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

정민우 이사장의 直talk(50) 시즌 2 <본부장이 時代를 말한다> 제 4 편 프랑스

민주주의와 나폴레옹의 나라 프랑스
(2) 대혁명으로 세워진 명품 제국의 비밀, 양면성

  • 입력 : 2017.03.14 21:27:41    수정 : 2017.03.14 21: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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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제왕 ‘루이비통 그룹’

명품하면 떠오르는 브랜드가 있다. 루이비통이다. 각국의 면세점 특히 요즘 선진국 행세를 하고 있는 한국의 인천공항을 가보면 루이비통 매장의 위엄이 그대로 살아있다. 요즘 부자들은 중국 부자라는 말처럼 중국인들의 루이비통 사랑 또한 이루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지경이다. 물론 루이비통은 유럽의 여러 명품 브랜드의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브랜드가 요즘은 루이비통 그룹 안에 들어가 있다. 여기서 본부장이 명품의 계보를 읊어주기에는 나의 명품 지식은 매우 짧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왜 그 당당하던 본부장이 꼬리를 내리겠는가. 본부장은 전형적인 흙수저였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까지 거친 학교는 나라에서 돈 많기로 소문난 부모의 자식들이 다니던 학교였다. 그래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자격지심을 다 느끼며 20대 중반까지 살았다. 그런 환경 때문에 20대엔 웬만한 명품은 다 알았고 지금부터 25년 전에 동네에 조르지오 알마니 매장에 가서 그때 돈으로 1000 달러짜리 코트를 샀다. 웃긴 얘기지만 지금도 그 알마니 코트를 입고 다닌다. 명품에 대한 본부장의 식견은 전 세계에서 1% 안에 들어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자만하는 자를 하늘은 언제나 가만두지 않는 법. 우리 아파트 명품족 아줌마들이 자기들끼리 떠드는 수다를 들어보니 본부장은 아직도 멀었다. 아마도 우리 아파트에 사는 명품족 아주머니들이라면 줄줄 외울 명품에 대한 이 글을 내가 쓰고 있는 것에 그분들에게 심심한 유감을 표하는 바이다. 진심이다. 마니아를 넘어 루이비통 가문의 딸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누차 하는 말이지만 본부장은 사실(fact)이 아니라 진실(truth)을 말하는 리더가 아닌가. 프랑스 명품이라는 초호화 유람선 밑으로 흐르는 진실한 이해관계를 보는 것이 본부장을 따르는 여러분의 사명임을 명심하자. 본부장이 지금껏 명품을 쓰면서 스스로 느낀 것을 말해주마. 명품이 가지는 가장 큰 가치는 인간이 신이 되고자하는 불멸성에 대한 추구에 있다. 인간은 그 자체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불안전성을 극복하기 위해 인간은 최대한의 완벽함으로 주변을 감탄시키고자 한다. 영원불멸(Eternity &Immortality)에 대한 인간의 집착은 어찌 보면 그저 부질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인류의 문화유산이라고 자부하는 피라미드나 스핑크스 등 세계의 불가사의한 건축물부터 그리스 시대에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역사적 기록물까지를 면밀히 살펴보면 인간이 얼마나 그것에 집착했고 또 얼마나 그것에 의연하려고 노력했는지를 찾아볼 수가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의식이 있는 존재로 창조되어 끝없이 상상하고 또 추구해야만 살 수 있는 인류는 오늘도 명품이라는 인간 영역에서의 완벽함에 대해 갈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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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의 세계는 결국 ‘디테일의 세계’

