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여자의 시선에서 보다

죽음을 그린 영화(4) ‘아주 긴 변명’

상실 후에 찾아온 것들

  • 입력 : 2017.03.17 20:41:40    수정 : 2017.03.17 20: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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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함 그 이상의 티격태격 말다툼을 나누는 결혼한 지 꽤 된 부부가 있다. 남편은 아내에게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말라고 불평한다. 알고 보니 남편은 '사치오'라는 유명 야구선수와 동명이인이었고 그래서 소설가인 그는 '쓰무라 케이'라는 필명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내 '나츠코'는 유명 헤어 디자이너다. 그녀는 오랜 기간, 본인의 일과 남편의 내조를 병행해왔다. 그렇게 헌신해왔던 나츠코가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세상에서 사라지고 만다.

‘아주 긴 변명’은 아내를 잃은 후 사치오가 철 들어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다. 사치오는 나츠코가 사고날 당시 내연녀와의 시간을 즐기고 있었다. 심지어 아내의 죽음 소식을 접했음에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그래서 믿기 힘든 현실이어서 그랬을까. 복잡한 심경 때문인지 나츠코의 죽음 초기의 사치오는 균형을 잃은 사람처럼 일도, 감정도 잡지 못한 사람으로 보여진다.

그랬던 그가 나츠코와 함께 불운의 사고를 당한 친구의 남편 '요이치'의 가족을 만나면서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집필의 압박을 받고 있던 사치오는 요이치의 가족이 소설의 새로운 소재가 되어줄 것 같은 호기심에 요이치의 집을 주기적으로 방문한다. 물론 요이치에게는 아이들을 돌봐주겠다는 명목 하에 설득했던 것. 하지만 사치오는 요이치의 자녀와 정이 쌓여가면서 제 2의 아버지로 거듭난다.

한편 아내는 잃었지만 그녀의 내면을 뒤늦게 깨닫게 된 사치오의 모습 또한 ‘아주 긴 변명’에서 주력해야 할 점이다. 사치오는 나츠코의 내면은 물론, 마지막 인상착의조차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아내에게 소홀했다. 아기를 갖지 않는 것은 부부 공통의 생각이라 믿었던 사치오. 하지만 나츠코는 아기를 원했다. 또한 나츠코는 사치오에 대한 애정이 식어버린 상태다. 나츠코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알게 된 이 사실들은 사치오에게 적잖은 충격과 늦은 후회로 자리잡는다.

사치오에게 있어 아내의 부재는 가족의 상실과 같다. 그 빈 자리를 채워주는 이들이 요이치의 가족이다. 사치오가 요이치 자녀의 제 2의 아버지가 된 것처럼, 어쩌면 이들은 두 번째 가정을 꾸린 셈이다. 영화에는 사치오 뿐 아니라 요이치의 서툰 가장 생활도 여실히 그려진다. 아내 없이는 밥 한 끼도 제대로 먹이지 못 하는, 아이들의 건강 상태도 인지하지 못하는 서툰 아버지의 모습 등이 그것이다. 더불어 아이들을 처음 접한 사치오 역시 아버지의 역할에 대해 하나 둘씩 알아간다. 이 모습을 본 관객들 중에는 아내의 역할을 인지함과 동시에, 그녀들에 대한 소홀함을 반성하는 아버지들도 많을 것이다.

우리들 중 대다수는 한결같이 자리하는 대상에 대해 무심하다. 특히 가족과 그들의 사랑은 변함 없을 것이라는 믿음 하에 당연시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다. 관계의 틀어짐으로 인한 이별 외에도 우리는 죽음 때문에 가족을 잃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가족이 자리할 때 최선을 다해 서로를 아껴줘야만 한다. 뒤늦은 후회는 죄책감 혹은 슬픔만을 남길 뿐, 변화를 일으킬 수는 없다. 하지만 이 같은 생각을 펼쳐내는 필자 역시, 바쁘다는 핑계로 당장 내 앞일 걱정 때문에 가족에게 소홀한 때가 많다. 이런 면에서 ‘아주 긴 변명’은 상실의 슬픔과 후회의 무력함을 인지시켜주는 고마운 영화다.

영화 속에서 잊히지 않는 두 개의 대사가 있다. 나츠코가 사고를 당하기 전 사치오에게 마지막으로 남겼던 말 "뒷정리 부탁할게"와 사치오의 소설 첫 머리의 글귀 '인생은 타인이다'가 그것. 나츠코의 의미심장한 말은 영화의 초반에 등장했음에도 사치오의 꼬리표인냥 영화를 보는 내내 잊히지 않았다. 그리고 사치오가 완성한 소설의 글귀 '인생은 타인이다'는 인생은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것임을 일깨워준다.

‘아주 긴 변명’은 죽음(상실)이라는 소재를 시작으로 가족과 사랑, 일(꿈) 등에 대한 다양한 주제의식을 던져주는 영화다. 영화 속 설정은 다소 극단적이기는 하지만 인류 보편적인 삶의 행보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큰 사건들이 깨달음을 주는 원동력이 되지만, 죽음이라는 가장 큰 사건 이후에 남겨지는 것은 살아있는 이들의 후회뿐인 경우가 많다. 덜 후회하고 싶다면 지금 옆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최다함(최따미) 광고대행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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