있는 건 카쉬의 사진 속에 나오는 분들은 대부분 웃지 않는다. 아주 근엄하거나 시니컬하다. 윈스턴 처칠부터 헬렌 켈러까지 아주 다양한 인사들을 촬영했다. 심지어는 그 유명한 영화 ‘카사블랑카’의 잉그리드 버그만과 커플인 험프리 보가트까지 촬영한 사진사가 카쉬다. 그런데 잉그리드 버그만과 사귄 남자는 로버트 카파다. 미인은 자신을 찍어주는 남자보다 역사를 찍어주는 남자를 좋아했던 것이다. 카파가 즐겨 시용하다 죽은 니콘은 세계 최초로 DSLR 카메라를 내놓았다. 그런데 그렇게 훌륭한 사진기가 나와도 그렇게 훌륭했던 사진사는 아직도 요원하다. 시대가 영웅을 만들기 때문인가. 맞다. 하지만 영웅이 시대를 만들기 때문이라고도 감히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사진찍기를 멋지게 생각하기 시작한 이유는 카파가 찍은 사진보다 카파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진 때문이다. 그 이전에는 누구도 사진사를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D데이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중 흔들리게 찍은 해병대 상륙 사진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다. 이유는 그가 그 시대에 덤벼들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참혹한 시대는 존재한다. 다만 누구도 그 참혹한 상황 속으로 담담히 걸어가려 하는 사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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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함과 진정성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카파가 죽은 인도차이나 반도는 그가 미리 죽음을 알고 간 자리일지도 모른다. 자신이 찍은 수 많은 전사자와 부상자 그리고 이재민들을 찍으면서 그는 마음으로 하염없이 울었을 것이다. 분명히. 그 참혹함 속에서 그가 느낄만한 인간의 감정은 단 한가지다. 의무감에서 우러나오는 대담함 말이다. 이번 전쟁터에서는 아마 나도 저들처럼 죽을 수도 있겠지만 담대하게 그렇게 될 것을 감수했을 것이다. 이유는 자신이 찍은 수 많은 불행들 사이에 담대했던 사람들을 기억하며 말이다. 누군가의 불행을 지켜보면서 슬퍼하지 않고 누군가 당하는 악행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명심하자. 본부장이 말한다. 인간은 마땅히 슬퍼할 때 슬퍼할 줄 알아야 하고 마땅히 화낼 때 화낼 줄 알아야 한다. 이게 멋진 인간이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나와야 한다. 반드시 말이다. 모든 성공의 시작은 마땅함에서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자. 인생은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살아야 한다. 가슴 속에 자신만의 비밀이 없는 사람은 매력 없고 남의 비밀까지 얘기하는 사람은 영혼이 없는 사람이다. 인생을 간결함과 진정성으로 썼다고 한 헤밍웨이의 작품에 왜 그토록 열광하는지 알아야 한다. 조용하게 혼자 모든 것을 짊어지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겁내지 마라. 그런 사람들이 더 오래 산다. 본부장을 따르다 보면 차차 그 의미를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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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차이나를 배경으로 한 마르그리트 뒤라스 원작, 장자크 아노 감독의 영화<연인>