요즘 명품 브랜드의 영역은 그 한계가 없어지고 있다. 단순한 의류나 액세서리 등의 패션영역을 넘어 2차 소비재나 IT 용품까지 뻗어져 가고 있으며 앞으로는 인간자체까지 명품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할거라 본다. 어쩌면 본부장이 이렇게 저술을 통해 얻고자하는 것도 여러분들과 같은 청년들이 명품 인재가 되기 위함이 아니겠는가. 그렇다고 오해하지는 마라. 본부장은 자신의 본분을 잃지 않는 것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던가. 명품 몇 개를 손에 쥐고 여러분을 가르치려 드는 사람이 아니라 분연히 일어나 스스로 리드한다는 것으로 나를 정의한 사람이다. 본부장이 말하지만 인간은 스스로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고 자기희생을 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최고 명품 인재가 되는 것이다. 손발에 명품을 걸치고 사는 곳이 초호화 아파트라고 해서 자신이 명품이 되지는 않는단 말이다. 본부장을 따라 바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려는 여러분은 절대 명심해야 할 말이다. 그렇다고 여러분을 성인으로 만들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성인도 본부장이 생각하는 명품인재는 아니다. 보편타당한 인간 본연의 모습은 아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인간이 그저 유쾌하게 행할 수 있는 조그마한 분별력과 자기 희생이 진정한 명품인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하자. 여기가 무슨 19세기 서부개척 시대 미국 교회도 아니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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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카메라 명품 라이카와 영국 패션 명품 폴 스미스의 만남’ 요즘엔 융합이 대세

본부장도 좋아하는 명품이 있다. 폴 스미스랑 조르지오 알마니, 그리고 에르메스 넥타이와 향수에 구찌 벨트 정도는 하고 다닌다. 하지만 슈트는 그다지 돈을 들이지 않고 입고 다니다. 약 500달러 정도로 말이다. 물론 이것도 비싸다 할 사람도 있겠지만 본부장을 회사 사무실에서 보는 사람들은 본부장이 입고 다니는 양복을 한 3000달러 정도 되는 양복으로 생각한다. 본부장이 생활의 팁을 알려주마. 슈트는 비싼게 좋은 거겠지만 꼭 그렇게 입을 필요는 없다. 나의 추천은 명품 액세서리로 약간 포인트를 주고 슈트는 싸게 가는 거다. 본부장의 멘토링을 받고 실전형 인재가 되는 순간 거기에서 나오는 아우라가 이미 명품 슈트를 방불케 하기 때문이다.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자신감 보다 더 예쁜 슈트는 없다.

명심하길 바란다. 젊어서 너무 좋은 것만을 맛보면 나이 들어 재미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라. ‘20대는 40대처럼 40대는 20대처럼 살 것이다’라고 본부장이 말하지 않았던가. 20대는 그 자체가 멋있기 때문에 40대의 분별력을 가지고 살고 40대는 시들어가는 나이기 때문에 오히려 20대의 열정을 가지라는 말이다. 그래서 명품 의류는 자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마음가짐이 바로 서면 그저 그것에 약간의 액센트를 주는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절대 명품에 집착하지는 말아라. 매우 없어 보인다. 명심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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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유심히 바라보는 눈을 가지고 패션을 철학의 경지에서 논한 패션계의 로렌스 올리비에 ‘폴 스미스’

