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영의 수학 공부 재밌게 하기

개념이라는 것은 애매한 개념이다

  • 입력 : 2017.03.16 23:11:58    수정 : 2017.03.17 01: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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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몇어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

몇 기(幾), 어찌 하(何)

기하(幾何)를 우리말로 풀어 쓴 말입니다. 국문학자인 故 양주동 선생의 수필 제목이기도 합니다. 이 글에는 여러분 대부분이 알만한 ‘맞꼭지각’에 대한 일화가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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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꼭지각이 같다는 것을 증명해보라는 수학 선생님 말씀에 학생 양주동은 당연한 것을 무엇 때문에 증명하느냐고 반문합니다.

“그것은 비유이지 증명이 아니다.” (→ 그것은 감각과 경험이지 논리가 아니다.)

수학 선생님은 이 말과 함께 아래의 증명을 칠판에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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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꼭지각이 같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두 각을 직접 재보지 않고 문제 그 자체만으로 증명한다는 것에 학생 양주동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어른이 되어 수필로도 쓰게 된 것입니다.

사실 기하(중국발음으로는 지허)라는 말 자체도 지오메트리(geometry, 기하학)의 지오(geo)를 소리나는 대로 쓴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뜻도 없는 그야말로 비유입니다. 그와는 달리 영어의 geometry는 ‘geo(땅)+metry(측량)’이라는 뜻을 분명히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학생들이 수학 자체가 아니라 수학 용어 때문에 수학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데 이견이 없습니다.

이 일화는 1920년 무애 양주동 선생이 겪은 실화입니다. 거의 100년 전의 일이죠. 저는 이 일화에 수학 공부의 본질이 담겨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맞꼭지각이 같다는 것은 분명 초등학생들에게조차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자명한 개념입니다. 하지만 수학은 이 자명한 개념에도 ‘증명’이라는 잣대를 들이댑니다. ‘왜?’를 묻는 겁니다.

“그냥이요.”, “당연한 것 아녜요.”, “대충 그럴 것 같아서요.”

“왜?”를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는 학생들은 대부분 수학을 잘 하는 학생은 아닐 겁니다. 수학은 남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왜?’를 따져 묻는 학생에게 문을 열어주는 과목입니다. 하지만 모든 ‘왜?’에 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를 거듭하다 보면 두 가지 막다른 길을 마주하게 되는데 여기까지 오면 거의 다 온 겁니다. 하나는 ‘정의definition’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공리axiom’의 길입니다. ‘정의’는 일종의 약속이므로 증명의 대상이 아닙니다. 정삼각형의 정의는 세 변의 길이가 같은 삼각형입니다. 이는 세 변의 길이 같은 삼각형에 ‘정삼각형’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것에 불과합니다. 정삼각형이 아닌 다른 이름을 붙여주어도 상관없습니다. 정의가 증명의 대상이 아닌 것과는 달리 ‘공리’는 증명이 불가능한 대상이라고 보면 됩니다. 더 이상 ‘왜?’라는 잣대를 들이댈 수 없을 만큼 자명한 개념이 공리입니다. 평면에서 ‘서로 다른 두 평행선이 만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두 점을 지나는 직선은 오직 하나뿐이다.’ 등이 공리입니다.

수학이 ‘왜?’를 묻는 학문이라면 개념은 ‘왜?’란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모든 질문의 끝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결국 ‘개념’ 그 자체입니다. 따라서 문제해결은 문제를 해체하고 해석하여 문제 속에 숨겨져 있던 개념을 찾아내는 과정인 겁니다.

[이규영 루틴수학훈련소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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