자. 카파가 죽을 자리인줄 알면서도 담담히 임무를 완수하다 하늘 나라로 떠난 인도차이나 반도로 떠나보자. 공시적으로 명칭이 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다. 하지만 결국 피식민국 베트남과 종주국 프랑스와의 전쟁이다. 동남아시아 역사를 통틀어서 피식민국이 종주국을 무력 전쟁을 통해 완전히 몰아내고 해방된 역사는 없다. 대부분 종주국이 타국과의 패전에 의해 자진 철수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베트남은 좀 지저분한 꼴을 당했다. 프랑스 식민 정부가 일본군과 협정을 맺고 태평양 전쟁 종전까지 대리 통치하다가 패전으로 일본이 돌아가고 프랑스도 돌아가야하는데 그대로 눌러앉으려 했던 것이다. 이유는 프랑스는 추축국으로 국제법상 일본과 동맹관계가 되지만 해방 프랑스는 연합국으로 승전국이다. 국익에 따라 말을 바꿔탄 것이다. 프랑스가 바로 이럴 때 개념이 약간 부족한 것이 영국과 매우 차이가 난다. 프랑스 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찰스 디킨스의 소설<두 도시 이야기>에서 당시 영국은 국왕이 정치적 분위기 파악을 정확히 하며 신생 시민 정치세력의 부상을 돕고 타협하며 왕권을 지키고 대영제국의 위용을 지켜간 반면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분위기 파악이 안되서 부상하는 시민계층을 인정하지 않고 묵살해 버리고 결국 왕정이 폐지됨은 물론 본인은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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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기 베트남에서의 프랑스와 달리 영국은 인도를 떠난다 <1947년 8월 15일 인도 독립>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 영국은 인도를 독립시킨다. 더 이상 식민 통치가 설득이 되지 않는 현대 사회가 도래한 것을 알아 차린 것이다. 반면 프랑스는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계속적인 식민통치를 선언한다. 물론 프랑스도 이해가 간다. 미국이 뒤에서 공산주의의 팽창을 저지하기 위함이라는 좋은 명분을 프랑스에게 던졌으니 말이다. 다 이해한다. 그런데 왜 전쟁까지 시도했느냐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본부장이 늘 얘기하듯이 국제 정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분은 지금 아주 싼값으로 고급 국제 정치학 강의를 듣고 있다. 잘 듣고 어디 가서 써먹어라. 구글에 나오는 건 그냥 설이지만 여기서는 본부장의 명석한 추론과 독서의 결과이니 말이다. 지난 번 이란 편에서 이야기 했듯이 영국을 비롯한 러시아 봉쇄 세력이 가장 우려한 것이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통한 인도 진입이었다. 그럼에도 영국이 식민지 인도를 떠나는 결단을 과감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이란의 친서방 세력인 팔레비 왕조 때문도 있겟지만 "자신의 운명은 자신이 결정한다"는 사무엘 스마일스식 <자조론>에 근거한 영국 신사적 근성 -끈적거리지 않으려는 국민성-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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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인도차이나 전쟁(1965~1975)이 우리가 아는 미국과의 베트남전이고, 프랑스와 전쟁이 <1차 인도차이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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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5만의 프랑스군이 항복하고 국제적 망신을 당한 후 체결한 베트남 휴전 협정 <1954 제네바 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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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위 17도선으로 베트남의 잠정분단을 결정한 제네바 휴전협정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게릴라전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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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8월2일 미군이 북베트남 통킹만을 폭격하면서 미국과 베트남 준전시상태 돌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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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부터 전면전으로 시작되는<제 2차 인도차이나 전쟁>

영국은 팔레스타인에서도 이스라엘 정부설립을 선포했던 벨푸어 선언 이후 아랍 유대간 유혈사태가 극심해지자 1948년 5월 이스라엘 정부 수립을 유대인에게 맡겨놓고 철수해버린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국은 자국 식민 통치 국가에 대한 리스펙트의 여지를 남겨놓고 떠나는 국가란 것이다. 제국에서 일반국가로 자연스런 연착륙의 비결. 그것은 인간 본성에 대한 진정성있는 고찰과 다양성에 대한 인정이다. 하지만 프랑스를 비롯해 미국은 이런 다양성이란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결국 인도차이나 반도내의 혁명군을 불인정하고 적으로 돌려버렸다. 인도처럼 자연스럽게 놔두었으면 제3세력(서방도 공산주의도 아닌 세력)이나 되었을 나라들을 빨간 제 2세력(공산주의 세력)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물론 역사는 가정이 없다. 본부장도 그건 인정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국은 인도를 대접받으면서 나와 지금도 영연방의 종주국 대접을 받고 있지만 프랑스는 전쟁에 패해 망신만 톡톡하게 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프랑스가 당한 망신은 이후 미국이 당할 망신에 비하면 개 수 백마리도 모자른다. 베트남전을 이 자리에서 모두 분석할 필요는 없다. 항상 이야기지만 구글이 대신해줄테니 말이다. 하지만 그가 못해줄만한 건 본부장이 해주고 가야하니 잘 들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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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파리 평화 협정으로 사실상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패배를 인정한다. 당시 난해한 국제 정치문제의 소방수역할을 수행한<헨리 키신저>