이런 저런 명품들이 계속 쏟아져 나오는 현대사회에서 본부장이 주목하고 싶은 것은 오직 그 명품을 만들어 내는데 가장 열심인 나라, 프랑스다. 물론 명품제작으로는 이탈리아도 큰 한 축이지만 그 명품들이 명품으로 인정받는 프로세스에 대한 주도권을 쥐고 있는 나라가 바로 프랑스인 것이다. 본부장이 승자의 10계명이라는 말을 트윗에 올린 기억이 있다. 지금 잠깐 말해주면 ‘1.통계의 기준을 장악하라 2.주도권을 잡아라 3.캐치프레이즈를 선점하라 4.정의하라 5.사는 목적을 더욱 분명히 하라 6.주변을 연결하라 7.삶을 발견하라 8.승자의 언어를 사용하라 9.스토리를 만들어라 10.감동시켜라’ 꼭 가슴에 새기고 실천하기 바란다. 뉴욕에 아파트 한 채보다 더 귀한 말이니 말이다. 물론 여러분은 그 진가를 아직 모르겠지만. 여기서 나오는 말 10가지를 음미해 보면 프랑스가 왜 전 세계 명품시장을 장악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앞에서 기술했던 이야기지만 프랑스는 민중 봉기로 국왕을 처형하고 그리스 로마 시대 이후 사리진 공화주의를 다시 부활시킨 민중의 나라이다. 귀족스러움을 가장 혐오하고 제거하려 했던 프랑스가 어떻게 지금은 다시 전 세계 귀족스러움의 중심지가 되었느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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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정장차림으로 그림을 그려 별명이 교수님인 야수파 앙리 마티스. 균형감각을 만들어 주는 그의 그림 ‘Polynesia, The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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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미티스는 권위적인 아버지의 의견대로 법대를 나와 22세에 변호사 조수를 하던 중 돌연 구스타브 모로의 제자로 미술을 시작한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에서 좀 산다는 사람들은 대부분-특히 영국, 독일 부자들은 여름 휴가를 프랑스로 간다고 한다. 마치 그리로 가는 것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기에는 충분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겠지만 그뿐만이 아니다. 실제 본부장이 본 프랑스 니스해변은 수많은 유럽 부호들이 요트를 사서 정박해 놓고 휴가를 즐기는 곳이다. 여기서 그들은 비지니스적 영감을 얻어간다고 한다. 프랑스 칸느 영화제가 이곳 지중해 해변을 배경으로 열리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아마도 본부장이 프랑스 편 서두에서 한 말처럼 프랑스의 자연환경은 프랑스가 가진 최고의 자산임에는 분명하다. 지중해가 주는 예술적 영감을 논하자면 또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앙리 마티스다. 현대 미술을 이야기 할 때 보통 동서양을 막론하고 우리에게는 무조건 파블로 피카소였다. 실제 작품 수나 명성을 보면 사실이다. 하지만 미술계 내에서는 피카소에게는 강력한 경쟁자가 있었다. 바로 현대 프랑스 미술의 자랑 앙리 마티스이다. 외모는 대학 교수처럼 언제나 슈트차림으로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하신 분이 본인이 직접 만들어 이끄는 미술사조는 반대로 ‘야수파’다. 다분히 프랑스적 매력이다. 이 분이 주로 영감을 받고 작품을 그린 장소가 프랑스의 지중해 연안이다. 본부장의 집 거실에는 앞 뒤로 두 모작 그림이 걸려있다. 앞에는 앙리 마티스의 ‘Polynesia,The sea’, 그리고 이 그림을 마주보며 파블로 피카소의 ‘Mother and Sucking child’가 걸려 있다. 앞의 마티스의 그림은 본부장에게 균형감각을 강화시켜주는 그림이고 뒤의 피카소 그림은 인간이 평생 절대 잃어 버려서는 안되는 인간 내면의 생명력, 즉 성취욕을 주는 그림이다. 본부장 말을 명심해라. 성취욕과 균형감이 있는 인간에게 신은 언제나 지혜의 신 헤르메스를 보내 자신이 아직 널 버리지 않았음을 확인시켜준다. 본부장이 집에 있는 환경마저도 균형감을 중요시 여긴다. 차가움과 뜨거움을 가지란 것이 절대 아니다. 이 두 가지를 가진 자는 비상식적인 사람이다. 한마디로 멋있지만 믿을 수는 없는 사람이다. 본부장이 말하는 균형감은 끓어오르는 성취욕이라는 야생마를 잘 조정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 프랑스 편에서 말하는 양면성과는 틀린 부분이다. 성취욕이나 균형감도 목표는 하나이고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도 목표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양면성이란 목표가 다른 두 성질의 만남이다. 여기서 세련됨이라는 것이 나오는 것이다. 말하자면 양면성이란 궁극적인 사업이나 정치적 의도를 염두하지 않고 목표 없이 그 존재 자체가 목표인 자가 누릴 수 있는 세련됨이다.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일상적 업무로 설명하자면 본부장이 회사에서 부여된 업무만을 소화하고 자체적인 기획력이 부족한 지점장들에게 ‘목표 없이 성공하라’라는 미션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이는 지점을 지휘하는 리더로서 인간적인 멋이 없어서 업무적 역량과 상관없이 부하들에게 상사로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 일선 리더에게 개인 면담을 통해 전달하는 내용이다. 즉 스스로의 모양새에 책임을 지라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세련미를 갖추라는 것과 매우 일치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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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내면의 생명력 즉 성취욕을 불러일으키는 파블로 피카소의 ‘Mother and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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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파와 야수파의 대결을 통해 현대 인류 미술을 풍요롭게 만들어준 두 거장 ‘파블로 피카소 VS 앙리 마티스’ 

다시 말하지만 세련미는 바로 양면성의 다른 말이다. 균형 잡힌 사람을 세련된 사람이라고 하진 않는다. 우리는 그를 믿음직한 사람이라고 한다. 반대로 ‘세련되다’는 것은 흔히 얘기하는 댄디한 사람이다. 바로 부자이면서 돈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고 지식인이면서 지식을 우습게 여긴다는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겠다. 균형 잡힌 사람이라면 오히려 부자이면서 돈에 대해 검소하며 지식인이면서 지식의 오류에 대해 겸손한 사람을 말한다. 어떤가. 이제 그 차이를 알겠는가. 다시 말하지만 본부장의 정리는 구글에도 없다는 걸 명심해라. 이 글의 묘미는 바로 구글에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자 그럼 여러분들은 양면성이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이 책을 보는 이가 동양인이라면 아마 양면성에 대해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할 가능성이 크다. 두 가지를 함께 가진다는 것을 순수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받을테니 말이다. 뭐 틀린 교육도 아니다. 물론 서양인이라고 양면성에 대해 좋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동양에 비해서는 좀 느슨한 거부감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내면에는 언제나 양면성에 대해 아련한 동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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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인들이 아직까지는 그저 기죽는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 박사가 그의 저서 ‘Leading Mind & Creating Mind’에서 리더적 기질을 가진 시인으로 TS 엘리엇을 언급하면서 그의 시를 세련되고 멋지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 그가 가지는 양면성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본부장이 강조하는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은 절대 양면성이 아니다. 따라서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에서 말하는 회사나 조직이 원하는 상식적 사고를 가진 균형잡힌 인재와는 완전히 방향이 틀리다. 하지만 사람이 태어나 회사 생활만 하라는 법은 없다. 자신이 직접 경영도 하고 창업도 하고 또 예술 활동도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는가. 전작 ‘본부장이 말한다’는 전 세계 청년들을 처음 직장과 조직에 적합한 인재로 변화시키고 또 본인도 조직을 이끌 리더로 키우기 위함이지 모든 인간을 획일적으로 정의하는 것은 아님을 오해하지 말아달라. 양면성이란 다시 말하지만 완전히 다른 두 가지의 성질을 한손에 쥐고 있는 매우 불안한 상황이다. 이 불안한 상황이 기회도 만들지만 실패도 만든다는 것을 본부장은 나의 긴 업무 경험과 방대한 독서를 통해 명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그토록 본부장이 외친거다. 알쏭달쏭한 사람이 되지 말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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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알쏭달쏭함이 좋게 작용한 적이 있다. 근대 일본이 좋은 예이다. 근대 서구인이 19세기에 일본에 가졌던 무한한 호감은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서 루스베네딕트가 이야기한 일본 문화의 양면성에서 기인했다. 물론 그 양면성이 만들어낸 결과인지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일본은 아시아에 위치한 국가임에도 ‘탈아입구’, 즉 인종 개량론이라는 상상력을 발휘한다. 이제부터 우리는 유럽인처럼 사고하고 유럽인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정말 획기적인 발상임에는 틀림없다. 19세기 일본 미술품에 대한 유럽이 가진 열광 속에는 아마 그 양면성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사무라이라는 무사도와 예술 특히 미술에 대한 상당한 눈높이를 가진 나라. 얼마나 세련돼 보이느냐 말이다. 반 고호나 폴 고갱이 일본 미술에 완전히 매료된 것을 비롯해서 프랑스 파리의 미술계는 19세기에 시작해 20세기 초까지 일본 미술로 새로운 활력을 찾아 눈부신 번영을 누렸다. 어찌 보면 일본은 국가 문화 마케팅을 일본이 가진 양면성으로 완벽하게 성공시켰고 그 일등 공신은 그 양면성을 가장 멋지게 생각해준 나라 프랑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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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미술에 매료되어 반 고호가 그린 일본풍의 작품 ‘벚꽃’