1973년 파리 평화 협정라는 게 있다. 보통 협약과 협정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협약이 나오면 기후나 해양 등이 주요 이슈이지만 전쟁종결 이후 체결되는 협정은 누가 누구랑 싸워서 지고 그걸 제3국에 가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을 때 주로 쓰여지는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앞서 터키 편에서 말한 1832년 런던 의정서 같은 경우는 전쟁당사국이 아닌 영국이 터키와 그리스의 전쟁을 종결시키며 그리스의 독립을 공식화한 것이다. 말하자면 의정서란 조약체결국의 권위가 강하게 작용될 때 주로 사용된다. 파리 평화 협정도 베트남에게 프랑스가 지고 나가고 다시 미국이 대신 들어와 또 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미국이 베트남과 맺은 평화조약이다. 한마디로 난 빠질테니 남베트남과 북베트남이 싸우든지 화해하든지 맘대로 하라는 것이다. 결국 이 협정을 조인하고 얼마 안되어 베트남은 북베트남으로 통일된다. 본부장이 보기엔 참 무서운 일이다. 개입하지 않았으면 자연스럽게 정리되었을 국가가 서로 반으로 나뉘어 죽고 죽이는 유혈이 낭자한 지옥을 만들고 전쟁 당사국 미국은 그냥 빠져나온 것이다. 미국이 두고 두고 욕먹는 것이 바로 베트남 전쟁에서 보인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다. 이 장면은 한반도에서 미북간의 평화협정을 두고 묘한 데자뷰를 만들고 있는 중이다. 자세한 것은 검색해 보길 바란다. 재미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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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승전국으로 얼굴에 화색이 만연한 <남베트남 혁명 정부 대표들(사실상 북베트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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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후 자신들의 미래를 감지한듯 표정이 어두운 <남베트남 정부 대표들>

처음에 사진작가 카파를 인용하면서 수많은 미사여구를 던지며 베트남을 시작한 이유가 이제 곧 나온다. 기다려 봐라. 1945년 8월 태평양 전쟁이 끝날 때까지 베트남은 동남아시아의 여러 국가들과 별 다른 점이 없는 모습이다. 물론 자세히 보면 베트남 특유의 끈질긴 저항에 따른 잔인한 박해를 받아서 아직도 베트남은 일본에 대한 앙금이 안풀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 일본 투쟁에서 시작해서 결국 1946년부터는 프랑스와 미국까지 상대해 30년 이상 저항하고 결국 모두 손사래를 치며 나가게 만든 아시아의 근성 국가가 베트남이다. 정말 폴란드 여군들에게 미안하지만 폴란드보다 살짝 한 수 위다. 정말 처절함의 끝판왕이었으니 말이다. 1975년 종전 후에도 세계 최강국 체면에 제대로 금이 간-1954년 디엔비엔푸에서 압도적인 장비와 숫자에도 불구하고 프랑스가 항복하면서 그 망신의 서막이 보였지만- 미국이 하도 분해 북베트남에 원폭투하 계획이 있었다는 설을 흘리기까지 할 정도이다. 한마디로 '니들 줄을 뻔한 줄 알라'는 말이다. 본부장의 부친은 베트남에 전투병으로 참전하시고 심지어는 미군이 살포했다는 고엽제 피해로 지금까지 고생하시는 분이시다. 본부장에게 베트남은 어린시절부터 가까이서 직접 들어왔고 또 직접 가서 보며 느낀 나라다. 나의 아버지가 전하고 내가 직접 격은 베트남은 절대 긍정의 나라라는 거다. 여러분이 베트남 시내를 걷다 어디 아무 길거리 식당을 들어가 보라. 그리고 그 맛있는 쌀국수를 시켜보란 말이다. 얼굴에 쓰여있는 대인배다운 웃음과 함께 큰 그릇 한가득 나오는 소고기 많이 들어간 쌀국수가 베트남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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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현지에서 주는 쌀국수는 이것과 비교가 안되는 양과 풍미<베트남 쌀국수>

언제 어디서나 본인이 주인이니 마음껏 즐기고 가라는 그들의 표정은 바로 본부장이 강조하는 '스스로 빛나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에서 나온다. 베트남에는 치정에 의한 살인사건이 많기로 유명하다. 즉 배신자는 죽음이란 것이다. 베트남에 와서 결혼을 약속하고 같이 살던 연인을 두고 변심한 외국인 남자가 공항에서 몰래 도망가다 현장에서 잡혀 여인에게 즉결로 난도질을 당하고 여인도 자결하는 사건이 베트남에서는 다반사라고 한다. 그만큼 주는 정도 많고 배신감도 많이 느끼는 민족인 것이다. 베트남의 그 절대 정복되지 않는 '스스로 빛나는' 자립심의 근원에는 바로 그 '절대 긍정'이 있다. 그 참혹한 인생의 쓰레기 더미 위에서도 그런 청결하고 대인배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고 나는 어렸을 때부터 부친에게 들어왔다. 그리고 그 청결한 미소를 본부장은 베트남을 다시 갈 때마다 그 자식 세대들에서 고스란히 느끼고 돌아온다. 어린시절 베트남 전쟁영화에서 한없이 누추하고 무능해 보이기만한 사람들이 사실 지구상에서 가장 강하고 매력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그다지도 강하게 만들어 준 것도 그 청결한 미소였고 그들의 매력을 다시 알아보게 만든 것도 그것이었다.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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