앞서 말한 ‘국화와 칼’을 바라보는 미국인들에게 양면성은 그다지 선망의 대상이나 멋진 모습이 아니다. 미국은 현대인 지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 캡틴 아메리카의 나라가 아닌가. 20세기 초에 미국은 지금의 백배 보수적임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일본의 양면성에 가장 동정표를 준 나라는 그 양면성을 사랑하는 프랑스인 것이다. 실제 일본에 가보면 영국이나 미국을 정치적으로는 대단하게 생각해도 문화적 친근감에 있어서는 프랑스를 최고로 치고 있다. 이건 100% 리얼임을 명심해라. 본부장이 더 재미있는 얘기 해주겠다. 잘 들어라. 영국이 일본을 의심스럽게 보고 있을 때 당시 청교도 정신으로 더 보수적인 나라 미국의 한 인물이 일본을 아주 개인적인 취향 때문에 같은 편으로 넣어준 것이다. 영국은 역시 촉이 있었다. 일본의 이중성이 걸린 것이다. 수 백년 제국의 영화를 유지하면서 그 정도 촉이 없었겠나. 그래서 당시 영국과 미국이 아시아 태평양 외교정책을 수립함에 있어서 일본의 이중성을 문제 삼으며 고민할 때 이 문제를 시원하게 해결해 준 장본인이 바로 태프트 미 국무장관이다. 이 양반이 가스라라는 일본 외무대신과 맺은 비밀 조약이 가스라 태프트 조약인데 미국과 일본의 아시아 지역 분할 통치에 대한 내용이 담겨져 있다. 조약 얘기는 이 정도만 하자. 본부장의 지식은 아직도 끝도 없지만 여러분이 힘들다. 태프트는 나중에 대통령까지 오르는 사람이다. 근데 이 사람이 일본 광팬이었다고 한다. 특히 사무라이 문화에 말이다. 미래에 일어날 정치적 군사적 변수에 대한 적절한 판단없이 단순히 멋지다라는 것에 혹해 나중에 두고 두고 고생할 판단을 내리게 된다. 이걸 계기로 일본은 16세기말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전쟁때 외쳤던 ‘조선은 길목이고 중국 돌아 동남아 지나 인도까지 점령하자’는 300년도 넘은 옛 계획를 다시 짜게 된다. 정말 화끈한 계획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미국은 그 판단으로 진주만에서 해군 전력의 반을 날리고 동맹국 영국까지 점령지 다 털리고 죽을 고생을 시키며 필리핀 등 자국 점령지까지 다 빼앗기다 고생 고생해서 겨우 회복하나 싶더니 본토에는 저항에 막혀 들어가지도 못하고 이도저도 못하다가 독일에서 압수한 원자폭탄에 쓰여 있는 독일어 지우고 영어로 ‘리틀 보이’라고 쓰고 떨어뜨려 겨우 일본을 제압한다. 정말 무지막지한 판단 미스가 아닐 수 없다. 모두가 양면성이 주는 어마어마한 매력 때문 아니겠는가. 정말 세련되어 보이는 것에는 장사가 없는가 보다. 왜 전 세계인이 프랑스 명품에 미치는지 이제 감이 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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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문화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루스 베네딕트의 베스트셀러 ‘국화와 칼’

프랑스 문화는 바로 이 양면성 또는 다면성에 그 매력이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에는 참 재미있는 것이 존재한다.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하고 싶으면서도 자신의 지향점에는 솔직하고 싶지 않아한다. 인간이 가지는 감정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현실적인 이기심의 발로이다. 그러나 인간이 지향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이기심과는 매우 동떨어진 비현실적이며 가치함축적인 것이다. 통상 역사를 유심히 보면 제국을 이룬 나라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에 주목한 나라들이다. 즉 인간이 가지는 고매함에 대한 큰 기대를 가지지 않는 국가가 제국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로마나 영국이 그랬다. 우리가 드라마로 보는 스파르타쿠스나 로마 또는 다운트 에비나 퍼레이즈 엔드를 보면 당시 제국을 이루는 국가의 내부적 생활상이 얼마나 속물적인지를 알 수 있다. 본부장이 말한다. 이기심 즉 속물적이라는 것에 대해 너무 거부 반응하지 말아라. 그것에 거부 반응을 하면 여러분은 성공할 수 없다. 어찌 보면 성공이라는 것은 버나드 쇼의 말처럼 냉혈한의 전유물은 아닐지 몰라도 속물들의 전유물일 가능성은 매우 크다. 본부장이 여러분에게 되라고 말하는 바다 같은 대인배는 속물적인 것 또한 받아들일 수 있는 아량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본인이 속물이 될 필요는 없지만 말이다. 이 가치 함축적인 것에 대한 속물적 추구가 바로 명품이다. 한 마디로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싶은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해소과정이 바로 명품 추구인 것이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 프랑스보다 인간사의 양면성을 가진 나라가 있겠는가. 역사 자체가 인간 본성 자체에 대한 실험장인 프랑스는 그래서 근대에 들어서면서 유럽 문화의 진정한 중심지를 넘어 명품 산업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영국이나 독일이 명품산업에서 뒤쳐지는 이유도 이제는 매우 명확해지지 않는가. 그 국가들이 역사상으로 추구했던 지향점이 명품 탄생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환경이었다. 영국이 추구하는 분별력과 판단력은 문학을, 독일이 추구하는 순수함과 예리함은 음악을 고향시켰지만, 프랑스가 가지는 인간사의 다면성을 갖춘 모든 상상력의 실험장이 가지는 차별성은 프랑스 명품을 탄생시키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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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상류 사회의 속물적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베네딕트 컴버베치 주연 ‘퍼레이즈 엔드’

양면성에 대해 좀더 들어가 보자. 앞서 기술했던 것처럼 라파예트의 민중봉기의 혁명군이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프랑스 제국군으로 탈바꿈했던 나라가 프랑스다. 이것은 보잘 것 없던 섬나라 영국이 세계 3분의1의 식민지를 가져가는 과정과는 또 다른 문제이다. 영국인들이 추구하는 ‘전사의 기질과 시인의 영혼’은 형태적인 양면성만을 띨뿐 어쩌면 부합될 수 있는 같은 목적의 행태이지만, 혁명군과 제국군은 같은 목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조지루카스 영화의 제다이와 제국 황제가 같을 수 없듯이 말이다. 그래서 프랑스는 아름다운 나라이지만 일관성 있는 나라는 아니다. 즉 사람으로 말하면 너무나도 사랑스럽지만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본부장이 내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프랑스는 멋있는 나라이기 보다는 맛있는 나라다. 멋있는 것과 맛있는 것의 차이라는 내용의 시를 쓴 극동의 한국 시인이며 영문학자인 피천득 시인의‘맛과 멋’이라는 시를 한번 소개할테니 여러분들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음미해 보길 바란다.



맛과 멋

맛은 감각적이요, 멋은 정서적이다.

맛은 적극적이요, 멋은 은근하다.

맛은 생리를 필요로 하고, 멋은 교양을 필요로 한다.

맛은 정확성에 있고 멋은 파격에 있다.

맛은 그때뿐이요, 멋은 여운이 있다.

맛은 얕고, 멋은 깊다.

맛은 현실적이요, 멋은 이상적이다.

정욕의 생활은 맛이요, 플라토닉 사랑은 멋이다.

그러나 맛과 멋은 반대어는 아니다. 사실 그 어원은 같을지 모른다.

맛있는 것의 반대는 맛없는 것이고 멋있는 것의 반대는 멋없는 것이지

맛과 멋이 반대되는 것은 아니다.

맛과 멋은 리얼과 낭만과 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맛만 있으면 그만인 사람도 있고, 맛이 없더라도 멋만 있으면 사는 사람이 있다.

맛은 몸소 체험을 해야 하지만, 멋은 바라보기만 해도 된다.

맛에 지치기 쉬운 나는 멋을 위하여 살아간다.

-피천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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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세계에서 가장 들어가기 힘들다는 ‘프랑스 와인 저장고’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나라, 프랑스. 맞는 말이다. 프랑스 요리의 호사스러움을 본부장은 아직 접해보지는 못했다. 앞서 말했지만 이번 편에 쓰는 명품이나 요리는 모두 그것을 경험하기위해 엄청난 비용을 지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그들이 쓴다면 아마 한 두 권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본부장이 어디 명품이나 요리 전문가라고 했던가. 아니다. 요리나 명품은 앞으로 여러분들이 많이 경험해보시기 바란다. 너무 과도하게는 말고. 본부장이 이번 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프랑스가 왜 명품이나 또는 호사스러운 요리가 발달할 수밖에 없었느냐에 대한 본부장의 시각이다. 하지만 본부장의 프랑스 전편 처음에 말했듯이 역시 프랑스는 방대하다. 아니 너무 넓다. 양면성을 넘어 다양성 그리고 상상력을 넘어 환상의 나라가 프랑스 아니겠는가. 영국, 미국, 독일을 써오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따라오는 여러분들의 헐떡거림이 느껴진다.

그래서 본부장이 있는 거 아니겠나. 걱정마라. 깔끔하게 정리해주겠다. 지금 시간이 금요일 저녁 7시 58분. 프랑스 편을 쓰고 있자니 와인 한 잔이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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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요리의 대표 음식 ‘달팽이 요리’

자 이제 정리하자. 프랑스 편을 쓰면서 본부장이 깨달은 부분을 말해주면 정말 하나로 정의하기가 이렇게 힘든 나라가 프랑스구나 싶다. 라파예트와 보나파르트의 삼색기를 들추어내고 명품의 거리를 지나니 이건 프랑스의 진짜 얼굴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 본부장은 여러분을 리딩하는 사람이지 가이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 이제 나머지는 프랑스 여행사에게 맡기고 본부장도 이제 평안한 금요일 저녁을 좀 느껴야겠다. 물론 이야기 주제는 당연 프랑스로 할 것이다. 정말 관심이 많아졌다. 그동안 영국 근현대 문학과 독일 음악에 심취했던 본부장은 이제 프랑스의 맛에 한번 눈을 돌려볼까 한다. 사실 프랑스를 찾는 그 수많은 사람들이 본부장처럼 독일 음악 여행 중 귀신이 나올듯한 깊은 숲속에 있는 오페라 하우스를 가기 위해 또는 영국 문학 체험을 하기 위해 도버해협을 건너가 런던의 거리에 붙어있는 ‘프랜시스 베이컨 거리’, ‘아담 스미스 거리’, ‘윌리엄 모리스 거리’ 등 전 세계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온갖 사회과학 명사들의 표지판 이름을 직접 눈으로 보기 위해 오지는 않을 것이다. 아마도 프랑스의 ‘맛’을 느끼고자 지금 이 시간에도 계속 파리로 몰려들고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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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함과 절묘함의 나라 프랑스 알렝드 보통의 ‘불안’

본부장은 프랑스의 그 ‘맛’을 절묘함이란 단어로 정의하고 싶다. 앞에서 프랑스의 양면성을 이야기하며 영국이나 독일 또는 잠깐 미국을 들먹였다. 심지어는 지리상으로 너무 멀리 있는 일본의 양면성까지 한번 들여다보았다. 절묘하다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참 듣기 좋은 단어이다. 그렇지만 참 불안한 단어이다. 불안함은 우리에게 기회도 주고 실패도 준다. 알랭드 보통이라는 프랑스인이 왜 불안이라는 말을 가지고 책을 썼는지도 이제 이해가 된다. 프랑스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멋진 절묘함, 양면성에 그저 지쳤기 때문이겠지.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절대 이해하지 못할 불안 말이다. 맛이라는 것을 내기 위해서는 적절함이 아니라 절묘함이 필요할 것이다. 적절한 영국인이 질릴 정도로 매일 피쉬엔 칩스나 먹으며 쓴 위스키를 마시고 소박한 독일인이 나무 그릇에 검게 탄 소시지나 기름이 더덕 더덕 붙어있는 학센에 맥주를 마시며 있을 때 절묘한 프랑스인은 그들이 가진 불안한 양면성을 통해 얻은 모든 ‘맛’의 제왕이 되었다. 본부장이 말하지 않았나. 모든 욕망은 눈으로 시작해 입으로 끝난다고 말이다. 카르띠에 광고에 나오는 그 파리를 다시 가보고 싶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각적 호사를 누려보고자 말이다. 자 떠나보자. 앙드레 지드가 말한 지상의 모든 양식을 쌓아둔 양면성과 절묘함 그리고 불안함의 도시 파리로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모든 다양한 맛을 느껴보기 위해. 하지만 물론 눈과 입이 원하는 것을 모두 손으로 집는다면 아마도 엄청난 청구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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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혁명이라는 피비린내 속에서 피어난 장미빛 노블리스같은 양면성의 프랑스 까르띠에 광고 CF ‘L"Odyssée de Cartier’



[정민우 청년의힘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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